학교에 가는 길이면 나는 설레는 동시에 지친다. 우리 학교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오는 곳인데 마주치는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잘나고 멋있기까지 한 건지. 선배는 시험 합격과 취업 소식을 전하고 후배는 내가 저학년일 때보다 훨씬 더 재밌게 대학 생활을 즐긴다. 사람들이 이어폰을 꽂고 다니는 이유는 음악으로 감각을 마비시키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 아닐까. 서울에서, 고려대에서 나를 사랑하기란 정말 어렵다.
무언가에 짓눌린 듯 마음이 무거워 참을 수 없을 때면 나는 개운산 공원에 간다. 개운사길을 따라 기숙사와 녹지운동장을 지나 오르고 또 오른다. 교문을 벗어나면 아까시나무에 둘러싸인 길이 보인다. 그 길을 조금 더 오르다 개운중학교가 보일 즈음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개운산 근린공원 팻말이 나온다.
공원에 들어서면 새로 생긴 인조잔디 운동장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얼마 전 이곳에서 축구교실 아이들에게 공을 주워주고 배꼽인사를 받기도 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반대편 골대까지 걸어가면 탁 트인 성북구 전경이 펼쳐져 열심히 걸어 올라온 보람이 느껴진다. 그 옆의 목재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회색 시멘트라곤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 나온다. 오직 초록과 갈색의 나무, 흙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이때 나는 귀에 꽂은 이어폰을 빼 주머니에 넣는다. 이름 모를 새와 곤충이 내는 소리, 내가 지나가면 후다닥 도망치는 다람쥐의 소리를 귀로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서부터는 정해진 길이 없어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 된다. 이 길에는 목적지가 없어 머리보다는 다리를 써야 한다. 숲길을 몇 번 거닐다 삼성APT 팻말을 따라 내려간다. 새소리 어린이공원으로 빠져나와 4호선 길음역에 도착하는 나만의 루트가 생긴다. 울창한 숲에서 온전히 혼자가 돼 걷다 보면 어느새 무거운 마음이 비워지고 타인이 아닌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개운산 공원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집에 가는 버스에 오를 즈음이면 알 수 있다. 나를 사랑하려면 혼자가 될 필요가 있다.
오동언(문과대 사회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