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린 기자
김정린 기자

 

  수시 원서 접수 기간이 돌아왔다. 대학에 입학하고도 3년이 지나니 이젠 입시보다 취업에 더 가까운 나이가 됐다. 입시와는 점점 멀어져 가던 찰나에 원서접수 소식을 우연히 전해 들었고, 잊고 있던 4년 전 입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젠 기억도 흐릿해진 오래전이지만, 처음 생활기록부를 떼 봤을 때 기억만은 뚜렷하다. 변호사나 교사처럼 선명한 미래를 그리며 수시를 준비하던 친구들과 달리 난 당장의 입시가 중요했던 낭만 없는 학생이었다. 당장 상황에 걸맞은 입시 전략을 찾아 진로를 바꿔댔고 그 방황은 생활기록부에 여실히 담겨 있었다. 마치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간장게장과 마카롱을 함께 판다는 가게 간판을 봤을 때의 엉성한 느낌이었다. 대학에 가고 더 큰 세상을 마주하면 진정한 꿈이 생길 거라 굳게 믿으며 먼 미래의 나를 상상해 보는 것은 항상 나중의 일로 미뤄뒀다.

  그러나 이제 졸업을 바라보는 23살의 나는 그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급한 과제와 대외 활동, 기자 생활로 매일을 바삐 보낸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 삶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고민해 보는 것은 매번 게을리한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열심히 채워나가지만 어쩐지 공허한 느낌이다. ‘지금 이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하는 무책임한 믿음은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아직도 여전하다.

  최근 전공 수업에서 교수님이 한 졸업생의 메일을 읽어주신 적이 있다. “인생의 지향점, 내 삶의 알맹이가 없으니 저보다 잘난 사람을 보면 위축되고 보다 못난 사람을 보면 잠시 우월감에 취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자신을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더욱 행복한 학교생활을 보낼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순간의 결과는 일시적으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지만 결국 지속적이고 근원적인 것은 지향점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단지 인상 깊다고만 여겼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비로소 제 뜻을 이해하게 된다. 그동안 나는 눈앞의 파도만 넘으면 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파도를 넘으며 바다 깊숙이 들어가고 있진 않은지 경계해야 한다. 고개를 들어 등대를 보고 방향을 정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동안 게으름을 핑계로 외면했던 멀리 보기 연습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하루하루를 채우며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 자문하며 살아가려 한다. 

 

김정린 기자 joring@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