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문 인력이 맡는 사법 통역

부실한 교육·낮은 처우에 인력 이탈

“통합 관리 체계로 전문성 높여야”

 

 

  사법 통역은 경찰 수사와 검찰 조사, 재판에 이르는 사법 절차 모든 단계에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을 지원하는 공공 서비스다. 국내 체류 외국인 증가로 사법 통역 수요는 늘어나고 있지만 부족한 인력을 비전문가로 충당하고 있어 전문적인 통역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통역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사법 통역 교육과 실력이 검증된 인력을 현장에 우선 배치하는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성 낮은 이유는 인력 부족

  법무부에 따르면 2020년 204만 명이던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24년 265만 명으로 4년 새 29.9% 증가했다. 외국인 수가 느는 만큼 사법 통역의 필요성도 자연히 늘고 있다. 한국어로 일상 회화가 가능하더라도 사법 절차에서는 낯선 법률용어를 접하기 때문이다. 박다솜 법무법인 안팍 변호사는 “법률용어를 충분히 이해할 만큼 한국어 구사력이 뛰어난 외국인은 거의 없고 내국인조차 법률 문장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며 “사법 절차에서 오해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통역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와 법률용어 자체가 다르기도 해 정확한 사법 통역을 위해서는 인력의 전문성이 중요하다. 예컨대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은 모두 영어로 ‘Arrest warrant’인데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직역하면 외국인이 사법 절차를 잘못 이해할 수 있다. 정수빈 사법 통역사는 “법률용어는 하나만 잘못 통역해도 판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통역 실력과 법률 지식을 모두 갖춘 인력이 맥락에 맞게 통역해야 오해나 오류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통역 인력이 부족해 결혼이주여성, 대학원생 등 비전문 인력이 사법 통역을 맡기도 한다. 특히 통역 일정이 갑자기 잡히는 일이 잦은 경찰 조사 과정에는 더 자주 참여한다. 홍서연(단국대 유럽중남미학부) 교수는 “경찰 조사에 참여하는 러시아어 통역 상당수가 간단한 인터뷰와 테스트만 거쳐 선발되는 결혼이주여성으로 통역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지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도 “경찰 통역인 중 전공자는 10% 남짓”이라며 “대부분 프리랜서로서 의료 통역, 상담 통역 등 다른 일을 하다가 경찰 통역에 참여하기 때문에 사법 통역 기술을 꾸준히 갈고닦기는 어렵다”고 했다.

  수요가 적은 언어일수록 인력 부족이 심하다. 이진혜 사단법인 이주민센터 친구 상근변호사는 “아랍어, 벵골어 등 소수 언어는 통역인이 거의 없어 통역이 필요한 당사자에게 지인 섭외를 요청하기도 한다”고 했다. 정 통역사도 “소수 언어 통역은 구해지면 다행이라 전문성을 검증할 여건이 안 된다”고 말했다. 통역인을 구하지 못하면 외국인은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 박 변호사는 “모국어가 스와힐리어인 외국인의 통역인을 구하지 못하면 제2언어인 영어로 통역을 대신할 수도 있다”며 “당사자의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피고인의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전문 인력을 활용해 통역의 정확도가 떨어지면 재판의 공정성이 훼손되고 신뢰가 흔들릴 우려가 있다. 홍 교수는 “부정확한 통역은 외국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항소·재심으로 이어져 사법 자원의 낭비를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2017년 인도 출신 한 요리사가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사업주의 지인이 통역을 맡으면서 원고의 진술이 왜곡돼 뒤늦게 재조사가 이뤄졌다.

2019년 3월 즉결심판 재판 현장에서 통역을 맡은 정수빈 사법 통역사의 자리. 법원은 법정 통역인 편람을 발간해 사법 통역 업무를 지원한다.
2019년 3월 즉결심판 재판 현장에서 통역을 맡은 정수빈 사법 통역사의 자리. 법원은 법정 통역인 편람을 발간해 사법 통역 업무를 지원한다.

 

  지원 막힌 교육, 낮은 보수에 발목

  전문 통역 인력을 사법 통역 분야로 이끌기 위해서는 별도 교육이 필요하지만 통역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사법 통역 교육 과정은 전무하다. 과거에는 일부 대학이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사법 통역 전문가 과정을 운영했지만 현재는 모두 중단됐다. 이지은 교수는 “사법 통역을 가르치고 싶어도 법원, 지자체 등 관련 기관이 지원하지 않아 기회가 적다”고 말했다.

  이에 사법 통역을 소관하는 법원행정처가 전문 교육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유진(단국대 아시아중동학부) 교수는 “한국보건복지인재원이 통·번역대학원과 연계해 의료 통역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것처럼 법원행정처도 교육 기관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며 “전문 인력의 사법 통역 진출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통역 전문 인력이 보수가 낮아 사법 통역을 기피한다는 진단도 있다. 박 변호사는 “법원의 보수와 민간 기업에서 받을 수 있는 보수 차이가 크다”며 “능력 있는 통역인도 안정적인 생계를 위해 사법 통역을 그만두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경찰 통역 처우는 법원보다 더 열악하다. 홍 교수는 “경찰은 대기 시간을 근무 시간에 포함하지 않거나 통역에게 교통비를 지급하지 않는 일이 잦다”며 “통역료 지급이 한참 미뤄지거나 누락된 사례도 있어 사명감으로 사법 통역을 시작한 사람조차 선뜻 일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통역 인력을 사법 분야로 유인하려면 통역료 현실화가 필요하다. 정 통역사는 “통상적인 전문 통역인 보수 수준에 맞게 사법 통역료가 책정되도록 사법 기관이 예산을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관별 운영 한계, 통합 관리 시급

  경찰·검찰·법원은 각각 사법 통역 인력을 모집해 인력 풀을 마련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이들 가운데서 통역인을 섭외한다. 인력 풀을 모집하고 섭외하는 과정에서 전문성 검증이 철저히 이뤄지지 않거나 검증된 통역을 활용하지 않기도 한다. 법원이 주관하는 법정 통·번역인 인증 평가 시험이 2019년 도입 후 시행되고 있지만 인증 받은 인력을 적극 섭외하지 않는 것이다. 정 통역사는 “법원행정처는 인증·준인증 인력을 우선 활용하도록 권고하지만 실제로는 개별 법원이 오래전부터 마련한 자체 인력 풀을 더 많이 활용한다”며 “개별 법원이 기존 선발 관행에 의존해 인증 평가의 목적이 퇴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험을 통과한 통역인 선발이 권고에 그치는 이유는 대법원의 통역·번역 및 외국인 사건 처리 예규 제17조가 각급 법원이 자체 통역 인력을 운영할 수 있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유진 교수는 “자격을 갖춘 인력을 실제 사법 절차에 투입할 수 있도록 인증 통역인 우선 선발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경찰과 검찰은 사법 통역인 인증 시험을 별도 운영하지 않는다. 정 통역사는 “경찰과 검찰은 관할청이 공고를 내면 통역사가 개별 지원하는 방식으로 통역을 모집하는데 이때 자격 검증이 형식적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사법 단계의 통역 품질을 보장하려면 자격을 갖춘 인력을 선발할 통합 인증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유진 교수는 “법정 통역뿐 아니라 경찰, 검찰에서의 통역을 아우르는 인증 시험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미국, 호주 등 해외에서는 사법 기관에서 활동하려는 통역인은 공인 자격을 반드시 취득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경찰·검찰·법원이 각각 운영하는 사법 통역 인력을 한 곳에 모아 관리할 필요도 있다. 이지은 교수는 “각 기관이 통역인을 개별 모집하면 전문성이 부족한 인력도 포함될 수밖에 없다”며 “국가기관이 인력풀 운영을 도맡는 등 통합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사법 통역인 통합 관리 체계 도입 후 법원에서만 운영되는 영상 통역을 확대하면 인력 부족 문제 완화를 기대할 수 있다. 지난해 7월 법원행정처는 법정통역센터를 개소해 영상 통역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적용 범위가 법원 절차에 국한돼 경찰·검찰 단계에서는 여전히 인력이 부족하다. 홍 교수는 “영상 통역 지원은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통역의 단절을 메울 효과적인 장치”라며 “심야나 지방 등에서 통역인을 즉시 섭외하기 어려운 경찰 수사 단계에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 박병성 기자 bspark@

일러스트 | 박은준 전문기자

사진제공 | 정수빈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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