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 뜨거운 공기를 가르며 걷다가 성북동의 한 골목 끝에서 한옥 카페 ‘케이드’를 만났다. 케이드는 에리다누스자리 끝자락 별에 붙은 이름으로 깨진 달걀 껍질을 뜻한다. 사장님은 이 이름이 비건과 논 비건을 동시에 상징한다고 하셨다.
케이드는 안암역에서 1111번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다. 문을 열면 고즈넉한 한옥의 분위기와 중세풍의 이국적인 느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공간이 드러난다. 서까래가 드러난 천장과 나뭇결이 새겨진 바닥, 햇살을 머금은 화이트 톤 인테리어는 차분한 인상을 준다. 여기에 감각적인 소품과 오묘한 빛깔의 수국이 생기를 불어넣는다. 비가 내리던 어느 저녁 이곳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의 사운드트랙을 듣던 순간과 눈이 소복이 쌓인 날 2층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던 순간은 새내기 시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내가 이곳에서 가장 사랑하는 메뉴는 와인잔에 담겨 나오는 케이드 오트밀 콜드브루다. 체리와 베리, 다크초콜릿과 위스키 향미가 차곡차곡 쌓인 콜드브루와 오트밀크의 부드러운 곡물향이 조화롭다. 한 모금만으로도 작은 의식을 치른 듯 마음이 고요해진다. 디카페인 버전도 충분히 맛있다.
2층 작업실에서 사장님이 직접 굽는 디저트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과 제철 과일 등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건강에 좋고 풍미가 깊다. 비건 메뉴인 무화과 바질 쿠키는 무화과 잼의 묵직한 달콤함과 바질의 향긋함이 잘 어우러진다. 단호박 스콘도 재료 본연의 맛이 우러나 매력적이다. 이번 가을에는 무화과 말차 케이크를 먹어 보길 권한다.
케이드는 계절마다 고유한 풍경을 담아내고 매번 다른 위로를 건네는 성북동의 별 같은 카페다. 비 오는 날 우산이 없어 머뭇거리던 내게 아무렇지 않게 우산을 내주던 사장님처럼 이곳은 따뜻하고 섬세하다. 어느새 나는 쿠폰을 세 장 채운 단골이 됐다. 갑갑한 열람실 공기에 지칠 무렵 바람 쐬러 나와 이곳에 들러보는 건 어떨까.
남예림(문과대 사회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