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즈는 전 세계 대중가수들에겐 영광스러운 무대이자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행사로 금빛 축음기 모양의 트로피는 음악성과 상업성을 영원히 담보하는 무한대의 우량주다. 그런데 이 시상식에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보수적인 그래미 어워즈’. 자유롭고 개방적인 미국 음악계를 총결산하는 그래미를 왜? 음악 평론가나 전문가들도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보수적이라고만 얘기하지, 그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사람은 없다. 세계 최고의 대중음악 시상식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알면 방탄소년단이 왜 그래미를 지금까지 수상하지 못했는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K팝 가수들이 왜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1955년에 발표된 빌 헤일리(Bill Haley) & 히스 코메츠(His Comets)의 ‘Rock around the clock’과 1956년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등장은 전 세계 대중음악의 판도를 뒤엎은 ‘혁명’이었다. 그동안 절대적인 지분을 갖고 있었던 재즈와 스탠더드 팝은 기성세대의 올드한 음악이 됐고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은 척 베리(Chuck Berry),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 같은 로큰롤 가수들한테 빠져들었다. 대중음악의 이런 지각변동은 음악 기득권층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기존에는 가수와 연주자, 작곡가의 분업화된 시스템에서 음악이 제작됐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조율하고 지원한 제작사가 절대 권력을 쥐고 있었지만, 로큰롤 가수들은 대부분 소규모 음반사에서 자기 스스로가 만든 곡을 직접 연주하고 불렀기에 메이저 음반 제작사엔 위협적인 도전자였다. 당시 대형 음반사였던 MGM, RCA, 캐피털, 컬럼비아, 데카는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로큰롤 가수들의 기세를 뿌리째 뽑고 배척하기 위해서 공동으로 거액의 자본을 대고 권위 있는 시상식을 만들어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하려고 했다. 이것이 그래미 시상식이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그래미 시상식은 그래서 보수적이다.
1959년 5월에 거행된 제1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가장 중요한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로큰롤 가수의 노래가 아니라 이탈리아 가수 도메니코 모두뇨(Domenico Modugno)의 ‘Nel blu, dipinto di blu (Volare)’다. 자신들을 위협하는 미국의 불량한 로큰롤 가수보다 유럽 가수에게 대상을 내어줄 정도로 그래미 위원들은 정적들을 철저히 응징했다. 미국에서 ‘로큰롤의 황제’라는 별명까지 하사받은 엘비스 프레슬리조차 1968년에 최우수 종교 부문에서 그래미를 수상한 것이 첫 수상이었고 비틀즈(The Beatles)도 1960년대에 모두 4개의 트로피만 허락했다.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는 1987년에 평생 공로상으로 처음 수상했으며 일렉트릭 기타의 아버지 지미 헨드릭스(Jimmy Hendrix)와 위대한 그룹 더 후(The Who)는 아예 없다. 그래서 2020년에 세상을 떠난 리틀 리처드는 생전에 그래미 시상자로 나와 “나는 그래미를 받지 못했다”고 공개적으로 성토한 바 있다. 70여 년이 흐른 현재, K팝 가수들이 바로 그 로큰롤 가수들과 같은 입장이다.
로큰롤 음악이 세계를 지배하던 1959년에 시작된 그래미는 순수하지 못한 시상식이다. 그래미 어워즈를 주최하는 전미 레코딩 예술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자신들의 변화와 혁신을 증명하고 싶다면 2026년도 그래미 시상식에서 K팝 가수나 노래에 트로피를 수여해야 한다.
소승근 음악 평론가·음악 웹진 이즘(IZM)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