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 선별·재생 치료에 활용

 동물실험 대체 기대도

“AI 기술로 품질 균일화해야”

 

  오가노이드는 인간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재현한 장기 유사체다. 평균 지름이 1~2㎜로 작아 미니 장기로도 불린다. 사람의 줄기세포에 목표 장기로 분화시키는 유도 신호를 투입해 배양한다. 장기마다 연구 수준은 다르지만 스스로 재생되지 않는 뇌, 심장까지 대다수 장기가 오가노이드 기술로 구현된다. 실험동물보다 인체의 구조와 비슷한 만큼 신약 개발과 맞춤형 치료제 선별, 재생 치료의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기술로는 장기의 기능을 완전히 구현할 수 없지만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연구로 상용화에 다가가고 있다.

 

  환자 특성 반영한 맞춤 치료 도와

  오가노이드는 환자 개인의 유전 특성에 맞는 치료제 탐색에 효과적이다. 환자의 세포를 채취한 오가노이드에 각종 질병을 재현하고 여러 약물을 투여한 뒤 반응을 비교하면 치료 효과가 가장 큰 약물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정상 세포의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난 암세포는 환자마다 유전적 특성이 고유한 만큼 오가노이드로 맞춤 항암제를 선별할 수 있다. 선웅(의과대 의학과) 교수는 “암세포는 환자에게서 직접 채취할 수 있고 성장 속도도 빨라 오가노이드 배양이 쉽다”며 “각 환자에게 가장 잘 맞는 항암제를 선별하는 임상 연구에서 최근 예측 정확도와 치료 성공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오가노이드는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도 도움을 준다. 초기 뇌를 모사하기 쉬워 소두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 등 태아기 신경 발달 이상으로 나타나는 희귀질환 치료제 연구에 적합하다. 환자의 세포를 채취해 만든 뇌 오가노이드로 치료제 후보물질의 효능을 시험하는 것이다. 선 교수는 “희귀질환은 유전적 원인이 뚜렷하기에 환자에게서 유전적 이상이 있는 세포를 채취해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면 환자의 증상을 재현할 수 있다”며 “뇌 오가노이드에 후보 물질을 시험하고 증상 완화에 효과가 있는 물질은 추후 치료제로 개발한다”고 설명했다.

  손상된 조직에 오가노이드를 이식하는 재생 치료법도 연구 중이다. 상용화한다면 기존 약물로 치료하기 어려운 심각한 장기 손상 질환도 치료 가능해진다. 현재 궤양성 대장염, 크론병 등 중증 염증성 질환자에게 장 오가노이드를 이식하는 재생 치료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손미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아젠다연구소장은 “염증이 장 깊숙이 퍼졌거나 점막 손상이 심해 세포의 재생 능력이 떨어진 환자는 기존 치료제로 효과를 보기 어렵다”며 “장 오가노이드를 이식해 장 점막 재생을 유도하는 치료법이 비임상 단계에서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받아 사람 대상 연구가 2022년 세계 처음으로, 국내에서는 2023년에 시작됐다”고 밝혔다.

배양한 지 일주일 지난 장 오가노이드가 배양접시에서 자라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200배율 현미경으로관찰한 장 오가노이드.
배양한 지 일주일 지난 장 오가노이드가 배양접시에서 자라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200배율 현미경으로관찰한 장 오가노이드.

 

  실험동물보다 값싸고 정확해 

  오가노이드는 신약 개발을 위해 시행되던 동물실험의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오가노이드에 신약 후보 물질을 투여하면 약물의 효능과 부작용을 동물실험보다 더 정확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 소장은 “사람과 종이 다른 실험동물보다 사람 세포로 만든 오가노이드를 활용해 검증하면 인간과 유사한 반응을 관찰해 신약 후보를 정확히 선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용 절감에 유리하다는 장점도 있다. 조일주(의과대 의학과) 교수는 “실험동물은 개체 간 편차가 커 수백 마리를 사용해야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만 오가노이드는 동일 조건의 세포를 대량 배양해 한 번에 실험하므로 비용을 아낀다”고 설명했다. 오가노이드 시험법 도입은 실험동물의 고통을 고려해 동물실험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윤리적 추세에도 부합한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전임상 안전성·독성 평가에서 대체 시험을 확대해 동물실험 의존을 낮추겠다는 로드맵을 공개했고 유럽연합도 동물실험 순차 폐지를 위해 비동물실험 기술 중심의 평가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오가노이드가 동물실험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구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손 소장은 “초기에는 동물실험 결과, 오가노이드 시험 결과와 임상 데이터를 비교하며 신뢰할 만한 기준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민이(카이스트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 AI가 딥러닝 기술로 약물 반응 패턴을 학습해 동물실험 없이도 약물 반응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학 융합으로 인체와 비슷하게

  다만 오가노이드가 실험동물과 달리 몸 전체를 구현할 수 없어 안전성 검증에 빈틈이 생긴다는 우려도 있다. 조 교수는 “오가노이드에는 혈관, 면역세포, 신경망 등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아 장기의 기능을 완벽히 모사하지 못한다”며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약물 반응 실험 결과가 실제 인체에서 나타나는 결과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오가노이드 기술은 공학 분야와 융합해 혈관 같은 복잡한 생체 환경을 구현하는 등 실제 인체에 가까운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오간온어칩(Organ-on-a-chip)은 기존 오가노이드 배양접시가 구현하지 못한 체내 미세 환경을 비교적 정밀하게 재현한다. 선 교수는 “기존 오가노이드는 혈관내피세포·면역세포·기질세포 등 주변 세포와의 상호작용이 부족해 실제 장기의 기능을 모사하기 어려웠지만 오간온어칩을 이용하면 부족한 환경 요인을 공학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했다. 오간온어칩은 산소·영양 분·배양액 등이 흐르는 미세 유체 통로, 세포가 자라고 기능하는 세포 배양실, 유체 통로와 세포 배양실 사이에서 산소·영양분·약물·신호 물질 등의 교환이 이뤄지는 막으로 구성된다. 선 교수는 “이미 간, 폐 등 다양한 장기가 오간온어칩으로 구현돼 있을 뿐 아니라 여러 칩을 연결해 장기의 상호작용을 모사하는 다중 장기칩도 개발됐다”며 “개별 장기 단위로만 존재하는 오가노이드의 한계가 극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 오가노이드를 연결하는 어셈블로이드(Assembloid) 기술도 오가노이드로 실제 인체와 가까운 구조를 구현하려는 시도다. 조 교수는 “어셈블로이드 기술로는 장기 간 상호작용을 넘어 특정 장기의 변화가 몸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할 수 있다”며 “대뇌, 중뇌 등 서로 다른 뇌 영역을 모사한 오가노이드를 결합해 신경 연결을 구현한 연구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상용화, 표준 제작법 마련부터

  오가노이드 기술 상용화가 어려운 이유는 동일한 실험 결과를 보장하는 표준 제작법이 없어서다. 조 교수는 “아직 오가노이드의 형성 과정을 충분히 알지 못해 같은 날, 같은 연구자가 10개의 오가노이드를 만들어도 크기나 반응 신호가 조금씩 다르다”며 “최근 변인을 찾아 통제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세계 최초로 장 오가노이드 기술의 ISO 표준화를 추진하고 있다.

  AI 기술은 오가노이드 제작의 재현성 확보와 표준화를 가속할 전망이다. 최 교수는 “동일한 조건에서도 똑같은 오가노이드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는 오가노이드 제작이 수작업에 의존하기 때문”이라며 “최근 주목받는 피지컬 AI 기술을 활용하면 균일한 오가노이드를 대량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오가노이드 제작 비용과 시간 절약은 여전한 과제다. 선 교수는 “하나의 오가노이드를 완성하기까지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개월이 걸리고 뇌나 심장처럼 재생이 되지 않는 장기는 수백 일 이상 배양해야 해 시간과 비용 부담이 크다”고 했다. 이에 장기를 제작하는 3D 바이오프린팅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선 교수는 “기능이 구현된 장기를 출력하는 것은 어렵지만 장기로 자랄 수 있는 세포 구조물을 프린팅해 배양하는 것만으로도 제작 기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연골, 피부 등 단순한 조직은 이미 3D 바이오프린팅으로 제작해 바로 이식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상용화를 이루려면 줄기세포나 오가노이드가 필요할 때 즉시 공급받을 수 있는 은행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조 교수는 “질환별 줄기세포나 오가노이드를 체계적으로 보관·관리하면 연구 효율성을 높이고 맞춤형 치료제 개발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선 교수도 “현재 오가노이드는 각 연구실에서 가내수공업처럼 제작돼 대량 공급이 어렵다”며 “실험동물처럼 표준 공급망이 구축돼야 연구의 재현성과 효율성이 높아지고 병원과 기업도 오가노이드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 | 서윤주 기자 sadweek@

일러스트 | 박은준 전문기자

사진제공 | 손미영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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