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사랑하기 위한 죽음 연구

자유의지 행해야 좋은 죽음

“품위 있는 임종 맞아야”

 

임병식 교수는 “죽음을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살아가게 하는 힘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병식 교수는 “죽음을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살아가게 하는 힘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시대가 바뀌며 죽음의 의미도 달라졌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운명, 중세 기독교 시대에는 구원에 이르는 길목으로 여겼다. 17세기에는 과학과 합리주의가 등장하며 죽음은 신성불가침이 아니라 인간 이해의 영역이 됐다. 20세기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죽음을 실존적 성찰의 출발로 삼았다.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타인의 죽음으로 인간관계의 윤리를 설명했다. 이처럼 죽음으로 삶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20세기 죽음 담론을 형성했고 싸나톨로지(Thanatology)라고 불리는 죽음학을 낳았다. 

  죽음학의 연구 주제는 죽음의 의미와 인식뿐 아니라 존엄사와 애도의 방식 등 실천의 문제까지 포함한다. 한국싸나톨로지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임병식(한신대 휴먼케어융합대학원 죽음교육상담전공) 교수는 “죽음 성찰은 곧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며 “죽음으로 인한 상실, 슬픔 등 부정적 경험을 마주하고 삶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 죽음학을 소개해 달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인간은 그 운명 앞에서 수동적인 객체로만 머무르지 않아요. 오히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자문하며 남은 삶을 어떻게 살지 결정하죠. 이 자유의지로부터 죽음학이 출발합니다. 죽음학은 자신과 타인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 슬픔, 분노, 외로움 등 감정과 대면하는 방법을 탐구하고 철학, 종교, 문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을 활용해 삶의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 죽음을 연구하는 이유는

“죽음을 공부하면 무엇을 삶의 우선순위로 두고 살아가야 할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이라는 한계 상황을 전제하면 비로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본질에 가까운 질문을 던질 수 있죠. 답을 찾으면서 삶의 가치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인간관계를 아끼게 됩니다. 결국 죽음을 연구하는 이유는 삶을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죠.”

 

  - 죽음을 연구하는 방법이 궁금하다

“죽음학에는 ‘죽음의 부정성’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죽음을 둘러싼 상실, 아픔, 눈물 등 불쾌한 요소를 의미하죠. 저는 이 부정성을 마주하며 삶 속 불쾌한 요소를 처리하는 방법을 인문학·심리학 관점에서 연구합니다. 부정성을 겪는 내담자나 한계 상황에 다다른 사람의 심리적 기제를 분석하거나 한 집단이 죽음의 부정성을 어떻게 마주하고 처리하는지 살펴보죠. 이러한 연구 결과를 자살 예방 교육, 애도 교육, 예술 치유 등 실천 영역에 적용하곤 합니다.”

 

  - 죽음 인식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죽음의 부정성을 대면하지 않고 나중으로 미루면 우리는 삶의 본질을 깨달을 수 없고 나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죽음 앞에 있다는 절박함이 있어야 삶에 대해 자문할 수 있죠. 인생은 상실과 고통의 연속이지만 죽음의 부정성을 마주하면 삶이 선명해집니다. 지금까지 불행이라 여긴 싸움, 외로움, 눈물까지도 살아있으니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죽음과 만나면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최선의 하루를 살았는지, 가장 소중한 것을 선택하고 있는지 자문하며 살아갈 수 있죠.”

 

  - 죽음학은 자살을 어떻게 바라보나

  “죽음학에서는 자살을 생존 욕구의 의지적 표현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경쟁으로 자신을 소진시키는 사회에서 물질 소유를 인생의 본질로 여기고 타인의 욕망 속에서 살고 있어요. 이러한 강제된 사회 구조 속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상실했을 때 비본질적인 삶에서 본질적인 삶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것이 자살입니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우리는 자살을 한 사회의 문제로 보고 성찰해야 하죠. 예방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자살을 공개적으로 다룰 담론의 장이 필요합니다.”

 

  - 저서 <죽음학교본>에서 애도의 일상화를 강조했다

  “애도는 장례식장에서만 존재하지 않아요. 일상에서 상실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태도도 애도입니다. 이처럼 일상화된 애도로 죽음을 삶의 일부로 수용하고 부정적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대면하는 개인이 많아지면 사회적 인식도 달라질 겁니다. 사회에서는 보통 부정적 감정을 나쁜 것이라고 여겨 아픔, 슬픔, 눈물을 체화할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시간, 상실의 감각을 가지고 죽음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개인은 물론 공동체도 건강할 수 있죠.”

 

  - 6월 영국 하원에서 말기 환자가 의사의 도움으로 스스로 삶을 마무리하는 조력 존엄사 허용 법안이 통과됐다

  “존엄사는 사람들의 물질적 필요가 충족되고 삶의 질을 숙고하면서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삶의 질 논의와 함께 죽음의 질이라는 화두도 부상한 것이죠. 한국도 품위 있는 임종을 위해 조력 존엄사를 허용해야 합니다. 품위 있는 임종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에 대해 자율적 결정권을 가져야 하죠. 타자의 강제성 없이 삶의 질과 가치관에 따라 행해지는 조력 존엄사는 품위 있는 임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서양과 동양의 죽음관 차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 뿌리를 둔 서구 문화에서는 죽음을 개인의 실존적 한계로 바라봅니다. 서구 윤리는 인간의 존재를 공동체의 일부보다는 독립된 주체로 인식해 죽음이 개인의 주체성과 연관돼 있다고 여기죠. 반면 동양의 유·불교는 죽음을 자연과 공동체의 순환 속에서 이해해요. 유교는 죽음을 연속하는 관계의 일부로 규정합니다. 이 정신은 제사라는 행위에서 선명히 드러납니다. 우리가 제사를 지낼 때 향을 피우는 이유는 조상의 은덕이 향으로 자손에게 전해진다는 믿음 때문이죠. 죽은 자와 산 자가 단절되지 않고 자연의 순환에 따라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죽음을 변화와 윤회의 일부로 이해합니다.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집착을 내려놓고 해방에 이르는 관문이 됩니다. 다시 말해 서양은 죽음으로 ‘개인의 실존’을 묻고 동양은 죽음으로 ‘관계적 존재’를 확인합니다.”

 

  - 죽음학에서는 다잉-웰과 웰-다잉을 구분한다

  “다잉-웰(dying-well)은 죽어가는 과정을 품위 있게 살아내는 것이고 웰-다잉(well-dying)은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웰-다잉 개념은 유교의 죽음관에서 잘 드러나죠. 유교에서는 죽음을 소인의 죽음인 사(死)와 군자의 죽음인 종(終)으로 구분해요. ‘사’는 자각과 알아차림 없이 내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왜 여기 있는지 모르는 채 죽는 신체적 죽음입니다. ‘종’은 임종의 ‘종’으로, 내가 누구인지, 왜 여기 있는지, 주어진 일을 자각하고 삶을 마치는 죽음입니다. 우연한 죽음을 맞아도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열정적으로 살다 세상을 떠났다면 ‘종’인 셈이죠. 군자는 삶의 우연성이나 불확실성 속에서도 죽음을 자각하고 삶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져 자유의지를 행하는 존재입니다.”

 

  - 결국 좋은 죽음은 좋은 삶에서 만들어지나

  “죽음학에서 지향하는 삶의 태도는 자아를 끊임없이 내려놓는 ‘자아의 죽음’입니다. 자아의 죽음은 ‘내가 나라고 고집하는 좁은 자기’, 즉 소유, 지위, 관계와 동일시하는 환영의 해체를 뜻하는 것이죠. 죽음을 직면한 사람은 이러한 고집의 덧없음을 깨닫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를 확장할 수 있죠. 나만의 고유성은 타인 없이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내 자아를 내려놓으면 각자의 다름을 존중하고 연결될 수 있습니다.”

 

글 | 박영민 기자 oldmin@

사진 | 임세용 기자 sy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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