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단절 막는 해외 취업
“연수 중심 취업 지원해야”
해외에서 단기 취업 후 귀국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 국내 취업난이 심해지며 해외 체류 경험을 경력으로 삼으려는 인식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정부도 국내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청년 해외 취업을 꾸준히 지원해 왔다. 그러나 이들이 제도적 결함으로 귀국 후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 재취업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짧은 해외 체류 후 귀국
정부는 1998년부터 청년 고용률과 국내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해외 취업 지원 사업을 시행해 왔다. 실업 장기화로 인한 재취업 어려움을 지원 사업으로 경감하려는 의도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무직 기간이 길수록 기업이 미취업자의 능력을 의심하게 된다”며 “해외 구직은 직장 없는 청년에게 경력 단절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라고 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정부 지원 사업으로 해외에 취업한 청년은 2016년 4811명에서 2024년 5720명으로 매년 점진적으로 늘었다. 올해까지 약 20만 명 이상의 청년이 이러한 지원 제도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해외 취업을 지원하기 시작한 1998년에는 환율이 높아 해외에서 국내보다 높은 임금을 받기 쉬웠지만 최근에는 이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한국 경제가 성장하며 선진국과 임금 수준이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김민규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지 적응의 어려움이나 문화·제도 차이 등 리스크를 비용으로 환산해 고려하면 통상 한국보다 3~4배 더 벌어야 경제적 이유로 해외 취업을 선택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청년의 해외 취업이 늘어나는 건 이들이 해외 경험을 국내 취업을 위한 경력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2023년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해외 취업 청년의 55.6%가 회사를 그만두고 국내 재취업을 시도했다. 러시아에서 6년간 일한 33세 남성 A씨는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 작성과 면접을 수십 번 반복하며 내 자신이 끊임없이 소모되는 느낌이었다”며 “짧게라도 일을 하고자 해외 취업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해외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동준(카이스트 전산학24) 씨는 “단기간이라도 전공 관련 해외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으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취업할 때 유리하다”고 말했다. 목적이 변한 만큼 해외 체류 기간도 짧아지고 있다. 강득구 의원실이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받은 ‘해외 취업자 사후관리 설문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정부 지원을 받아 해외로 취업했던 청년 6751명 중 46.6%(3129명)가 국내로 복귀했고 이 가운데 64.2%가 2년 이하, 12.6%가 2~3년 만에 돌아왔다.
일자리 질 높여 지원 목적 달성해야
해외에서 짧은 경력을 쌓고 돌아오는 청년이 많아지자 경력을 증빙할 방법이 복잡하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예컨대 국내 취업자는 건강보험가입내역서 등 정부와 기업이 경력을 확인할 수단이 다양하지만 해외 취업자는 구직자가 퇴사한 기업에서 직접 경력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김 부연구위원은 “경력이 사실인지 증빙하기 어려워 한국 기업에서 인정받지 못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김영석(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외국에서 유학하면 성적표에 영사가 확인 도장을 찍어주듯 경력증명을 공증 범위에 포함하도록 관련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 취업으로 취업난을 해소하려는 정부와 경력을 쌓으려는 청년의 목적을 모두 달성하려면 정부가 연결하는 해외 일자리의 질을 높일 필요가 있다. 지난해 정부 지원 사업으로 해외 취업한 청년의 72%는 알선 방식을 이용했고 나머지 28%만 연수 방식이었다. 정부가 적절한 구인 기업을 찾아 면접을 주선하는 알선보다 해외 기업이나 기관에서 일정 기간 직무 교육과 훈련을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경로를 마련하는 연수가 경력의 질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청년정책연구본부장은 “해외 취업자의 70% 이상이 대졸인 만큼 단순한 인력 송출보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선진 기술을 배우고 오도록 유도하는 데 지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며 “교환학생이나 KOICA 등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인턴십 제도를 참고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외국의 외국계 기업에서 현지 시스템을 배우도록 일자리를 발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기업의 러시아 법인에서 근무한 A씨는 “현지 실무보다 본사가 요청하는 해외 법인의 재무·인사 등 자료를 제출하는 게 주 업무였다”며 “간혹 현장에서 업무를 직접 기획해 처리할 때는 주재원을 포함해 현지 법에 능한 사람이 거의 없어 직접 공부해야 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정부가 해외 취업의 특성을 살리는 경험을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 백하빈 기자 hpaik@
인포그래픽 | 송민경 기자 pu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