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공론장, 왜곡된 정보 소비
언론미디어가 부추긴 혐오
“반지성주의로부터 벗어나야”
최근 서울 명동 등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을 중심으로 외국인 혐오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시위에서는 “차이나 아웃”, “짱깨는 돌아가라” 등 중국인에 대한 반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한국 사회의 깊어지는 반중 정서와 혐오 정서를 지적한 책 <짱깨주의의 탄생>을 쓴 김희교(광운대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는 “혐오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 사회의 문화적 감수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외국인 혐오 정서가 퍼지는 원인은
“전 세계가 저성장 국면으로 들어선 것과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경제 불황으로 인해 사회 질서가 흔들린 유럽에서는 극우 집단이 등장해 인종 혐오를 바탕으로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하죠. 이주자 배척이 대표적입니다. 이주자나 이민자를 배척해 자신의 세력을 결집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경향이 유럽을 넘어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 청년층을 중심으로 중국인 혐오가 확산됐다
“청년이 사회 문제에 관해 토론할 공론장이 사라지며 왜곡된 정보를 반복 소비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알고리즘으로 중국에 관해 왜곡된 정보를 습득하기에 오프라인에서 그와 반대되는 의견을 접하거나 체계적합리적 사고를 하기 어렵습니다. 청년들 사이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식도 약화돼 서로 간의 대화가 개인적인 문제, 자기 생존의 문제에 치중되기도 하죠. 외국인 혐오 문제는 조금만 생각하면 불합리하다고 규정할 수 있는데, 공론장이 부족해 혐오가 정상 여론을 가장한 채 비정상적으로 증폭하고 있어요.”
- 명동 반중 시위 등 집단행동이 나타난다
“국가 간 분쟁으로 특정 국가에 대한 거부 정서가 생겨나는 것은 늘 있는 일이지만 인종주의적 이분법으로 특정 국가가 무엇을 하든 다 나쁘다고 규정하는 것은 거부 정서와 다릅니다. 특히 시위는 혐오를 지지하는 사람들만으로는 일으킬 수 없죠. 지금의 혐중 시위는 만연한 혐오 이데올로기 속에서 시위 조직이 형성되고 그 조직에 자금을 대는 사람들까지 있어 심각한 문제입니다.”
- 외국인 혐오 시위가 국익 훼손으로 이어지나
“중국에서는 한국의 자국민 혐오 문제를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미 중국 SNS에는 ‘왜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한국 여행을 가야 하느냐’는 반응이 자주 공유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죠.
경제적인 타격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이 0.8%에서 0.9%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탈중국 정책으로 인해 대중국 무역수지가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선 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죠. 외국인 혐오가 심해지면 관광 산업이 무너지고 국가 이미지를 손상해 경제적으로 심각한 국익 훼손을 초래할 수 있죠.”
- 사회적 피해도 만만찮을 듯하다
“특정 세력을 혐오해 사회가 분열되면 혐오 비용이 들게 됩니다. 외국인 혐오와 폭력이 늘어나면 폭력에는 폭력으로, 혐오에는 혐오로 대응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도 덩달아 늘어날 수밖에 없죠. 서구 사회는 수십 년 전 발생한 유대인 혐오로 막대한 혐오 비용을 치르고 있어요.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는 인종 혐오로 인해 내전, 인종 청소 같은 일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죠. 우리도 막대한 혐오 비용을 치르기 전에 인종 혐오에 강력히 대응해야 합니다.”
- 미디어가 혐오를 확산재생산하나
“언론 보도를 할 때나 콘텐츠를 제작할 때 인종주의에 대한 감수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언론은 외국인이 술집에서 사소한 말다툼을 해도 그들의 국적을 강조해 보도하고 있습니다. 문화적으로도 영화 <황해>에서 시작된 조선족 비하와 혐오가 <청년경찰>이나 <범죄도시>에 이르며 장르처럼 자리 잡았죠. 자연스레 조선족을 범죄자로 인식하며 중국인을 혐오하는 사례가 늘어났습니다. 언론이나 미디어 콘텐츠에서의 인종 혐오 수준이 몇십 년 전과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심각할 정도로 강화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언론은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해, 미디어 콘텐츠는 상업적 이해관계 때문에 인종주의를 유발하는 자극적인 표현을 남발하며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를 유발하고 있죠.”
-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문화적 감수성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던 과거 사회는 여성의 얼굴과 몸매를 함부로 평가했고 여성 혐오도 쉽게 표출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토론하고 규제해 많이 개선했죠. 마찬가지로 외국인 혐오 문제도 토론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규제와 교육을 병행해야 합니다. 인종 혐오 문제를 정식 교과 과정에 포함해 혐오가 무엇인지, 혐오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가르쳐야 합니다.”
- 일부 국가에서는 인종 혐오를 법으로 금지한다
“외국인 혐오 시위는 생명권으로 보장돼야 할 상대방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입니다. 존엄성은 표현의 자유보다도 상위의 가치를 가진 개념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가 외국인 혐오를 단순 범죄 행위보다 가중해 처벌합니다. 다민족 국가인 싱가포르는 정체성 기반 정치를 강력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민족이나 종교에 기반해 선거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행위조차도 금지하죠. 이는 인종주의적 사고방식을 완전히 차단하려는 의도입니다. 미국에서도 범죄 보도 시 수사식별에 실질적 도움이 될 때만 인종 또는 민족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지침이 있죠. 피의자의 국적이나 인종을 밝혔을 때 인종주의 폭력을 강화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법 제정, 교육 확대 등 인종주의를 유발하는 행위를 제어하는 방식을 적용해야 합니다.”
- 법적 규제로 외국인 혐오를 차단할 수 있나
“외국인 혐오가 규제로 모두 사라질 수는 없지만 혐오의 확산을 차단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일본의 ‘헤이트스피치 방지법’을 예로 들 수 있죠. 외국 출신자에 대한 차별적 언동을 금지하는 법 제정 이후 거리에서의 혐한, 혐중 등 특정 인종, 집단에 대한 혐오 발언을 외치는 사람들이 이전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 최근 특정 국가인종에 대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혐오 표현을 일삼고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벌어지는 만큼 관련 법안 마련이 필요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중국인을 보호하는 법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개정안 법조문을 읽어보면 미국, 일본 등 모든 국가와 인종에 대한 명예훼손을 금지하고 있죠. 타 국가에 대한 합리적 비판을 처벌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인종에 대한 혐오를 처벌한다는 것입니다.”
-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표현의 자유는 혐오할 권리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상대의 권리를 해치지 않을 때만 행사할 수 있는 제한된 권리이기에 인종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혐오 발언을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포함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표현의 자유에 관용적으로 대응해 왔지만 외국인 혐오가 확산하는 지금 표현의 자유와 혐오를 명확히 구별해야 합니다.”
- 개인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외국인 혐오를 경계하기 위해서는 반지성주의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혐오는 이성이 아니라 감성, 논리가 아니라 이익에 기초합니다. 조금만 더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혐오를 극복할 수 있죠. 인종 혐오가 비합리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적극 저항해야만 사회적 인식이 바뀔 수 있습니다.”
글 | 이재윤 기자 jylee@
사진 | 임세용 기자 sy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