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창출하려 기행 벌여 

일반 방송과 달라 규제 난항

“플랫폼 자율규제 유도해야”

 

기행 방송 피해가 심각해지자 부천시는 부천역 북부광장에 기행 방송 근절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단속 강화로 기행 방송으로 인한 민원이 줄었다.
기행 방송 피해가 심각해지자 부천시는 부천역 북부광장에 기행 방송 근절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단속 강화로 기행 방송으로 인한 민원이 줄었다.

  일부 인터넷 개인 방송인이 공공장소에서 행인 위협, 고성방가, 탈의 등 기행을 벌이고 있다. 현행 법률은 처벌 수위가 낮아 이들을 저지하지 못하고 방송인이 벌어들이는 수익을 나눠 갖는 스트리밍 플랫폼은 규제에 미온적이다. 최진응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 있는 유해 콘텐츠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려면 규제의 중심이 플랫폼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행 방송에 몸살 앓은 부천역

  스트리밍 플랫폼 분석 전문 사이트 Streams Charts에 따르면 지난해 유튜브, SOOP, 치지직 등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한국어로 진행된 실시간 인터넷 개인 방송의 총 시청 시간은 약 48억6000만 시간이었다. 방송의 주제는 뉴스와 정치, 게임, 소통 등 다양하지만 일부 스트리머는 행인이나 인근 상인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폭언하고 시비를 거는 등 주변에 피해를 주는 기행을 소재로 삼는다. 이런 방송에는 길거리에서 서로 싸우거나 선정적인 춤을 추고 탈의하는 등 위협적이거나 불쾌한 모습이 담기기도 한다. 

  부천역 광장은 기행을 일삼는 인터넷 개인 방송인이 몰려든 대표 지역이었다. 지난 6월 30대 남녀가 유튜브 방송 중 성행위를 연상하게 하는 동작을 해 검찰에 송치됐다. 8월에는 술에 취한 스트리머가 생방송 도중 소주병을 들고 뛰어다니며 행인을 위협하다가 공공장소 흉기 소지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부천시는 상인과 거주민 피해, 지역 이미지 훼손 등을 우려해 스트리밍 플랫폼에 요청해 부천역 인근 지역에서의 생방송을 일부 제한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정경환 부천시청 정책기획과 주무관은 “2022년부터 기행 방송 문제가 심각해져 SOOP의 협조로 부천역 인근 방송 활동을 제한했지만 유튜브 같은 글로벌 플랫폼의 협조를 받기는 어려웠다”며 “부천은 만화축제, 영화제 등 문화예술 행사를 꾸준히 개최해 문화도시 이미지를 구축했는데 기행을 벌이는 스트리머 때문에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했다.

  문제가 수년간 지속되자 부천시는 올해 9월 부천역 일대 이미지 개선 전담팀을 구성해 기행 방송을 단속하고 부천역 막장 유튜버 근절 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캠페인을 벌였다. 장시간 앉아 방송하지 못하도록 시설을 교체하고 상권 활성화를 위해 문화 공연, 간담회 등도 개최했다. 윤성효 부천원미경찰서 범죄예방과 경사는 “캠페인 진행 후 기행 방송으로 인한 민원 건수가 전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행 방송인들은 부천역 근처 단속이 심해지자 부평역과 송내역 인근으로 이동해 버젓이 방송하고 있다.

 

  수익 좇는 방송인, 부추기는 시청자

  스트리머가 기행을 소재로 방송하는 이유는 콘텐츠가 자극적일수록 수익 창출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최 조사관은 “콘텐츠의 수위가 높을수록 시청자의 이목을 끌어 조회수와 구독자가 많아지고 이는 광고 수익 증가로 이어진다”고 했다. 시청자는 방송인을 통해 호기심을 해소하려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는다. 김선량 서울시립대 법학연구소 전문연구원은 “방송인과 시청자가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실시간 방송에서의 기행은 시청자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시청 동기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행 방송이 인기를 끌자 스트리머들이 이에 동참하거나 따라 하는 등 기행이 하나의 유행이 됐다. 서영석 부천시 갑 국회의원은 “부천역 광장의 많은 유동 인구를 노려 기행 방송을 한 일부 스트리머를 따라 다른 스트리머가 유입됐다”며 “콘텐츠 촬영 무대가 된 부천역 인근에서 스트리머들이 합동 방송을 하거나 크루를 만들며 방송의 규모를 키웠다”고 말했다.

 

  지침 있어도 사실상 방치하는 플랫폼

  폭력, 욕설, 신체 노출 등 유해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TV 방송과 달리 인터넷 개인 방송의 내용이 통제되지 않는 이유는 사전 심의 절차가 없기 때문이다. TV 방송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 따라 각 방송사가 설치한 심의기구에서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인터넷 개인 방송은 방송법이 정한 ‘방송’이 아니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상 ‘정보통신 콘텐츠’로 분류되기에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개인 방송에 사전 심의를 확대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한다. 대다수 개인 방송이 실시간 스트리밍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최 조사관은 “방송에 비해 콘텐츠는 실시간 송출되는 경우가 많고 하루에도 수만 개씩 업로드되기에 사전에 이를 검토하고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인터넷 개인 방송에 TV 방송과 비슷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애초에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박경신(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순히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인터넷 콘텐츠를 규제하면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처럼 해외에서 인기를 끈 콘텐츠까지 대상이 된다”며 “인터넷 콘텐츠는 공적 책무를 지니는 방송과 다르게 불법 요소만 규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미심위’)가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에 따라 인터넷 개인 방송을 심의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지만 실효성은 부족하다. 특히 유튜브, 트위치 등 해외 플랫폼에 규제 필요성을 설득하기 어렵다. 최 조사관은 “국가마다 합법, 불법인 영역이 다른데 미국 법률을 적용받는 플랫폼에 시정을 강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스트리밍 플랫폼은 자체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다. 유튜브는 커뮤니티 가이드로 △스팸 및 기만행위 △민감한 콘텐츠 △폭력적이거나 위험한 콘텐츠 등의 게시를 제한하고 있다. 치지직은 여러 명이 모여 노래, 선정적인 춤, 신체 노출 등 콘텐츠를 시청자에게 보여주고 얻은 후원 수익으로 순위를 매겨 대결하는 이른바 ‘엑셀 방송’을 전면 금지했다. SOOP도 음란, 도박, 위법 행위, 저작권 침해 등 금지 콘텐츠를 정하고 이를 방송한 이용자에게 경고하거나 계정을 정지시킨다.

  그럼에도 기행 방송이 존재하는 이유는 플랫폼이 규제에 적극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최 조사관은 “이용자가 방송을 하면 자연히 광고 수익이 발생하는데 플랫폼도 그 이익을 얻기 때문에 제재를 강하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률로 플랫폼 책임 강화해야”

  타인에게 불편을 유발하는 공공장소에서의 방송 자체를 규율할 법률이 충분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윤 경사는 “공공장소에서의 방송 자체는 규제가 어렵고 방송 중 고성방가 등으로 주변인에게 명백히 피해를 준 경우에만 경범죄 처벌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범죄 처벌법으로는 10만 원 이하의 벌금만 부과할 수 있어 처벌의 효과가 크다고 보기 어렵다. 서 의원은 “처벌 수위가 낮아 방송인들이 벌금을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기행 방송 피해를 줄이려면 더 강력한 제재 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서 의원은 지난 10일 공공장소에서 위력을 사용해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조성한 자에게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서 의원은 “현재 스트리머의 기행이 경범죄로 규정돼 경찰이 현장에서 적극 대응하기 어렵지만 형법 개정으로 법적 근거가 보완되면 더욱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의 자율규제 기능을 법률로 강화할 필요도 있다. EU는 DSA(Digital Service Act, 디지털서비스법)로 디지털 플랫폼·호스팅 서비스 제공자가 불법·유해 콘텐츠 신고를 접수하는 즉시 신속히 조치를 취하도록 의무를 부과한다. 이 법으로 인해 플랫폼이 마땅한 조치를 내리지 않으면 벌금이나 서비스 중단 등 제재를 받을 수 있어 자율규제 기능이 강화된다. 최 조사관은 “불법은 아니지만 유해한 콘텐츠에 공권력이 개입하는 것은 과도한 조치가 될 수 있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며 “콘텐츠를 유통하고 수익을 공유하는 플랫폼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DSA와 같은 자율규제 방식이 효과를 내려면 시청자의 신고 참여도 중요하다. 박 교수는 “플랫폼이 신고된 콘텐츠를 적극 차단한다면 이용자도 활발히 신고하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글 | 호경필 기자 scribeetle@

사진 | 이경원 기자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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