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연구로 기술 연마
‘고맙다’ 한마디에 보람 느껴
“더 안전한 일터 조성해야”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숙련의 가치가 주목받으며 블루칼라 직종을 선호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가 올해 3월 Z세대 16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3%가 블루칼라 직업군을 긍정 평가했다. 블루칼라 청년들은 손으로 만드는 일의 성취감, 일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 등 저마다의 이유로 현장에 뛰어든다. 고된 노동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기술자가 된 도배사 이지윤(여·34) 씨, 제빵사 조예진(여·21) 씨, 타일 기술자 김한솔(여·28) 씨, 간판 시공 기사 박현우(남·31) 씨도 종일 손을 바삐 움직이며 각자의 작업물을 완성하고 있다.
- 현재 직업을 선택한 계기는
조예진 | “초등학생 때부터 먹고 싶은 음식은 직접 만들겠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좋아하는 빵을 만드는 것도 재밌어 보여 조리 계열 특성화고의 제과제빵과에 진학했죠. 고등학교 3학년 때 전문대 진학을 고민하다가 고등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다시 배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바로 제빵사로 취업했습니다. 업무 강도가 높고 처우가 나쁘다는 걸 알았지만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죠.”
박현우 | “대학에서 전공한 토목공학이 적성에 안 맞는다는 걸 일찍 깨달았습니다. 군대 전역 후 건축 안전 관리자로 잠시 일하며 오랫동안 한 현장을 전담해 관리했는데 압박감이 너무 심했죠. 전과를 고민하다가 친척의 간판 가게 일을 도왔는데 소규모 업체인데도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는 모습을 봤어요. 저도 기술을 배우면 충분히 사업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죠. 일단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대학을 자퇴하고 간판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이지윤 | “서른 살까지 사무직, 서비스직으로 일하다가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고 싶어 도배사가 되기로 했어요. 고등학생 때 시장에서 벽지를 사 친구 집을 도배한 적 있을 만큼 어릴 적부터 공간 꾸미는 걸 좋아했거든요. 인터넷으로 조사해 보니 높은 소득도 매력적이라 바로 도배학원에 등록했어요. 등록한 지 20일 만에 저를 채용하고 싶다는 사장님을 소개받아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 첫 현장 경험의 후기가 궁금하다
조예진 | “제과제빵 명장이 운영하는 베이커리로 현장 실습을 나가며 직장 생활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샌드위치 파트에 배치됐는데 빵을 생산하는 작업이 아니다 보니 흥미가 없었죠. 그런데 오전에 제 일을 끝내고 다른 파트의 직원을 도우며 실제 베이커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성형 파트에서 제가 둥글린 반죽이 오븐 파트에서 구워져 나오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식이죠. 실습을 통해 현장의 업무 체계를 경험해 보니 학교와 다른 환경에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이지윤 | “학원에서 도배를 배울 때는 할 만하다고 느꼈는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학원에서 배운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어요. 학원의 반듯한 벽과 달리 실제 현장은 깔끔하지 않고 공간의 구조도 다양했거든요. 운 좋게 반장님과 단둘이 일하는 현장에서 일을 시작해 초보자지만 중요한 작업을 맡으며 빠르게 실력을 키웠어요. 초보자는 접하기 어려운 실크 벽지를 첫날부터 다루기도 했죠. 긴장하기도 했지만 일이 재밌다 보니 출근이 즐거웠습니다.”
김한솔 | “타일 기술자가 되고 싶어 무작정 현장을 자원했다가 남자도 힘들어서 도망치는 일이라며 거절당했어요. 타일 학원을 수료하고 다시 현장에 갔지만 보조 인력이다 보니 5층 건물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자재와 폐기물을 옮기는 일만 했죠. 힘들 거라고 각오하고 갔는데도 몸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눈물이 났어요. 그래도 타일 한 장이라도 붙여보고 그만두자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 숙련을 위해 어떻게 노력했나
조예진 | “손이 빠르지 않아서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법을 배우고자 선배들께 조언을 구했어요. 가르쳐 주시는 모든 말을 받아 적고 헷갈리는 작업은 영상으로도 찍어뒀죠. 퇴근 후 그날 배운 내용을 노트에 정리하고 출근하면 필기한 대로 실천했어요. 같은 제품이어도 만드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니 저만의 루틴을 찾기 위해 여러 선배에게 질문하고 다양한 방식을 익혔죠.”
박현우 | “입사 초반 오랫동안 실력이 늘지 않아 일을 그만둘 생각도 했어요. 높은 데 올라가기 무서웠고 나사를 박으려니 드릴이 헛돌았죠. 배운 게 있으니 포기하기는 아쉬워 마지못해 버텼습니다. 그렇게 5년 차가 되자 안 되던 작업이 되기 시작했어요. 빗자루질만 시키던 부장님께 칭찬을 들으니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밤늦게 혼자 남아 용접과 페인트칠을 연습했죠. 실력이 늘 때는 감각이 무뎌지지 않게 몸으로 기억해야 기술이 제 것이 되더라고요.”
- 여성으로서 느낀 어려움이 있다면
이지윤 | “현장에는 남성이 대부분이지만 높은 수입을 기대하며 도배를 시작하는 여성도 많이 늘었어요. 그런데 여성은 남성과 신체 조건이 다르다 보니 같은 작업을 해도 몸에 무리가 가기 쉽다는 어려움이 있죠. 저도 요령이 없을 때는 키가 닿지 않아 뒤꿈치를 들고 팔을 무리하게 뻗는 등 다치기 쉬운 자세로 일했어요. 언제나 다치지 않게 몸을 살피며 일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김한솔 | “타일 기술자 중에 여성이 거의 없어서 현장에서는 제가 유일한 여성이에요. 타일 수십 장을 한 번에 옮기는 일이 잦아 신체 부담이 크니 여성이 선택하기 어렵죠. 저도 허리와 무릎 통증이 심하고 늘 피로해요. 또 남성들이 서로 형님, 동생이라 부르며 친목을 다지는 분위기에 녹아들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현장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이 아니라 기술자로서 일하러 간 것인 만큼 억지로 섞이려 노력할 필요는 없어요.”
- 언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나
조예진 | “매일 같은 제품을 만들어도 유독 예쁜 빵이 나오는 날이 있어요. 반죽과 발효가 잘돼 반짝거리는 빵을 만들면 정말 기분이 좋죠. 친구들이 매장 제품을 보고 감탄하며 ‘이거 네가 만든 빵이야?’라고 말하면 더없이 기쁩니다.”
이지윤 | “처음 갔을 때는 지저분했던 집이 도배 후 밝아지면 뿌듯합니다. 집에서 천장과 벽지가 차지하는 면적이 큰 만큼 새로 도배하면 집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거든요. 고객님들이 만족스럽다고 말씀해 주시면 더 보람차죠.”
박현우 | “일을 맡겨주신 분들이 완성된 간판을 보며 감사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가 있어요. 그 표정을 보면 간판 제작에 쏟은 시간과 정성이 떠올라 울컥하죠. 번아웃이 오려다가도 고객 후기를 읽다 보면 다시 일할 힘이 납니다.”
- 지금 소득에 만족하는지 궁금하다
이지윤 | “도배사는 현장 반장님이 실력에 따라 일당을 책정해요. 초보자라면 일당이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죠. 기술자로 인정받을 만큼 실력을 쌓아야 일당도 오르는데 그 수준에 도달하는 시점이 사람마다 달라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요. 저는 3년 차부터 신체 부담이 충분히 보상될 만큼 높은 일당을 받기 시작해서 사무직이나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또래보다는 더 많이 벌어요.”
조예진 | “제빵사는 노동의 양과 강도만큼 소득이 높지 않아요. 기술직이어도 기존 직원을 대체할 인력이 충분해 회사가 높은 급여를 주지 않죠. 연장 근무를 해도 수당을 주지 않는 회사가 많아요. 업계가 좁아 임금 체불을 당해도 재취업에 불이익이 생길까 걱정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습니다.”
- 안전에 관한 걱정은 없나
조예진 | “규모가 큰 회사는 대개 제대로 된 안전 교육을 진행하지만 개인 사업장처럼 인원이 적은 매장 중에는 교육을 아예 하지 않는 곳이 많아요. 충분히 교육받지 못한 신입사원은 오븐 사용법을 몰라 뜨거운 수증기에 화상을 입거나 기계를 사용하다 손이 끼이는 등 사고를 당할 위험이 훨씬 크죠. 안전 교육을 제대로 하는 매장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김한솔 | “한국은 공사 기간이 짧은 편이라 무리하게 일하다가 다치기 쉬워요. 호주에서 한 달 걸리는 작업을 3일 만에 끝내야 할 만큼 업무 강도가 높죠. 오후 4시 이후에는 공사할 수 없도록 규정하는 호주처럼 우리나라도 공사 가능 시간을 법으로 정해두면 좋겠습니다. 공사 기간이 길어지면 시공 단가가 오르겠지만 그만큼 정석으로, 안전하게 일할 환경이 조성될 거예요.”
- 이루고 싶은 목표는
조예진 | “현장에서 연마한 제빵 기술을 의미 있게 활용하고 싶어 재직자 특별 전형으로 대학 입학을 준비하고 있어요. 식품 계열 학과를 나와 식품 회사에서 메뉴를 개발하거나 학교나 학원에서 기술을 가르치고 싶어요.”
박현우 | “지금은 기술을 배우려는 청년이 많고 블루칼라도 존중받지만 제가 간판업에 입문한 20대 초반에는 블루칼라 직종을 무시하는 사회 분위기 탓에 직업이 부끄러웠죠. 이제 간판 기술은 저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자 미래를 책임질 든든한 자산이에요. 전국에서 알아주는 간판 시공 기사가 돼 해외에서도 일하고 싶어요. 한국의 기술력이 세계 수준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고 싶습니다.”
이지윤 | “높은 소득을 원해 시작한 일인 만큼 제 도배 브랜드를 키워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어요. 목표를 이뤄가면서는 예전의 저와 같은 초보자의 고민을 듣고 그들과 친구처럼 일하는 동료가 되고 싶습니다. 현장에서 다른 초보자가 실수하면 그래봤자 종이일 뿐이니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죠. 도배 유튜브를 운영하며 입문하려는 사람들의 고민을 듣다 보니 일자리 지원 센터나 경력 단절 지원 센터에서 강연을 해보고 싶다는 꿈도 생겼어요.”
김한솔 | “올해 3월에 결성한 타일 팀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전국에서 손꼽는 팀으로 성장시키고 싶어요. 팀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면 타일을 비롯해 목공·도장·설비 등 다양한 분야를 총괄하는 인테리어 업체 설립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노력하지 않으면 일감을 얻을 수 없는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주체적으로 살고 꿈도 키우고 있습니다.”
글 | 박효빈 기자 binthere@
사진 | 박효빈·박인표·배은준 기자 press@
사진제공 | 박현우·조예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