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메뉴 선택지 없는 고려대 식당

수요 적어 운영비 부담되는 탓

“성분 표시하려면 예산 지원 필요”

 

  건강, 동물 보호, 환경 보호 등 다양한 이유로 동물성 식품을 섭취하지 않는 비건 인구가 늘었지만 고려대 학생식당에는 비건을 위한 메뉴를 찾아보기 어렵다. 일부 학생식당에서 제공하는 채식은 일반식과 조리공정을 구분한 비건 메뉴가 아니라 육류가 포함된 샐러드나 반찬뿐이다. 비건 메뉴에 대한 낮은 수요와 비용 부담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가운데 영양 성분 표시 의무제 도입, 공공성을 고려한 학생식당 위탁 업체 선정 등 학교 차원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메뉴에 없고 성분 표시 미흡

  학생회관 학생식당, 애기능생활관 식당, 안암학사 구내식당, 산학관 식당, 교우회관 학생식당 등 고려대 서울캠퍼스의 5개 단체급식 식당은 모두 비건 메뉴를 제공하지 않는다. 애기능생활관 식당에서 운영 중인 샐러드 구독 서비스는 닭가슴살, 소불고기 등 육류가 포함돼 비건이 이용하기 어렵고 안암학사 구내식당, 산학관 식당에서 제공하는 채식 메뉴는 일반식 반찬으로 나오는 샐러드뿐이다.

  조리 과정에 동물성 육수나 조미료가 사용됐는지 안내하는 성분 표시도 미흡하다. 고려대 학생식당은 원산지 표시 대상 식재료와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중심으로 성분을 안내한다. 비거니즘 동아리 뿌리:침 회원 강혜진(공과대 산업경영23) 씨는 “겉보기에 채소 반찬이더라도 성분 표시가 없으면 동물성 식재료가 사용됐는지 알 방법이 없다”며 “고기가 들어간 음식인지 알 수 없어 불안한 마음에 학생식당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외국에 비해 국내 비건 인프라가 부족한 만큼 외국인 비건 학생의 불편은 더욱 크다. 야미니 자인(Yamini Jain, 애리조나주립대) 씨는 “원래 다니던 학교에는 모든 식당에 비건 학생을 위한 코너가 있었다”며 “비건 메뉴를 찾기 어려워 보통 캠퍼스 안에서 식사하지 않는다”고 했다. 보이쿠 안토니아(Voicu Antonia, 디자인조형25) 씨는 “학생식당, 전공세미나, 공식 행사 등 학내에서 비건 메뉴를 찾기 힘들다”며 “학생식당에 비건 메뉴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른 국내 대학은 비건 학생의 식사를 위한 별도 선택지를 마련하고 있다. 성균관대 학생식당은 식물성 불고기와 두부를 활용한 비건 간편식을 상시 판매하며 한국외대는 직영 학생식당에서 비건 김밥을 판매한다. 서울대 학생식당은 주메뉴가 비건 또는 채식일 경우 비건 학생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메뉴판에 이를 별도로 표시한다.

 

  적은 수요부족한 공간이 걸림돌

  비건 메뉴 제공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수요 부족이다. 학생회관 학생식당과 애기능생활관 식당을 운영하는 경영지원팀은 “고기, 생선, 달걀, 유제품 등 동물성 재료를 완전히 배제한 비건 메뉴는 수요가 많지 않다”며 “매일 두 개의 세트메뉴를 제공하는데 그중 하나를 비건에 할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안암학사 행정팀은 “지난해 수요 조사 결과 비건 식단에 대한 사생들의 수요가 적었다”고 밝혔다.

  수요가 적으면 급식 위탁 업체의 비용 부담이 커진다. 유지윤 학생회관 학생식당 영양사는 “비건 메뉴 제공 시 별도의 식재료, 식단뿐만 아니라 동물성 식품과의 교차오염 방지를 위한 별도의 조리라인이 필요하다”며 “수요가 충분하지 않으면 비건 메뉴 운영에 드는 추가 비용이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안암학사 행정팀은 “급식 위탁 운영사로부터 운영 단가와 효율성을 고려할 때 별도의 비건 코너를 운영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비건 식당을 별도로 설치하는 방법도 있지만 공간 마련이 쉽지 않다. 경영지원팀은 “학생회관 리모델링 후 1층에 채식 코너를 추가할 계획이었으나 공사 계획이 바뀌며 공간이 부족해 취소됐다”고 했다. 

 

  공공성 고려한 입찰운영 필요

  고려대 비건 학생들은 영양 성분 표시 의무제 도입부터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뿌리:침은 제55대 서울총학생회장단 재선거 후보자 공청회에서 채식인 등 식이소수자의 식사 선택권 보장을 위해 학생식당에 영양 성분 표시 의무제 시행을 추진해달라고 요구했다. 유 영양사는 “조리 과정에서 식재료가 혼합돼 영양 성분을 정확히 표시하기 어렵다”며 “비건 메뉴를 위한 별도 조리공정을 확보하려면 학교 차원의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학의 공공성을 고려하면 수요가 적어도 간단한 비건식은 제공할 필요가 있다. 남수영(문과대 사회25) 씨는 “만들기 번거로운 메뉴가 아니더라도 비빔밥이나 비건 간편식 등이 상시 제공되면 메뉴 선택지가 넓어질 수 있다”고 했다.

  학생식당 위탁 업체 선정 시 조건으로 포함하는 방안도 있다. 이윤재(정보대 컴퓨터25) 씨는 “학생식당 위탁 업체를 선정할 때 수익성뿐만 아니라 소수자의 권리도 고려해야 한다”며 “수요가 적더라도 비건 학생이 교내에서 식사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비건 메뉴는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철규(문과대 사회학과) 교수는 “외부 업체에 위탁하는 현재 학생식당 운영 구조에서는 수익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학내 구성원이 가치 소비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생활협동조합형 비건 식당을 추진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고 했다. 경영지원팀은 “학생식당 운영 업체와 협의해 채식 메뉴 제공을 위한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글 | 박영민·이재윤 기자 press@

일러스트 | 박은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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