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재정비 촉진구역 4구역의 건물 최고 높이가 종로변 55m·청계천변 71.9m에서 종로변 98.7m·청계천변 141.9m로 변경됐다. 종묘 근처에 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게 돼 찬반 의견이 대립하는 가운데 고려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폐허와 미래 사이 - 이승민(정경대 정외20)
정치권에서 대형 이권이 걸려 있는 부동산 사업을 두고 공방이 오가는 일은 매우 흔하다. 이번 서울시 종묘 앞 고층빌딩 재개발 추진 논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야당 시절과 여당 시절을 가리지 않고 상대 발목 잡기에 혈안이 된 정당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재개발 사업에 대한 반대는 유감스럽게도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업 대상지가 아닌 세운4구역의 매우 일부는 문화유산법이 지정한 문화재보호구역에 속해 있지만 4구역 내 사업 대상지는 종묘로부터 180m, 정전에서는 500m가량 떨어져 있어 문화재보호구역과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에 속하지 않는다. 법으로 재개발 사업의 정당성을 판단한다면 논란이 일어날 빌미조차 없으며 생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반대 측은 논란 삼을 꼬투리라도 있는 1·2·3구역이 아닌, 애꿎은 4구역을 콕 집어 두고 ‘숨이 턱 막힌다’는 등 감성적 수사를 활용해 대중을 선동하고 있다.
더욱이, 이 사업이 추진되리라 믿고 상가 철거에 동의해 세입자를 이미 이주시킨 지역민들은 재개발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2020년대 후반 내지는 2030년대 초반에 모든 건물이 차질 없이 완공된다고 해도 이들은 20년간 월세도 받지 못한 채 불어난 채무와 이자를 떠안는다. 다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년간 착공이 번번이 좌초돼 쌓인 거주민의 채무가 총 7250억 원, 금융 이자만 연간 170억 원에 달한다. 거주민조차 아닌 이들이 감성적인 접근으로 또 한 번 사업을 좌초시키려 하고 무려 총리가 직접 나서는 모습은 재산권에 대한 직접적인 국가폭력으로 보일 정도다.
국가경쟁력이라는 고속도로에서 어느 차선을 탈지는 개인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1차선으로 달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차를 가드레일에 박아버리는 극단적인 해법을 제시한다면 이는 국가라는 차를 함께 운전해 가는 방법으로 존중할 수 없다. 이제 20년간 질질 끈 사업을 추진해 지역민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고 서울의 현대화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숭고한 고요에 드리우는 마천루의 그림자, 역사적 정체성을 옥죄다 - 최민준(생과대 식품자원경제22)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는 2012년 종묘를 찾아 “이같이 장엄한 공간은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며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 비견하는 동시에 “여기서 보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형편없다”, “좀 정리됐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게리가 말한 건물은 종묘에서 700m 이상 떨어진 17층 규모 건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서울시는 그보다 500m 이상 가까운 세운4구역에 높이 142m, 약 35층의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이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종묘의 장엄함은 건물 형태뿐 아니라 조선 왕실의 건국 이념과 제례 의식, 주변 공간적 맥락, 그리고 낮은 조망이 빚어내는 종교적 신성함과 고요한 단절감에서 비롯된다. 종묘를 마천루의 첨탑에서 조감하는 대상으로 전락시킴은 그 완숙된 고요에 파열음을 내는 것이다.
1995년 유네스코 자문기관은 종묘의 완충지대 밖이라도 시야를 해치는 고층 건물이 들어서지 않도록 권고했고 올해 4월에도 재개발 계획에 우려를 표하며 영향 평가를 촉구했다. 수많은 전문가와 단체도 이번 계획이 종묘의 본질적 가치를 저해할 것이라고 말한다. 영국 리버풀 해양도시처럼 개발로 가치가 훼손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서 제외된 선례도 있다. 문화유산의 보전은 법적 기준의 기계적 적용이 아니라 역사적 정체성과 유산의 본질을 지키는 책무로서 더욱 적극적으로 이행돼야 한다.
세운4구역 일대 개발 지연으로 토지 소유자들이 겪는 재산권 제한과 경제적 고통도 물론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문화유산 보전을 위해 희생하는 사유지에 용적률 이양제를 우선 도입하는 방식으로도 합당한 보상을 실현할 수 있다.
숭고한 유산을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주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전통의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주의 정치인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는 우리 공동체의 역사적 정체성이 깃든 종묘의 본질을 지켜야 할 막중한 책임을 인지하고 재개발 계획을 재고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