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아이들끼리 친구가 된 덕분에 알게 된 옆집 아저씨가 나보고 뭘 연구하냐고 묻더라. 우리가 사는 공간이 아닌 여러 수학적 공간들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곡선과 곡면에 대하여 연구한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그건 어디에 쓰는 지식이냐고 묻더라. “잘 모르지만, 이걸로 논문을 쓰면 내 일자리가 유지된다”고 했더니 “아 그거 매우 중요한 효용성이네요”라는 답이 돌아와서 “그렇군요” 하며 같이 크게 웃은 적이 있다.
내가 공부하는 미분기하학은 어디에 쓰이나? 기하학은 수천 년의 역사를, 미분기하학은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당연히 많은 데에 응용되어 왔고 지금도 응용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응용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은 미분기하학의 가장 유명한 응용 예 중 하나다. 그렇지만 나는 응용성 때문에 미분기하학을 연구하고 가르치진 않는다. 몇 년 전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취직 면접을 보는데 면접관이 ‘아, 양성덕 교수님의 미분기하학 강의를 수강하셨네요? 혹시 거기서 배운 곡률의 정의를 설명해 보실 수 있나요?’라고 물으면 당장 내게 알려 달라, 그러면 내가 가서 ‘도대체 이 회사 직무에 미분기하가 무슨 상관이 있는데 그걸 면접에서 묻느냐?’고 따지겠다. 여러분은 결과적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이 어떤 체계로 구성이 되어 있는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발견되고 발전되어 왔는가를 배워가야 한다. 그래야 미지의 영역에서 새로운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그걸 헤쳐 나갈 수 있는 사고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서양에서 수백, 수천 년 동안 기하학을 널리 가르쳐온 것은 기하학의 응용성 때문이 아니다.
나는 특정한 기업이나 산업에 맞춰 제자들을 교육하고 싶지 않다. 왜? 사랑하는 제자들이 평생 그 기업에서 만족하며 일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다면 그럴 용의가 있다. 하지만 그런 보장이 가능한가? 몇 년 전 왜 우리나라 인구가 주는가 나름대로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언제 추세가 바뀌었는가 자료를 살펴보다가 ‘아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1998년 외환위기 직후 한 해 신생아가 10만여 명 줄어든 이후로 회복되지 않고 있더라.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아는 것이다. 평생 보장된 직장은 없다는 것을.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직무능력을 갖춘 인재들을 키워달라는 기업들이 자기들의 이익이 줄어들어도 내 학생들을 여전히 보듬어 줄 것인가? 또는 그 기업이 더 이상 사업을 지속할 수 없게 된다면? 그런 이유로 나는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 특화된 교육을 하기보다는 어느 기업에 들어가도 빠른 시간 안에 적응할 수 있도록 탄탄한 기본기를 키워주는 것이 더 맞는다고 생각한다.
뭔가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당장은 아무런 응용성이 없어 보이는 지식을, 그런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우리 사회는 얼마나 포용할 수 있을까? 목적 기반의 연구에 대한 지원은 당연하지만, 그로 인해서 호기심에 기반한 연구에 대한 지원에 소홀하다면 그 사회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급급한 사회요, 아직 그 존재성조차 알지 못하는 시계 0의 불확실한 영역으로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한 사회다. 다양성이 많이 존중되는 사회가 됐지만, 학문의 가치에 대해서 논할 때는 오히려 예전보다도 더 경직된 모습에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 7월 8일 자에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교수의 연구, 어떻게 인류에게 기여할까? ’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는데 “(허준이 박사님의 연구는) 광대하고 복잡한 네트워크의 정보통신뿐 아니라, 반도체 설계, 교통, 물류, 통계물리 등 여러 분야에 밀접한 관련이 있어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소개되어 있더라. 과연 그럴까?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허준이 박사님이 그런 응용성을 염두에 두고 그 분야를 공부하진 않았을 것이라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허준이 박사님의 연구가 응용으로 이어진다면 그건 허준이 박사님이 아닌 후학들에 의해서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