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웠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거든. 몽자가 나를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는 건. 누나를 따라 미 국에 갔던 몽자가 5년 만에 돌아왔다. 한국 들어오는 길에 함께 왔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고 문을 열었다. 착착착. 귀에 익숙한 소리다. 발바닥보다 살짝 긴 검고 굵은 발 톱이 바닥에 부딪혀 나는 그 소리가 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못 알아보더라. 아주 잠깐은. 몽자가 천천 히 꼬리를 흔들며 내 냄새를 이곳저곳 맡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내려다본 몽자는 여전히 윤기가 흘렀지만, 어딘가 모르게 균형이 어긋나 있었다.무언가 잔뜩 들어있는 곡물 포대 같기도 했다.
“월! 월!” 꽤 늦었지만 몽자가 이윽고 내 냄새를 알아챘다. 그리고 가족들이 놀랄 만큼 내게 뛰고 또 뛰었다. 왜 이제 왔냐며. 그동안 잘 지냈는지. 아니, 왜 이렇게 오랜만이냐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고,그 모든 설움이 동시에 터져 나와 마치 하나의 단어로 들리는 것 같았다.“월! 월!”
저녁을 먹고 TV를 보는 내내 몽자가 내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적당한 무게와 온도가 내 다리 위에 올라왔을 때 나는 비로소 개 비린내와 함께 무의식적 편안함을 느꼈다. 예전처럼. 아니, 달라졌다. 같은 줄 알았는데 몽자가 달라져 있었다. 털이, 눈이 하얗게 물들어 있더라. 부모님의 머리가 하얗게 세듯 노랗던 털 곳곳이 세어 있었다.
늙는다는 건 서러운 일이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고, 누군가는 반드시 조금 더 속상해지는 일이다. 이번 주말의 경우엔 그게 나였다. 그 탓할 수 없는 서러움은 어디에 터놓고 얘기할 수도 없어서, 그냥 말년에. 죽기 전에 보고 싶었던 가족 다 보러 이 좁은 한국을 다시 왔다고. 늙은 주제에 다시 왔다고. 그냥 혼잣말처럼 주절거렸다.
“삼촌, 몽자가 삼촌 좋아해?” 하얘진 몽자의 발 옆에 또 다른 작고 하얀 발이 보였다. 조카는 태어났을 때부터 몽자와 함께 살았다. 조카가 처음 봤을 몽자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5년 전의 그 모습이다. 이제는 제대로 짖지도 못하고 숨도 헐떡이는 나의 늙은 개가 조카에게는 몽자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씩 받아들여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몽자와 다시 헤어지게 된다면 이번 이별은 5년보다 더 길겠지. 아주 나중에 금잔화 다리 위에서 저 멀리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그 큰 귀를 쫑긋 세운 채로 나를 만나러 뛰어오지 않을까?“ 몽자야 이제 우리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몽자는 한 마디 말도 없이 꼬리만 세차게 흔들었다.
<마이구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