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돌아가시면 전화해. 꼭 전화해.”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동훈(이선균 분)은 수화기 너머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지안(이지은 분)에게 말한다. 조사가 생기면 꼭 연락하라고. 학생 때는 동훈의 대사가 귀에 걸리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인사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같은 대사가 다른 무게로 와닿은 건 지난해 결혼식을 치르고 난 이후부터다.
결혼식은 무사히 끝났지만, 돌이켜보면 그 준비 과정이 참 낯설고 어려웠다. 아직도 생생하다. 텅 빈 엑셀 창 하나를 켜두고 두서없이 이름을 썼다. 가족, 친구, 학교, 동아리, 회사 동료까지. 생각나는 이름들을 적고 나니 문득 초라한 기분이 들었다. 소식을 전할 이가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또 적은 대로 모든 게 인과응보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책상머리에 앉아 강제로 35년의 삶을 돌아보니 그간 내가 흘려보낸 경조사들이 하나둘 스쳐 갔다. 아, 다들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참 어렵게, 미안한 마음에 검은 볼펜으로 꾹꾹 눌러 내 이름을 적었겠구나. 부끄러웠다. 기대했던 이가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일. 이제 어떤 심정인지 이해하니까.
솔직히 귀찮았다.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돈까지 쓰니까. 매번 핑계를 찾아 헤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스로 문을 닫고 있던 게 아닐까 싶다. 어린 나이에 사회로 내던져졌다. 많은 이들을 피부로 만났고 또 그만큼의 생채기가 났다. 상처엔 이내 딱지가 앉았던가. 인격에 굳은살이 박인 채 나는 바란 적 없던 건조한 어른이 되고 말았다.
언젠가부터 경조사를 불필요한 이벤트라 여겼다. 더 가까워져야 하니까. 어쩌면 또 상처받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런데 지나 보니 알겠다. 경조사를 함께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겪어보니 이해가 된다. 왜 그토록 어른들이 경조사를 챙기라 했는지를.
기쁠 때 함께 웃는 ‘경사’, 그리고 슬플 때 함께 나누는 ‘조사’. 다시 말해, ‘경조사’는 인생에서 가장 기쁘고, 가장 힘든 순간 내가 당신의 곁에 있어 주겠다는 의미였다. 돌이켜보면 인생은 언제나 휴머니즘이었다. 많은 일들이 사람에서 시작했고, 사람으로 끝이 났다. 어린 날, 굳은살이 박여가며 찾아 헤맸던 진솔한 관계의 해답. 그 첫 단추가 어쩌면 경조사를 챙기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꼭 내게 말해주면 좋겠다. 함께 웃거나 울어야 할 일이 있다면 잊지 말고, 꼭 전화해 주길. 내가 당신 곁에 기꺼이 있겠노라 약속할 테니.
<마이구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