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문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강사·뮤지컬 평론가
정명문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강사·뮤지컬 평론가

 

  매해 초 창작산실 작품은 최신의 관심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2025년 17회 창작산실 선정작 중 <그해 여름>(김은희 원작, 현지은 작, 원요한 곡, 이수인 연출, 1월 21일~3월 2일, 인터파크 서경스퀘어 스콘2관)에는 레트로 감성이 가득하다. 이야기는 농활 간 대학생 석영(홍승안, 안지환 분)이 도서관 사서 정인(허혜진, 홍나현 분)과 사랑에 빠졌지만, 시대적 한계(연좌제, 삼선개헌)로 헤어지고 그리워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문제는 관객들이 ‘시대적 한계로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보다 ‘각자 그리워하는 엔딩’에서 반응한다는 점이다. 이 작품엔 절대 악인이 없고, 낭만적인 마무리로 끝난다. 이 회귀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작품은 뮤지컬 화법으로 잘 녹여낸 각색으로 장르적 낭만성을 획득했다. 동명의 영화 속 중요 장면들은 스윙, 재즈, 올드팝으로 넘버화 되었고, ‘강요당한 진로’(석영)와 ‘갇힌 세상(정인)’이란 구도로 두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근원도 마련되었다. 특히 ‘풍경소리’를 앞뒤로 넣어 소리로 기억되는 지점들을 만들어낸 것은 꽤 매력적이다. 여름밤의 시냇가, 둘만의 오롯한 활동사진 감상회, 물고기를 닮은 돌멩이와 정인이 꿈꾸는 세상 등 섬세하게 만들어진 장면들은 2019년부터 창작자들이 오래 고민하며 개발했던 것들이 빛을 발한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와 뮤지컬 모두 석영의 입장에서 진행된다. 석영의 입장 그 시절은 아프지만 낭만적인 시간이다. 하지만 극의 중심을 정인으로 두면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개인 재산으로 도서관까지 만든 정인 아버지가 월북한 이유는 알 수 없고, 10살짜리 아이는 ‘죄인’이란 꼬리표와 함께 가스라이팅 당하며 자랐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무례한 행동에 정인은 순순히 따른다. 그녀가 석영과 함께 서울로 온 것은 답답한 상황을 끊어내겠다는 다짐이었다. 이념정치란 시대 정서를 반영한 원작을 따른 것이지만, 그녀는 삼선개헌 시위 주동자로 지목되며 자신의 의지를 꺾어버린다. 석영의 안전을 위해 그녀는 항의 없이 감옥에 갔고, 출소한 뒤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정인이 사라진 후 시대에 무감했던 석영은 신문기자가 되어 시대의 문제점을 거론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다. 석영은 큰 것을 얻었으나 정인은 아니다.

  1969년 달착륙은 그간의 기준을 깨지게 만든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동 시간대에 누군가는 감시받고 고문당하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어쩌면 낭만적인 사랑은 웹소설, 웹툰, 영화, 뮤지컬과 같은 대중문화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판타지일지도 모르겠다. 이 뮤지컬의 결말만 보면, 멀리 떨어져 추억하는 것이 최선이라 믿고 싶은 욕망, 즉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유효시간이 있고, 일상은 공평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제작 시기가 달라졌으니 동시대적 감수성이 덧붙여져야 한다. 누군가에게 불합리한 상황을 아름답게만 회고하지 않고, 이후 조정하는 노력이 더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등장인물이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더 많이 볼 수 있길 희망해 본다.

 

정명문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강사·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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