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문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강사·뮤지컬 평론가
정명문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강사·뮤지컬 평론가

 

  뮤지컬에서 노년을 다루는 작품들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노년은 가족과 용서라는 구성과 연결될 확률이 높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바라는 장르적 문법을 맞추는데 많은 공력이 따르기 때문이다. 노인 인구의 70%가 겪는다는 치매는 퇴행 방식으로 인해 타자의 부정적인 시선을 받기 때문에 어려운 소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부분에서 선정된 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오미영 작·연출, 노선락 작곡, 더줌아트센터, 2월 1일~6월 1일)이 다루는 노인은 신선하다. 이는 극단 오징어의 노선 즉 20년 전부터 여성, 노인, 동물 등 비주류 혹은 가족에 관심과 노력의 성과이다.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기억을 잃은 춘자 씨에게 보이는 세상과 현실을 보여준다. 떡볶이로 유명한 춘자 씨의 칠순 생일날, 가족들이 외식하려고 모였지만 정작 그녀는 사라져 버린다. 가족들이 외식사업 제안을 받고 그녀를 찾아다니는 현실과 달리, 치매 증세를 보이는 춘자 씨는 영혼의 물고기를 따라 움직인다. 춘자 씨가 보는 세상은 동화 같다. 그녀는 물고기와 파리, 자동차 와이퍼가 말을 거는 세계에서 살고, 영혼의 코딱지와 파리똥을 먹고, 화려한 색감 아래 바쁘게 움직인다. 하지만 그녀가 지나쳐간 공간의 실제는 일상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녀의 흔적을 보고하는 요구르트 판매원, 부동산 중개인, 학원 선생님, 택시 운전자는 그녀의 세상과 일상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무심히 던진다. 이렇게 같은 공간 속 인물들의 다른 반응은 시선의 차이를 드러내며 가치 판단을 지연시킨다.

  춘자 씨가 정신을 차리고 내뱉는 가사에는 웃픈 노인의 현실이 담겨있다. 그들은 ‘밥보다 약이, 약보다 한숨이 많은 상황이 됐고, 울 때는 눈물이 안 나고 웃을 때 눈물이 나며, 들어가는 음식보다 끼는 게 더 많아진’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좌충우돌 끝에 춘자 씨는 교회에서 108배를 올리다 발견된다. 그녀가 정신을 잃고 찾아다녔던 소원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먼저 간 남편과 딸자식에 대한 기원과 곁에 있는 가족들의 무탈 그리고 행복이다. 결국 이 작품은 시선의 한 끗을 생각하게 만든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문장은 반대로도 가능하다. 누군가의 세상을 규정하는 타인의 시선이 또 다른 압박이 될 수 있다는 진실과 함께 말이다.

  이 작품은 소극장에서 진행되지만 무대는 스펙터클하다. 이는 거울 속의 춘자, 간판의 깜빡임, 두 층을 연결하는 봉, 화려한 의상으로 체인징하는 앙상블 그리고 다채로운 분위기를 담은 넘버와 발랄한 춤이 춘자씨의 세상을 다채롭게 채워주기 때문이다. 뮤지컬의 요소들이 극적 환상과 현실을 적절하게 연결해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그야말로 종합 예술적 성과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작품은 노인을 원탑으로 해도 스펙터클한 장면 제시가 가능함을 90분간 끊임없이 증명해 냈다.

  불이 꺼진 뒤 나오는 영상에는 춘자 씨 가족들의 후일담이 펼쳐진다. 가족 경영의 과정에서 각자의 몫을 다하는 이들의 결말은 따스하다. 결국 춘자 씨가 빌었던 가족의 행복이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결말이 억지스럽지도 않다는 것이 이 작품의 최대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젊어지기 위해 혹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나이 듦이 혐오가 되는 세상은 언젠가 닥쳐올 미래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린이는 귀엽고 노인은 가엽다. 행동은 유사한데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지고, 취향 존중이란 덕목은 치매 노인에겐 통하지 않는 지금에 이 작품은 질문을 던진다. 퇴행하는 그들 당사자는 즐거울 수 있다.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는 이분법적 시선에서 한발 물러나 유연하게 보길 바라는 소망을 담으면서 뮤지컬로 길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여전히 많음을 증명하였다. 전 세대가 보기 불편하지 않고, 빌런도 없는 그래서 따스한 극단 오징어의 무대는 소중하다. 특정한 취향과 세대에 기댄 작품 그리고 범위를 특정하지 않는 작품이 골고루 나올 수 있는 뮤지컬 세상에 기여하는 그들이 계속 우리에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정명문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강사·뮤지컬 평론가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