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

별점: ★★★★★

한 줄 평: 아이러니의 충돌 속에서 삶의 매 순간은 모험이 된다.


  유쾌한 사운드트랙, 옛 영화다운 필름의 질감과 그에 어우러지는 파스텔톤. 관객들은 초록과 노란빛이 따스하게 어우러진 밭에서 빨간 카디건을 두르고 등장하는 미라벨의 비주얼에 반하며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영화는 시골에 놀러 온 도시 소녀 미라벨과 그 마을의 소녀 레네트가 처음 만나는 첫 번째 에피소드로 시작해서, 둘의 도시 생활을 담은 3가지 에피소드, 총 4가지의 일상 속 이야기를 담는다.

  1장에서 레네트는 해가 뜨기 직전, 세상이 멸망하는 듯한 정적이 찾아오는 1분인 ‘블루 아워’를 언급하며 고요함을 예찬한다. 불협화음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마침내 마주하게 되는 그 순간은 숨 막히도록 아름답다. 에릭 로메르는 자신의 작품들에서 수많은 대사들을 쏟아내며 인간관계를 탐구한 감독인데, 그가 말하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게 흥미로운 지점이다.

  시골 소녀 레네트에게 도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2장에서 레네트는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 사람들에게 말은 소통이란 제 용도로 쓰이지 못한다. 그저 의견 관철하기 대회에서 승리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쓰이는 것 같다. 3장은 ‘남을 돕는 것이 옳다’라는 지극히 당연한 논제를 언급하며 시작하는데, 미라벨과 대화하며 레네트는 상황들이 조금씩 다르게 설정되면 타당한 도덕적 소신도 바보 같고 모호한 것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된다.

  결국 영화 속에서 ‘말’은 속임수이자 암호로 작동한다. 이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감각이다. 사람은 일기장에도 거짓을 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말할수록 본심과 멀어지는 듯한 경험 또한 다들 해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서로 대화하지 않을 수 없다. 4장에서 레네트는 영혼과 소통하는 방법으로 침묵을 예찬하며 일장 연설을 한다. 귀여운 자가당착이다. 그러나 우린 침묵의 가치 있음이 표현되려면 결국 언어가 필요함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영화는 침묵과 대화, 두 요소를 조화시킴으로써 두 소녀에게 해피엔딩을 선물한다. 침묵과 언어는 상반되는 것이 아님을 말하며 막이 오르는 것이다.

  영화를 ‘언어’ 혹은 ‘말’이란 테마로 작품을 설명했으나, 더 크게는 삶 속 끝없는 아이러니에 대한 영화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삶 속 아이러니들의 끝없는 충돌과 화해. 삶이 그렇게 작동하기에 큰 줄기의 스토리 없이 4가지 일상을 담은 이 영화의 제목이 모험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점을 생각하면 즐거운 유머로 끝나는 4장이 더 좋아진다. 두 소녀의 귀엽고 유쾌한 일화들을 보고 일어나면 다시 시작될 우리 삶도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지기 때문이다.

 

윤창국(정경대 경제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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