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이라는 과제를 늘 안고 사는 인간에게 의학은 일상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다. 그런 이유로 의학을 다룬 드라마도 지속적으로 제작되었고 꽤 많은 의학 드라마가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다. 최근 공개되자마자 짧은 기간 화제성을 모은 OTT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넷플릭스)나 <슬기로운 의사생활>(tvN)을 이은 <언젠가는 슬기로운 전공의생활>(tvN)은 현재 진행 중이다. 의학 드라마에서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다루며 자신의 선택이나 행동에 윤리적 책임을 부여받는 인물로 재현된다. 의학 드라마는 생명과 관련된 절박한 상황을 설정하고, 의사의 선택이나 결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에피소드를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하기 때문이다.
한국 TV 의학 드라마는 의료인의 수련 과정이나 의사의 인간적인 면모, 의학 윤리 등을 주로 다룬다. 한국 의학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높이며,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는 1996년 <종합병원>(MBC)도 여기에 속한다. <종합병원>에서는 환자의 완벽한 치료를 위해 매 순간 갈등하는 의사 김도훈(이재룡 분)을 통해 인본주의적 주제를 전달하였다. 이후에도 환자의 치료만을 우선순위에 두며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웅이자 의인인 의사 캐릭터의 활약은 한국 의학 드라마에서 자주 반복되는 유형이다. 시즌3까지 방영된 인기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KBS)의 부용주(한석규 분)는 트리플 보드(일반, 흉부, 신경)를 달성한 인물로 뛰어난 의술뿐 아니라 직업적 사명감, 따듯한 인간적인 면모까지 지닌,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의사이다. 괴팍하고 냉정해 보이지만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데는 물불 안 가리는 <중증외상센터>의 백강혁(주지훈 역)도 완벽한 의술을 지닌 인물이다. 이처럼 생존의 문제를 거뜬히 해결하는 영웅적인 의사 캐릭터에 대한 열망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는 단지 사명감이나 진정성의 추구만이 아닌, 완벽한 능력이라는 조건이 덧붙여진다.
OTT 드라마 <하이퍼나이프>(디즈니+)는 천재적인 의사에 대한 열망의 끝자락을 보여준다. <하이퍼나이프>는 한국 의학 드라마에서 흔하지 않은 메디컬 스릴러로, 의학 관련 사건에서 발생한 문제를 공포, 스릴러로 풀어가는 드라마이다. 메디컬 스릴러는 주로 병원에서 벌어진 의료사고나 의학적 논란이 되는 실험 등을 중심 이야기에 배치하여 이를 통해 피해를 본 환자의 갈등, 복수를 다루어서 범죄 스토리와 결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메디컬 스릴러에서 범죄를 다루긴 하지만 의사가 직접적으로 살인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하이퍼나이프>의 천재 의사 세옥(박은빈 분)은 반복적으로 살인을 일삼으며 불법 의료 행위를 지속한다. 의학계가 주목한 천재 의사였던 세옥에게 환자를 살리는 일(수술)은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세옥은 의사면허증이 정지된 후 불법 의료를 통해 병원에서 살리기 힘든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수술에 매번 성공한다. 세옥에게 의료 행위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수술을 방해하는 인물은 망설임 없이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폭력과 살인을 통해서라도 의료 행위를 지속하고자 하는 세옥에게 죄책감은 발견하기 힘들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어려운 수술을 실수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내는 천재 의사의 능력을 부각하는 서사적 전략을 활용함으로써 세옥의 비윤리적 행위에 합리성을 부여한다. 세옥은 생존 불가능한 환자를 살려낸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으며 환자에게는 영웅적 의사의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인간적 면모나 윤리적 의식보다 생존 문제에 더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살아가기 힘든 혼돈의 시대, 의학 드라마는 능력이 뛰어난 천재 의사에게 완벽함이라는 무게를 부여하며 대중에게 판타지적 안도감을 주고 있다.
문선영 한국공학대 지식융합학부 조교수·드라마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