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캠퍼스 학생 859명 신청
3시간 행진하며 민주묘지로 향해
“65년 전 선배들의 정신 이어갈 것”
지난달 18일, 올해도 고려대 학생들의 붉은 물결이 한낮 도로를 가로질렀다. 하늘은 흐렸지만 구름 사이로 햇빛이 쏟아졌고 학생들은 저마다 거리 위를 달릴 채비를 마쳤다. 서울캠퍼스 중앙광장 한쪽에는 고려대 학생들이 4.18 구국대장정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고려대 4.18 학생 시위 65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행사엔 서울캠 학생 436명, 세종캠 학생 423명이 신청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300명가량 많은 수준이다. 최영준 글비대 글로벌경영전공 학생회장은 “구국대장정에 참여해 선배님들의 민족고대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행사 시작 전 고려대풍물패연합이 ‘진주 삼천포 12차 농악’을 선보이며 흥을 돋웠다. 사전굿에 참여한 박윤원(미디어대 미디어21) 씨는 “사전굿은 빠른 템포로 구국대장정 시작 전 분위기를 환기한다”고 설명했다. 이지민 서울총학생회 중앙집행위원장은 중앙광장에 마련된 단상에서 기조문을 낭독했다. 기조문에는 △인상된 등록금의 올바른 사용 △국정 안정화 △청년 목소리를 존중하는 공론의 장 조성 △국민연금 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양 캠퍼스 대표자들도 4.18 구국대장정의 가치를 전했다. 한재민 서울부총학생회장은 “구국대장정의 목표는 민주묘지 도착이 아니라 선배들의 뜻을 기리는 것”이라 강조했다. 김진경 세종총학생회 중앙비상대책위원장은 “아직 호안으로 바라봐야 할 문제가 눈앞에 가득하다”며 “65년 전처럼 우리를 둘러싼 불의와 악재에 항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마디로 대학은 반항과 자유의 표상이다.” 단상에 올라 65년 전 발표된 4.18 선언문을 낭독한 이정원 서울총학생회장이 큰 북을 시타하며 4.18 구국대장정이 시작됐다. 학생회장단과 고려대풍물패연합의 대열 뒤로 붉은 옷을 입은 학생들이 도로로 쏟아져 나왔다. “4.18의 혁명정신 우리 모두 기억하자” 정경대 학생들이 직접 만든 구호는 고려대풍물패연합의 신명 나는 꽹과리 소리와 어우러졌다. 종암로와 도봉로 일대를 건너는 학생들의 행진은 시민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한 시민은 행진하는 학생에게 “무슨 행사냐”고 물었고 다른 시민은 흰 천 위에 직접 쓴 플래카드를 들곤 “고려대 학생들이 역사가 돼 주세요”라며 큰 소리로 학생들을 응원했다.
학생들은 시원한 바람에 땀을 닦고 ‘거의 다 왔다’며 서로를 다독였다. 오후 3시 25분, 3시간의 대장정 끝에 국립 4.19 민주묘지에 행렬이 도착했다. 학생회장단 뒤로 길게 늘어선 학생들은 천천히 기념탑 앞까지 나아가 묵념했다. 힘들어하는 동기에게 농담을 건네며 달리던 학생들의 얼굴엔 어느덧 장난기가 사라지고 진지함만 남아 있었다. 모두가 숨을 죽인 4.19 민주묘지엔 고요만이 감돌았다.
박현숙 학생처장의 헌화 후 양 캠퍼스 학생회장이 차례로 향로에 향을 3번씩 넣으며 분향을 마쳤다. 직접 분향에 참여한 학생들도 있었다. 정예림(정경대 정외23) 씨는 “처음 참여한 구국대장정에서 직접 분향까지 하며 역사를 마음 깊이 새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참배를 마친 학생들은 저마다 생각에 잠긴 듯 분향소 뒤편 묘지를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김지인(글비대 영미학24) 씨는 “오늘 8km를 걸으며 느낀 힘듦은 65년 전 선배님들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태원(문과대 한국사20) 씨는 “한국사학도로서 졸업을 앞두고 의미 있는 현대사를 기념하는 데 참여할 수 있어 영광이다”고 소감을 전했다.
글 | 정혜린 기자 byye@
사진 | 김준희·안효빈 기자 pre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