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으로 재정 안정화
평생교육·국제화로 생존 도모해야
“세계 30위권 대학 도약할 것”
후보 시절 ‘강한 고대’를 약속했던 김동원 총장의 임기가 어느덧 반환점을 지났다. 개교 120주년을 맞아 고려대 안팎으로 사회적 관심이 커진 지금, 본지는 김동원 총장을 만나 지난 2년간 무엇에 중점을 두고 학교 발전을 위해 힘써왔는지, 앞으로의 청사진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물었다.
- 임기 절반을 지나는 소감은
“개교 120년에 총장으로서 임기의 반을 마쳤습니다. 처음엔 1905년 당시 국내 유일 고등교육기관이었던 보성전문학교로 첫걸음을 디딘 고려대를 이끌어야 한다는 사실에 어깨가 무거웠지만 2년이 지나면서 노력의 성과가 나고 있는 것 같아 기쁩니다.
지금까지의 2년은 세계 30위권 명문 대학으로의 퀀텀 점프(Quantum Jump)를 준비하는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2년은 이를 기반으로 도약하는 시간일 것입니다. 목표 달성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점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현재까지 자부하는 성과가 있다면
“대학 재정이 상당히 좋아졌다는 점입니다. 2022년보다 2024년 예산 규모가 약 20% 늘었습니다. 대학에서 짧은 기간 안에 20%가량의 예산을 늘린다는 건 쉽지 않죠. 취임 당시 갖고 있던 150억 원의 적자도 교우들의 기부금 덕에 지난해 말 흑자로 전환했습니다. 고려대가 받는 기부금은 연평균 약 450억 원이었는데 지난 2년 동안은 약 2500억 원이었습니다. 교우들의 도움에 힘입어 더욱 ‘강한’ 학교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 학위 과정 신입생도 작년에 비해 올해 87%가 늘었습니다. 저출산으로 인해 이제 학교는 국내 학생들로만 운영한다면 생존할 수 없죠. 국제화 캠퍼스 전환을 통해 지속 가능한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고려대 학생들의 국가고시 성적도 탁월합니다. 지난해에는 외교관 후보자 및 기술고시에서 전국 1위를 석권했습니다. 취임 후 국가인재 양성을 위해 출범시킨 국가고시지원위원회가 성과를 내 뿌듯합니다.”
- 대학 평가 지표 개선이 요원한데
“세계대학평가들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조사하기 때문에 시차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수당 논문 인용 수 등 과거 5년간의 연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학을 평가한 QS 세계대학평가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의 데이터를 활용해 평가한 것이라 제 임기가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계 최대 규모 학술 인용 데이터베이스인 Scopus에 등재된 논문을 바탕으로 논문 영향력을 평가한 FWCI 지수는 상승하는 등 국내 대학에서 연구 실적이 가장 빠르게 좋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 임기가 평가에 반영되기 시작하면 상승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 고려대 구성원과 얼마나 소통했나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입니다. 제 전공이 노사관계학이라 소통의 중요성은 익히 알고 있죠. 이에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직접 듣고자 노력했습니다. 교수님 10명씩을 모셔서 49번의 간담회를 진행했고 고려대 직원과는 27번 만났습니다. 현장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울캠퍼스에서만 진행하던 교무회의를 서울캠퍼스·세종캠퍼스·구로병원·안산병원을 돌며 진행합니다.
학생들과는 봄에 타운홀 미팅을 진행하고 가을에는 총학생회 간부들과 교류합니다. 세종캠 타운홀 미팅에서는 여자축구 선수들의 숙소 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개선했죠. ‘천원의 아침밥’ 인원 제한으로 먹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고 턱 없이 부족한 교육부 예산에 추가 예산을 편성해 학생들이 아침밥을 먹을 수 있도록 돕기도 했습니다.”
- 등록금 의존도를 낮추는 등 재정 위기 극복은
“등록금 수입 외에도 고려대가 자체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재원을 마련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고려대 부속기관 중 적자였던 출판사와 농장은 흑자로 전환했고 국제동·하계대학에서 얻는 수익은 늘어났죠. 특수·전문대학원을 활성화해 중장년층 대상 수입도 증가했습니다.
확보한 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방안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태까지는 예산을 점검한 후 10~20% 정도를 줄이거나 늘리는 방식을 취해왔는데, 근본적으로 학교 운영에 걸맞은지 따지는 방식으로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취임 이후 예산을 원점부터 재검토하는 ‘제로베이스 예산 제도’를 도입해 불필요한 예산을 20~30% 정도 줄였습니다.”
- 후보 시절 창업 지원을 강조했는데
“창업을 돕기 위해 교수와 학생을 만나고 있지만 올해 투자한다고 해서 바로 성과가 나지 않습니다. 임기 내 창업을 지원해 수익화해서 고려대 구성원과 나누기를 바라지만 창업의 특성상 먼 훗날에 성과가 날 가능성도 크죠. 지금은 해외 유수의 대학처럼 학생 창업을 돕기 위해서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구상하는 단계라서 씨를 뿌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공계 연구 역량 제고를 위한 지원은
“우선 캠퍼스 발전에서 밀려난 자연계 캠퍼스의 인프라를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2년 전 고려대 정릉캠퍼스에 14개의 고성능 그래픽 처리 장치를 확보한 ‘AI컴퓨팅센터’가 설립돼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800억 원을 들인 정운오IT교양관이 개관했고 자연계 캠퍼스에 1400억 원을 들여 중앙광장을 지을 계획입니다. 120명의 우수한 기금교수도 대부분 이공계 교수로 모실 예정입니다.
대학 내 교류를 넘어 세계 유수의 연구자와의 교류도 활성화하고자 합니다. 7월 2일부터 4일까지 고려대는 ‘K-Club(KU-Collaboration Hub) World Conference’를 열어 전 세계 우수 기관의 연구자와 인류 난제 해결을 위해 논의합니다. 7월 7일부터 12일까지는 ‘Climate Corps Summer School’을 열어 세계 34개 명문 대학 100여 명의 교수 및 학생들과 기후 변화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입니다. 세계 석학들과의 교류 네트워크를 확장해 인류 난제의 해결 방안을 도출하는 데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고려대가 되길 기대합니다.”
- 인문·사회계 학생이 길러야 하는 역량은
“인공지능은 인간의 윤리적 사고까지 대체할 수 없습니다. 인공지능은 주어진 명령을 수행할 뿐 행위에 대한 가치 판단은 인간의 몫이죠. 이공계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만큼 인간의 인문학적 사고가 발전해야 인류가 생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문·사회계 학생들은 소통, 융합적 사고력, 문제 해결력을 길러야 합니다. 소통으로 이견을 조율해 효율적인 결과를 도출해야 하고 여러 변수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의사결정을 진행하는 사고력도 갖춰야 합니다. 직접 발로 뛰며 현장을 경험해 문제의식을 발굴하고 해결책까지 떠올린다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 외국인 학생의 적응을 위한 지원은
“외국인 학생들이 적응하기 어렵다는 현실 역시 인지하고 있습니다. 취임 후 국제화 TF를 구성해 외국인 교수와 학생들이 직접 의견을 개진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죠. 현재 고려대 공문은 한글로만 작성되는데 영어 공문도 반드시 작성되도록 추진 중입니다.
외국인 학생들이 수업에 깊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한국어 강의를 즉시 영어 자막으로 번역하는 ‘DeepL’ 프로그램의 도입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상용화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이라서 도입되면 외국인 학생들의 학습 능률이 크게 상승하리라 기대합니다.”
- 세종캠퍼스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세종캠에 실질적인 투자를 진행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난해 세종캠에 기부금 100억 원을 유치하는 데 성공해 화제가 됐죠. 세종캠 개교 이후 해당 규모의 지원은 처음이었습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세종캠 학생회관 리모델링을 위해서도 10억 원을 기부받아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캠퍼스균형발전위원회를 통해 이원화 캠퍼스 전환도 논의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세종캠이 지방대학으로서 누리는 혜택이 이원화 캠퍼스가 됐을 때 얻는 이익보다 크기 때문에 세종캠 내부에서도 이원화 요구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제 20대 학생만을 중심으로 설계된 대학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20대부터 중장년층, 나아가 외국인 학생까지 모두 수용하는 대학만이 살아남을 수 있죠. 그간의 교육 역량을 특화해 차별화된 평생 교육과 외국인 대상 교육으로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무엇보다 거대한 난제가 산적한 지금 대학끼리 경쟁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젠 대학이 각자의 울타리를 넘어 지식 네트워크를 형성해 인류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만 합니다.”
- 고려대 구성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대학 역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구성원 모두의 사고방식이 캠퍼스 안에 갇히면 미래를 준비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는 변화를 쫓기보다 선도하는 데 적극 나서면 좋겠습니다. 고려대는 기술자, 지식인보다도 사회 곳곳의 리더를 양성하는 학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목표를 높게 두고 선 굵은 경험을 많이 하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남은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해 학교가 크게 성장하는 기회를 잡고 세계 선두 대학 반열에 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 | 이태희·박병성 기자 press@
사진 | 최주혜 기자 ch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