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엘리트 러너 격차 줄어
유망주 육성 위해 달릴 기회 줘야
러닝 열풍에 힘입어 아마추어 마라톤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엘리트 마라톤은 여전히 빛나지 못하고 있다. 2024 파리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한국 선수는 한 명도 출전하지 못했으며 한국 남자 마라톤 최고 기록도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전 국가대표 이봉주가 세운 2시간 7분 20초에 멈춰 있다. 정체된 한국 엘리트 마라톤의 현주소와 발전 방향을 1984 LA올림픽 마라톤 국가대표 출신 김원식 스포츠 해설가와 마라톤 국가대표 출신으로 30년 동안 선수와 지도자로 활약한 이선춘 코치에게 물었다.
- 러닝을 즐기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
김원식 | “스포츠업계에선 러너라는 정체성을 가진 인구가 1000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러닝이 누구나 즐기는 대표적인 여가로 자리매김했음을 뜻하죠. 최근 젊은 러너들이 유입되고 생활체육인의 수준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선춘 | “그만큼 러닝이 매력적인 스포츠이기 때문입니다. 러닝은 누구나 혼자서 시작할 수 있어요. 자유롭게 걷거나 뛰는 등 운동 강도를 조절할 수 있고 다른 종목과는 다르게 별도의 경기장이나 장비가 필요하지도 않죠. 모든 운동의 기초인 심폐지구력 증진에 큰 도움을 주고 성인병 예방과 회복에도 효과적입니다.”
- 덩달아 마라톤 대회의 인기도 높아지는데
이선춘 | “러닝 자체가 진입장벽이 낮다 보니 마라톤 대회에도 러너가 자연스레 유입되고 있습니다. 마라톤 대회 준비를 위해 프리랜서 강사를 찾아 훈련하는 생활체육인도 일부 있죠. 마라톤이 생활체육으로 뿌리내리는 긍정적 현상이지만 참가나 완주라는 본래 의미보다 기록 달성의 장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 아쉬워요. 많은 러너가 마라톤 대회 기록 달성을 위해 충분한 훈련 없이 대회에 참가하다 부상을 입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죠.”
- 한국 마라톤 신기록은 25년 전에 머물러 있다
김원식 | “마라토너는 잘 달리는 육상 선수 중에서 배출돼요. 학령인구가 줄어들며 학생 선수가 줄고 초중고 육상부도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인재가 부족하죠. 심지어 훈련 환경도 열악합니다. 효창운동장, 목동운동장 등 서울 내 운동장들은 훈련 장소로 개방되기보다는 공연장 혹은 축구 경기장으로만 사용되기에 용산구에 있는 마라톤 명문 배문고 육상부는 한 시간 거리의 고양시로 가 훈련하기도 합니다.”
이선춘 | “마라톤 저변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국 100여 개의 시·군청 실업팀은 마라톤이 아닌 다른 육상 종목 출신 지도자가 마라톤 선수를 감독해요. 단거리와 장거리 종목이 모두 포함된 전국체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마라톤에만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죠. 선수들의 성향도 과거와 다릅니다. 이젠 봄과 가을에 열리는 서울마라톤과 춘천마라톤에서 정상급 선수 간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요. 다른 엘리트 선수와의 경쟁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할까 봐 하프 코스를 택하기도 하죠. 쉽게 운동하려는 경향이 예전보다 강해졌습니다.”
- 엘리트 마라톤 선수를 육성하려면
김원식 | “아직 한국에선 선수로 활동하다가 그만둔 후 취업 등 경제 활동에서 뒤처질까 봐 재능이 있어도 도전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아요. 이번 열풍으로 러닝이 생활체육으로 확실히 자리 잡는다면 학생들이 생업과 함께 육상을 병행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2018년 보스턴마라톤에서 우승한 일본인 마라토너 가와우치 유키(川内優輝)는 공무원이었습니다. 생활체육의 엘리트화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죠.”
이선춘 | “재능과 의지가 있다면 누구에게나 달릴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합니다. 과거 서울의 각 구에는 구청장배 육상 대회가 많이 열렸어요. 육상부가 없는 학교도 두각을 보이는 학생을 출전시켰고 좋은 성적이 나오면 전국대회 등 상위 대회에 출전할 기회도 제공했죠. 물론 학생들도 놀이처럼 육상을 접했고요. 생활체육과 엘리트 체육의 연결고리를 잇는 육성 정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 후배 마라토너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김원식 | “한국 마라톤은 손기정, 이봉주, 황영조 등 마라톤계를 대표하는 인물을 배출해 왔습니다. 지금도 육상 종목 중 메달을 기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종목이라고 확신해요. 후배들이 국내 대회 1위에 만족하기보다 개인 기록을 1초라도 앞당기려는 투우사 본능을 발휘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면 좋겠습니다.”
이선춘 | “플레잉 코치로도 오래 활동하면서 후배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라톤 선수는 신체적으로 강한 훈련을 소화하면서 집념과 같은 정신력을 함께 길러야 합니다. 마라톤만큼 ‘땀은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표현에 부합하는 운동은 없으니 꾸준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글 | 이태희 취재1부장 notkim@
사진제공 | 김원식, 이선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