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인권단체 기자회견서 총학 규탄
합병 시 전문성 감소 우려
“감사위가 심의 투명성 높일 것”
지난 6일 4.18 기념관에서 열린 제2회기 임시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의장=이정원, 이하 ‘전학대회’)에서 소수자인권위원회(임시의장=김다희, 이하 ‘소인위’)와 여학생위원회(대표자=송재윤, 이하 ‘여위’)의 징계로 두 단체 합병이 의결됐다. 특별기구의 사업을 감사하고 의결기구에 보고하는 감사위원회 설치 안건도 가결됐다. 이에 소인위와 여위가 속한 학내인권단체협의회는 지난 13일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의 인권 자치기구 탄압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합병 징계와 감사위원회 설치에 반발했다.
임시 전학대회서 신설합병 결정
이번 회의에서는 재인준이 부결된 소인위와 여위 측의 소명을 듣고 징계 수위를 논의했다. 김다희 소인위 임시의장은 “소수자 차별은 구조적 불평등에서 비롯되기에 다양한 의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며 소인위가 지나치게 많은 의제를 다룬다는 지적에 반박했다. 학내 사업보다 학외 활동에 치중했다는 지적엔 “학외 문제는 학내 인권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며 “인권 가이드 배부, 인권주간 부스 참여, 안암동 비건 지도 제작 등 시의성 있는 학내 정기 사업도 꾸준히 진행했다”고 말했다. 송재윤 여위 대표자는 “여학생위원회칙 제2조 제4항에 따라 본회는 성평등과 관련한 여성운동에 연대할 수 있다”며 “기후와 노동 영역에서도 여성의 권리가 침해되므로 기후정의 퍼포먼스와 노동절 집회 참여가 여성 의제가 아니라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인위와 유사한 의제를 다룬다는 지적에는 “여위는 여성주의를 중심으로 활동한다”며 “성희롱·성폭력 대응 창구 운영, 여학생 휴게실 관리 등 여위만의 고유 사업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오진수 문과대 학생회장은 “인권 의제는 모호하고 유사하기에 현재의 세분화된 특별기구 구조는 적절하지 않다”며 두 기구의 합병 논의를 제안했다. 최제호 경영대 학생회장은 “한 기구 아래 여러 국서가 있으면 학생들의 접근성이 좋아질 것”이라며 합병에 동의했고, 박재형 서어서문학과 학생회장은 “합병으로 행정 업무가 늘어나면 특별기구가 학내 인권 문제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 반대했다.
소인위와 여위의 징계는 경고·제명·합병 중 택일 표결에 따라 합병으로 결정됐다. 여위 합병 안건은 찬성 91표, 반대 23표, 기권 3표, 의결권 없음 1표로 가결됐고 소인위 합병 안건도 찬성 89표, 반대 20표, 기권 4표, 의결권 없음 1표로 가결됐다. 합병 방식은 두 특별기구를 없애고 새 기구를 만드는 신설합병으로 결정됐다. 신설 기구의 운영 방식이나 인적 구성에 대한 결정은 중앙운영위원회(위원장=이정원, 이하 ‘중운위’)에 위임됐다.
소인위와 여위를 비롯한 학내 특별기구들은 합병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지난 13일 학내인권단체협의회가 연 기자회견에서 김다희 소인위 임시의장은 “총학생회 인권국이 사실상 없어진 상황에서 두 특별기구를 합친다면 인권 사안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신설 기구가 기존 두 기구의 전문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송재윤 여위 대표자는 “매 학기 성희롱·성폭력 대응 창구 상담원 교육과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지만 합병 시 다른 사업으로 인력이 분산돼 상담 교육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원 서울총학생회장은 “경희대·고려대 세종캠을 포함한 여러 대학이 소수자 인권 기구들을 통폐합하고 있다”며 “통폐합으로 인한 어려움이 생긴다면 해당 학교들에서 문제가 드러났어야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소인위와 여위는 13일 이의제기 소명서를 제출해 18일 제6차 중운위에서 징계 수위를 재논의한다.
“감사위, 특별기구 자율성 해칠 것”
이번 전학대회에서는 특별기구 감사위원회 설치 안건도 다뤄졌다. 체계적인 특별기구 심사를 목표로 하는 감사위원회는 감사를 위해 사무실, 장부 등을 출입·봉인하거나 전산정보시스템에 입력된 자료를 조사할 수 있다.
감사위원회 설치 배경으로는 △안건 대상 특별기구장의 중운위 심의 불참 △일부 특별기구의 총학생회 의존 △설치 목적과 맞지 않는 핵심 사업 등이 제시됐다. 이정원 회장은 “기구마다 서류 형식이 제각각이고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중운위 심의에 참석하지 않는 일부 기구의 활동을 평가하기 어려웠다”며 “감사위원회가 특별기구 활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면 전학대회에서 신속하고 투명한 재인준 심의가 가능할 것”이라 말했다. 이정원 회장은 “특별기구는 편입생연합회나 특별기구 탈퇴 전의 응원단처럼 총학생회가 하지 않는 대규모 사업을 하나 이상 진행해야 한다”며 “인권 관련 특별기구의 대규모 사업인 인권주간은 2023년을 제외하고는 2016년부터 총학생회가 주최해 왔다”고 지적했다.
특별기구 사이에선 감사위원회 설치가 각 기구의 자율성을 해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강주연 장애인권위원회 위원장은 “감사가 어떤 방식과 강도로 진행될지 예측할 수 없어 특별기구의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정원 회장은 “감사위원회는 특별기구의 활동과 예산 내역을 사후에 확인할 뿐 활동 방향을 선제 지시하지 않기에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감사위원회에 부여한 권한이 과하다는 지적엔 “감사에 필요한 자료가 전산상에 입력돼 전산정보시스템 조사 권한을 가질 뿐이며 사무실의 출입·봉인 권한도 자료 조사와 이동을 위한 조치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전산정보시스템 접근이 정보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생활도서관 관계자는 “전산정보시스템에는 생활도서관을 이용하는 지역 주민의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어 감사위원회가 제약 없이 접근할 경우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사위원회 설치 안건은 임시 전학대회에서 찬성 74표, 반대 22표, 기권 17표로 가결됐다. 감사위원회는 현직 중운위원 4인과 최근 2년 이내 전학대회 대의원직을 수행한 5인으로 구성되며 제3회기 전학대회에서 활동 내용을 보고할 예정이다.
글 | 정송은·정혜린 기자 press@
사진 | 안효빈 기자 light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