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내한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록 그룹 콜드플레이는 ‘Viva La Vida’라는 곡으로 유명하다. 라디오헤드 풍의 슬픈 팝 록을 들려주던 콜드플레이가 기존 스타일을 버리고 프로그레시브 장르에 도전해 이미지 변신은 물론 제2의 전성기를 시작하게 도왔다.
매너리즘의 굴레에서 그룹을 구해낸 일등 공신은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였다. 그는 세계적 인기를 누리던 콜드플레이의 콧대를 누르고 전면적 변신을 강변할 수 있는 대선배였다. 그는 토킹 헤즈, 유투 같은 밴드들을 이끌고 명반을 만들어낸 전설이었다. 콜드플레이는 창의적 갈등을 겪긴 했지만, 이노의 디렉팅을 따랐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Viva La Vida’의 성공 덕분에 브라이언 이노의 명성 역시 다시금 높아졌다.
이노는 주로 다른 아티스트의 음반을 프로듀싱한 작품들로 명망 높지만, 본인의 작품으로도 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1979년 <Ambient 1: Music for Airports>를 통해 ‘앰비언트’ 장르를 창시했다. 앰비언트는 숱한 하위 장르들을 탄생시키며 살아남아 아직도 활발하게 창작되고 있다. 앨범 하나를 통해 계보 하나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노가 탄생시킨 앰비언트 장르란 직접 설명에 따르면 “흥미로운 동시에 무시할 수 있는 음악”이다. 고의로 주의를 끌지 않도록 설계되었지만, 완전히 무시하기는 힘든 음악이란 뜻이다. 멜로디가 있지만 중독적이지 않고, 집중해 듣지만 기억에 남지 않는, 음악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의 표현을 빌리면, “기억상실의 훅”을 가진 음악이다. 흔히 ‘몽롱한 음악’ 정도로 해설되기도 하나 원래 정의와는 차이가 크다.
이런 음악을 만드는 원리는 다음과 같다. 듣는 사람이 패턴을 예측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노는 소수 관계의 재생 길이를 가진 테이프 루프를 동시에 재생해 목표를 달성했다. 루프가 반복될 때마다 두 음악이 다른 지점에서 만나기 때문에 매번 다른 조합이 만들어진다.
2020년대 들어 앰비언트가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는 모습을 보며 지금 시대가 원하는 사운드 중 하나가 ‘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앰비언트는 집중력을 필요하지 않은 음악이다. 이를 위해 자극적인 소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앰비언트는 귀를 잡아채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 중독적인 훅을 사용하지 않는다. 전부 지금의 대중음악이 추구하는 히트 공식을 역행하는 방식이다. 요즘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에 지친 모양이다. 자연의 소리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음악을 듣길 원한다. 잘 때 틀어 놓는 모닥불 소리처럼.
한국에서도 앰비언트를 시도하는 흐름이 활발하다. 대표적으로 ‘ceiling service’라는 이벤트는 앰비언트 음악을 누워서 듣는 공연이다. 180도 뒤로 젖혀지는 의자나 편안한 빈백이 있는 곳에서 눕거나 눈을 감고 최대한 편하게 감상할 것을 권장한다. ‘쿤스트카비넷’이라는 앰비언트 전용 공연장도 생겼다. 베뉴를 운영하는 앰비언트 아티스트 모하니의 음악은 영롱한 자연의 소리를 닮았다. 전자 음악을 차갑다고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따스하고 힐링 된다.
세상의 자극이 강해질수록 그에 반하는 저자극 음악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는 모양이다. 사람이란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나 보다. 앰비언트의 재유행을 보며 의식주 못지않게 소리에서도 저자극의 수요가 커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때로는 침묵이 음악에 대한 애정을 더욱 높여주는 것처럼.
이대화 음악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