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펫 연주자에서 유튜브 PD로

연주자의 시선에서 나오는 아이디어

“대중성과 전문성 모두 담을 것”

 

서영재 KBS교향악단 공연사업팀 PD는 “시청자가 한 번 웃고 지나치지 않고 채널 안에서 클래식 애호가가 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콘텐츠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서영재 KBS교향악단 공연사업팀 PD는 “시청자가 한 번 웃고 지나치지 않고 채널 안에서 클래식 애호가가 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콘텐츠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KBS교향악단 유튜브 채널을 클릭하면 공연 실황 영상 사이로 ‘강호동 협주곡’, ‘궁예 - 레퀴엠’ 등 낯선 썸네일이 눈에 띈다. 예능 <1박 2일>과 드라마 <태조 왕건>을 활용한 숏폼 콘텐츠는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해 KBS교향악단 유튜브를 전 세계 교향악단 유튜브 채널 중 구독자 수 10위권에 들 정도로 성장시켰다.

  서영재 KBS교향악단 공연사업팀 PD는 클래식의 딱딱한 이미지를 깨는 영상을 제작하며 사람들이 클래식을 쉽게 즐기도록 돕는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트럼펫을 전공한 그는 KBS교향악단 입사 전 4년간 유튜브 채널 ‘알기 쉬운 클래식 사전’을 운영하며 작곡가의 의도와 곡에 담긴 배경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서 PD는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에 흥미를 느껴 시장이 커지고 연주자들도 안정적으로 활동하는 선순환이 정착하면 좋겠다”고 했다.

 

  - 트럼펫 연주자에서 PD가 된 계기는

  “클래식 공연장 관객의 대부분이 연주자의 지인이나 동료인 현실을 마주하면서 진입장벽을 낮추고 싶은 바람이 생겼습니다. 대중에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하다 대학교 3학년 때 음악 해설 콘텐츠를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죠. 입시를 준비하며 작곡가, 시대 상황 등 배경지식의 중요성을 깨달은 덕분입니다. 연주에만 집중하면 테크닉만 느는데 작곡가의 의도와 화성 구조를 이해하면 청자를 설득하는 연주를 할 수 있어요. 청자도 음악의 뒷이야기를 알면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죠. 몇 년 전까지 클래식 음악계는 유튜브를 부정적으로 인식했지만 점점 온라인 미디어가 주류가 되면서 클래식 음악을 다루는 단체도 유튜브에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개인 유튜브 채널이 성장하며 제 콘텐츠에 확신이 생겼고 마침 KBS교향악단이 유튜브 담당 직원을 채용한다는 소식을 들어 지원했습니다.”

 

  - 파격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비결은

  “억지로 아이디어를 짜내기보단 좋아하는 밈이나 유행하는 콘텐츠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방송국엔 음악과 융합할 수 있는 영상 소스가 풍부해 다양한 영상을 만들 수 있죠. 우연히 웃긴 콘텐츠를 접하면 어떻게 교향악단과 엮을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최근엔 유노윤호 ‘Thank U’의 레슨 밈을 접목해 공연장 에티켓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었죠. 기존에 없던 콘텐츠인 만큼 입사 초기엔 상사를 설득하기 쉽지 않았지만 문서 기획안 대신 가편집본을 직접 보고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봐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올린 영상이 점차 화제가 되고 채널 구독자가 늘자 영상 기획이 보다 자유로워졌습니다. 현재까지 10대 구독자는 3배 늘었고 20~30대 구독자가 전체의 70%를 차지하죠.”

 

  - 교향악단에선 어떤 콘텐츠를 추구하나

  “언제나 클래식의 매력을 알린다는 본질에 집중합니다. 클래식을 대중화하려는 시도는 ‘대중의 클래식화’를 최종 목표로 삼아요. 100만 조회수 중 1000명이라도 관객으로 유입되면 성공이라 볼 수 있죠. 이에 KBS교향악단 채널에선 대중성이 강한 콘텐츠뿐 아니라 전문적인 콘텐츠도 균형 있게 만들어 클래식 입문자가 마니아가 되도록 돕고자 해요. 예컨대 공연 비하인드나 음악 해설을 영상화하며 클래식 애호가를 겨냥하죠. 연주자를 경험해 봐서 단원들의 심리나 공연장 환경을 이해하고 있기에 교향악단만이 담을 수 있는 백스테이지나 공연 중 주목해야 할 대목을 빠르게 포착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론 더 깊이 있는 콘텐츠 제작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하나의 공연을 올리는 데 수많은 사람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기에 공연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길 바라거든요. 클래식 음악 문화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콘텐츠도 꾸준히 만들고 싶습니다. 얼마 전 제천예술의전당으로부터 ‘궁예의 첫 번째 레슨 “에티켓”’을 공연 전에 틀고 싶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습니다.”

 

공연장 에티켓을 소개하는 '궁예의 첫 번째 레슨 "에티켓"' 영상의 썸네일.
공연장 에티켓을 소개하는 '궁예의 첫 번째 레슨 "에티켓"' 영상의 썸네일.

 

  - 오케스트라가 타 장르와 융합하고 있다

  “2021년 베를린 필하모닉이 <인디아나 존스>, <해리 포터> 시리즈 등의 영화음악을 작곡한 존 윌리엄스를 지휘자로 초청해 오케스트라 연주로 풀어냈어요. 오케스트라가 종합 예술의 시대에 맞게 유연히 진화하고 있는 긍정적 신호로 평가할 수 있죠. 대중과의 거리를 확실히 좁힐 수 있기도 하고요. 클래식 음악계에선 필름 콘서트처럼 아직 장르를 뛰어넘는 시도를 보수적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기획자가 애정과 지식을 갖고 접근하면 희화화나 훼손을 충분히 막을 수 있어요.

  베토벤, 차이콥스키는 생전에 이전 세대 작곡가와 비교되며 혹평을 받았지만 지금은 거장으로 평가받듯 음악에 대한 관점은 시간이 흐르며 변화하죠. 그러니 연주자는 열린 마음으로 음악을 바라보고 기획자는 직관적이고 몰입하기 좋은 기획으로 대중에게 다가가서 클래식 시장을 더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글 | 정혜린 기획2부장 byye@

사진 | 임세용 기자 syl@

이미지출처 | KBS교향악단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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