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개봉 전 예매로만 90만 장의 표가 팔려나갔다. 개봉 첫 주말 164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올해 개봉한 영화들 최고의 오프닝 성적이었다. 시리즈부터 극장판까지 젊은 관객들의 충성도가 강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도 개봉일에 극장에 가서 이 영화를 봤는데, 예상대로 관객 대다수가 20대 젊은이들이었다. 시리즈와는 달리 극장판은 15세 이상 관람가여서 주말에는 10대 관객들도 대거 몰렸을 것이다. 지인은 내게 “딸이 고2 학생인데 이 영화를 2D로 보고 아이맥스로 다시 예매하는 이해 못 할 짓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내가 출연하고 있는 유튜브 방송 ‘매불쇼’의 영화 코너의 패널들은 이 작품을 다루기로 했다. “<귀멸의 칼날>이 너무 훌륭해서 반드시 다뤄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었다. “왜 이 작품이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이토록 인기가 많은가?”라는 토론을 해보자는 차원이었다. 문제는 ‘매불쇼’의 주시청자들이 40~50대라서 이 작품을 다루는 것 자체에 대해 극심한 거부감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일단 그들은 원작을 둘러싼 ‘극우 논란’ 때문에 오타쿠적 차원에서 열심히 작품을 소개한 패널들에 대해 뭇매를 가했다. 내가 보기에 그들 대부분은 이 작품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보지 않고도 비난할 수 있는 영역은 일본과 관련된 것이 거의 유일하다. 그야말로 정서적 반감이다.
그러나 시리즈와 극장판을 통틀어 이것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찬양을 담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그야말로 억측이다. 일단 작품 내적으로 <귀멸의 칼날>은 이른바 오타쿠 취향의 수요층을 창출해내기에 적합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피살된 가족, 주인공의 각성, 동지들의 규합, 피와 눈물의 수련 과정, 치열한 복수전’이라는 서사적 얼개는 보편적으로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요소다. 예전 무협 장르의 인기작들이 그런 전형적 서사를 가지고 있었다. 무협이라면 소싯적 한가락 했던 중장년층이 이 작품을 두고 ‘유치한 애들 장난’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보편성을 훌륭하게 갖춘 애니메이션 작품에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기성세대 일부(그야말로 ‘일부’라고 믿고 싶다)는 자신들의 반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관람 행위를 ‘극우’로 매도한다. 더 나아가 최근 선거에서 드러난 20대의 투표 성향까지 거론됨으로써 ‘<귀멸의 칼날>을 보는 젊은 세대=극우’라는 폭력적 등식이 성립된다.
내가 아는 한 성소수자는 1980년대 학생운동 전성기에 총학생회 활동을 했다. 그는 나름 진보적이라고 하는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성 지향성을 밝힐 수 없었다고 한다. 총학생회 간부들이 “동성애는 미 제국주의의 쓰레기 문화”라고 매도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동성애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아니다. 그 인식으로 말미암아 누군가를 코너로 몰아붙이는 폭력이 발생한다는 것을 간과했다는 게 진짜 문제다. 나름 스스로 정의롭다고 생각한 이들이 말이다. <귀멸의 칼날>을 비판하는 걸 넘어 그 작품을 보는 세대까지 극우로 비하하는 이들은 스스로 대단히 정의롭다고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애국자라도 된 기분이 들 것이다. 문제는 그런 자아도취를 위해 인식론적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극우적인 행태다.
<귀멸의 칼날>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단면은, 어쩌면 세대 간의 거의 완전한 단절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그 문제보다, 이 작품이 극우인지 아닌지에 대한 야단법석이 더 중요한가? 폭력적인 단정 짓기를 서슴지 않는 이들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끔찍한 혈귀들로 보일지도 모른다.
최광희 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