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수역 사이 완충지대 역할

이상기후로 종다양성 감소

“자연 친화적 해결법 찾아야”

 

2020년 8월 장마로 잠긴 경기 고양시 장항습지.
2020년 8월 장마로 잠긴 경기 고양시 장항습지.

 

  습지는 국토 면적의 3.6%에 불과하지만 국내 멸종위기종의 약 32%가 서식하는 생물다양성 핵심 지역이다. 육상생태계와 수생태계를 이어 동식물의 서식지를 확대하면서도 물이나 흙의 범람 등 지역 간 지나친 물질교환을 방지한다. 이렇듯 경계에서 완충 역할을 하던 습지에 최근 이상기후가 찾아와 생물다양성을 직간접적으로 해치고 있다. 인위적으로 기능을 복구하기보다 습지의 회복력을 높일 수 있는 자연 친화적 해결 방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염물 거르고 물·먹이 제공

  하천·호수·하구 등 수자원과 육지가 인접하는 지역에 형성되는 습지는 육상생태계와 수생태계를 연결해 육상동물이 해양의 수분과 먹이를 섭취하도록 돕고 서식·은신처를 제공한다. 담수와 해수가 만나 섞이는 기수역에서는 망둑어류 등 염분에 강한 생물종이 모여 생물다양성을 높인다. 

  다양한 생물 사체가 쌓여 형성된 습지의 토양은 탄소·질소·인 등의 물질을 생물에 제공하면서 자원을 순환시킨다. 물질을 조절하는 특성은 이상기후를 완충하기도 한다. 상류와 연안에서 유입되는 다양한 오염원을 중간에서 집적시켜 정화하고 다른 생태계로 흘러가지 않도록 막기 때문이다. 습지식물인 부는 중금속, 연은 질산염과 암모니아, 갈대는 인 등 침전된 오염물을 흡수해 수질을 개선한다. 신경훈(한양대 해양융합공학과) 교수는 “습지 퇴적층의 미생물은 수질오염원인 질산염을 무해한 질소 기체로 방출하는 탈질화 과정으로 수질을 개선한다”고 설명했다. 습지는 홍수가 발생하면 물을 머금어 지하수를 보충하고 가뭄이 오면 물을 공급하는 일종의 스펀지 역할을 한다. 이상훈 국립생태원 습지연구팀장은 “바닷가의 콘크리트 방파제보다 습지의 수해재난 피해 완충 효과가 높다”고 했다.

 

  잦은 이상기후로 기능 잃어

  기후변화로 폭염·한파와 홍수·가뭄 등 극한 기후의 발생 빈도와 강도가 높아지면서 수생태계와 육상생태계가 단절되고 습지 생물의 서식지가 위협받고 있다. 재해가 짧거나 드물게 발생하면 영양염류를 공급하고 바닥 구조를 재편해 생물다양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지만 기록적인 폭우나 해일처럼 큰 재해는 습지생태계 자체를 붕괴시킨다. 추연수 국립생태원 생태지표연구팀 전임연구원은 “물을 조절하고 생명의 터전을 잃거나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수문·생물·지화학적 기능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2020년 낙동강 하구가 집중호우로 완전히 잠겨 *저서생물과 갈대의 서식지가 파괴됐다. 낙동강의 모래섬인 도요등 면적의 약 30%가 유실되기도 했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당해 겨울 철새 수는 서식지 감소로 인해 전년 대비 1만4023마리 감소했다. 김이형(공주대 스마트인프라공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재난 피해를 스스로 회복할 시간이 충분했지만 빈도가 잦아지면서 습지의 회복력이 고갈되고 있다”고 말했다. 

  폭염으로 수위가 내려가고 **육역화로 수환경 면적이 줄면 수환경에 의존하는 생물군 다양성도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추 연구원은 “수환경 면적이 줄어들면서 드러난 육지에선 육상생태계 종다양성이 일시적으로 증가할 순 있다”면서도 “장기적으론 습지생태계에 구조적 전환이 일어나 고유한 수생태계 생물다양성이 약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높아진 수온이 생물의 생존을 직접 위협할 수도 있다. 김 교수는 “수온 30도 이상에선 용존산소가 급격히 줄어들고 어류의 알이 정상적으로 부화하지 못한다”며 “달라진 온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번식에 실패하면 수생동물의 개체수가 감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고온에서 습지를 잠식하는 일부 독소 조류가 다량 발생하고 이들이 침전되면 저층 산소까지 고갈되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폭우는 습지 주변 지형을 교란한다. 빗물과 함께 도로·사업장·공사장 등의 지표면에 쌓인 오염물질이 빗물과 함께 쓸려 내려와 습지의 수질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탁수에 든 영양염류가 들어와 단기간에는 식물성 플랑크톤과 작은 물고기가 급격히 증가하지만 결국 식물의 광합성을 방해해 수질을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습지 기능보다 회복력 되찾아야

  최근 극한 기후가 잦기 때문에 빠른 습지 복구가 중요하지만 생태 친화적이지 않은 설계와 접근을 지양해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추 연구원은 “집중호우로 인한 하천 범람을 해결하기 위해 단순히 제방 고도를 높이면 하천과 범람원 간 생태적 연결성을 차단해 생물 이동을 제한하고 식생의 서식 공간을 축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토목 안정성이나 조경적 미관에 초점을 맞춘 복구 사업들은 단기적으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생물다양성을 해친다”며 “복원 대상지를 단순한 경관 조성이 아니라 생태서식처로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자연 친화적인 재료를 활용해 습지 자체 회복력을 높이는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s, NbS)이 재해 피해를 예방·복구하면서도 생태계 기능과 연결성을 회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범부처 생물다양성 전략을 구성한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에 재해취약지구 관리 및 하천 복원 과정에서 자연기반해법을 적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추 연구원은 “범람이 빈번한 지역에서 제방을 후퇴시키고 농경지를 홍수터로 환원하는 복원 사업은 홍수 위험을 줄이면서도 습지 서식처를 확대할 수 있다”며 “토목공학적 접근에서 벗어나 생물 서식처의 양과 질을 늘리는 접근”이라고 평했다. 자연에서 나온 재료를 활용하면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 김 교수는 “물살이 빠르고 얕게 흐르면서 물보라가 튀는 여울이나 연못을 만들면 대기 중으로 산소가 녹아들고 정화되면서 수질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콘크리트나 플라스틱은 시간이 지나면 독성물질을 방출하는 6가 크롬이나 미세플라스틱 등 유해 물질이 용출될 수 있어 자연의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005년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는 카트리나 허리케인으로 562㎢가 침수, 퇴적된 후 대규모 염습지 복원 사업이 진행됐다. 퇴적물 유도 사업 등을 통해 2023년까지 18년에 걸쳐 축구장 5만8천 개에 해당하는 면적의 해안 서식지가 개선됐다. 국내에는 생물과 토양 등 생태계 구성요소가 이동하는 과정을 장기적으로 모니터링하도록 뒷받침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이 팀장은 “습지의 재난을 예방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지만 국내 적용 사례는 아직 적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지역 고유종을 활용해 식생을 복원하고 하구-연안-바다로 이어지는 큰 규모에서의 물질순환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저서생물: 습지 바닥에서 서식하는 생물.

**육역화: 하천의 물길 구간에 토사와 부유물로 퇴적지가 생기는 현상.

 

글 | 백하빈 기자 hpaik@

사진제공 | 한동욱 에코코리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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