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신조어가 있었다. ‘문과여서 죄송합니다’(‘문송합니다’)이다. 이과에 비해 상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덜 주목받고, 취업난에서 뒤처진 문과 전공자 스스로에 대한 자조적인 표현이다. 요새도 언론매체나 일상생활에서 종종 쓰이곤 한다.
필자는 세종캠퍼스 출신이다. ‘학벌 뻥튀기하려고 고려대 세종캠퍼스 간 것 아니냐?’라는 송곳 같은 질문에 ‘절대 아니다’라고 말할 순 없겠다. 특이하면서도 특별한 전공에 대한 자부심 한쪽에, ‘나도 고연전을 즐길 수 있겠구나, 표면상으론 나도 고려대’라는 마음을 품었었다. (본캠 친구들에게는 무임승차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양심이란 것이 무엇인지. 남들 앞에 쉽사리 ‘고려대 다닙니다’라고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세종캠퍼스여서 죄송합니다.’ 세송한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를 학벌 콤플렉스에 가뒀다. 반수도 해보고, 강의실과 도서관만을 오가며 전공 공부에 매진해 봤지만, 뜻대로 잘되지 않았고 한번 위축된 마음이 여간 단번에 기지개 켜듯 풀리지 않았다. 그리고 취업에 나섰다. 운 좋게 전공을 살린 시민사회단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쥐꼬리만 한 최저시급, 툭하면 수당 없는 추가 근무와 주말 출근, 사람이 부족해 막내 임무는 물론 팀장 역할도 하고 때론 다른 부서 업무도 도맡아 했다.
그런데 재밌었다. 일도 일이지만 시민단체에 있다 보니 다양한 분야, 여러 층위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국회의원, 기업 회장부터 매일 같이 길에서 소외층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까지, 잠깐이지만 그들의 품행과 말씨 속에서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5년 가까이 일하면서 배운 점은 학벌이 좋든 나쁘든, 돈이 많든 적든, 명예가 높든 낮든, 사람 사는 일이 별것 없어 보였다. 그러면서 세송한 나를 조금씩 놓아줄 수 있었다.
자기 위안일 수도 있겠다. 네가 학벌이 안 좋으니까, 돈을 많이 벌지 못하니까, 직위와 명예가 낮아서 그런 것이라고. 반박하고 싶지 않다. 스스로를 방어하고 싶은 기제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런 경험들이 최소한 오늘의 나를 버틸 수 있게 했다. 혹시나 무언가에 사로잡혀 나를 일정 틀 안에 가둬 놓고 있다면, 그 틀을 완전히 아니 잠시라도 풀어 놓길 바란다. 생각보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 대해 관심이 없고, ‘내’가 행복해야 남들도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던 것 같다. 그제야 “안녕하세요. 고려대 세종캠퍼스 다녔습니다”라는 말에 힘이 생겼다.
<유니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