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명의 응모작을 읽는 일은 기대만큼 즐거웠다. 응모한 작품들은 이 시대의 징후와 위기를 치열하게 겪어내면서도, 나 자신과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젊음의 감각을 담아내고 있었다. 때로는 선명한 감각보다는, 시라는 장르와 시의 형식에 대한 고정관념이 앞선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시를 통해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고, 더 명징하게 재현할 수 있는 삶의 부면이 있음을 아는 젊은 목소리를 여전히 이렇게 많이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행운이다. 심사를 통해 본격적인 토의의 대상이 된 작품들은, <고깃덩어리> 외 1편, <레시피 인 메모리엄> 외 1편, <복습> 외 2편, <착수 금지> 외 2편이었다.
<고깃덩어리>의 육박하는 언어와, 섬뜩한 감각은 독자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타인의 말과 시선에 의해 규정되고 정체화되는 신체에 대한 서늘한 발성과 밀도 있는 전개는 이 시의 장점이었다. 다만 이러한 대립적 구도와 해체적 이미지의 재현이 다소 단순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점은 아쉬웠다.
<레시피 인 메모리엄>에서는 언어를 다루는 기술, 유려한 화법의 전환, 다채로운 사물들의 출현이 돋보였다. 2편의 응모작은 소재와 언어를 직조하는 데 능숙한 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제출 작품에서도 보이듯, 목소리의 완숙함 한편에 있는 기시감에 유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젊은 시의 가장 큰 장점인 언어의 모험과 생경함의 에너지에 집중한다면, 추후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 생각된다.
<복습> 외 2편에서 보이는 미/비성년의 감각은 섬세하고 투명했다. 위태로운 과거와 교차하는 현재, 보이지 않는 미래에 잠식당하는 현재의 시간들이 정밀하게 펼쳐져 있어, 독자들에게 오래 들여다보고 말을 걸게 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하는 작품들이었다. 다른 작품인 <아지트>에서 그려내는 아슬아슬하게 허물어지는 위태로움의 감각 또한 인상적이었다.
<착수 금지> 외 2편의 응모작은 3편 모두 고른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돌 하나>에 등장하는 ‘나’와 다른 대상을 교차하는 시선이 발생시키는 고요한 의문들이 무척 아름다웠다. <개평>에 나타나는 장례 풍경 사이 지속되는 삶의 구체성에 대한 묘사들에서는, 깊고 개성적인 사유가 배어 나온다. “건너온 사람이/건너간 사람처럼 어두워진다고”와 같은 구절이 특히 그러했다.
토의 끝에 <착수 금지>를 우수작으로 선정하였다. 상승과 개발의 욕망 속 이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붕괴와 절망을, 견고한 구조 속에 축조하며 그려내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타인 또는 누군가의 “집을 무너뜨려야 이긴다는” 이 폭력적인 현실 논리 속에서도, 끝내 “깨진 돌”과 바둑알들의 “딱딱거”리는 소리를 듣고 “버려진 백 돌 하나”에 시선을 두는 이 시가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응원이 되기를 바란다.
우수작과 가작으로 선정된 <착수 금지>와 <복습>의 응모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더불어 위태로움과 흔들림 속에서도 나 자신의 목소리를 잊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는 다른 응모자들에게도, 감사와 응원을 전한다.
하재연 고려대 교수·미디어문예창작전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