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체 언급은 금기로 취급
실력·인간미에 매료돼 입덕
“기획력도 기술도 모두 중요”
2D 캐릭터의 외형을 지닌 버추얼 아이돌이 팬층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아바타 뒤에서는 사람이 직접 노래하고 춤추지만 그들의 정체는 철저한 비공개다. 아바타 뒤에 숨겨진 인간미에 빠진 버추얼 아이돌 팬에게 캐릭터의 외관은 더 이상 진입장벽이 아니다. 여느 아이돌 팬처럼 오프라인 콘서트를 즐기는 이들에게 버추얼 아이돌은 실력이 뛰어난 가수일 뿐이다.
현장감 덕에 대면 콘서트 흥행
버추얼 아이돌은 본체라고 불리는 아바타 뒤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 애니메이션과 다르다. 본체의 목소리가 그대로 시청자에게 전달되기에 성우의 목소리를 가공해 악기처럼 사용하는 보컬로이드와도 구별된다. 이렇듯 버추얼 아이돌의 정체성에 본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지만 기획사는 팬의 몰입이 깨질 것을 우려해 본체 정보 유출을 금지한다. 팬들도 버추얼 아이돌만의 매력과 세계관에 집중하고자 본체를 알려 하지 않는다. 버추얼 아이돌 그룹 스텔라이브의 팬 김인범(남·28) 씨는 “동네 날씨, 일상 루틴 등 현실 이야기를 들으면 본체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 이상 호기심을 가지면 안 된다”고 했다. 버추얼 보이그룹 플레이브의 팬 박모(여·31) 씨도 “외계행성에서 왔다는 플레이브의 세계관과 버추얼 아이돌로서의 매력을 온전히 즐기려면 소속사 방침에 따라야 한다”고 했다.
버추얼 아이돌 팬덤은 모든 대면 행사에서 스크린 송출로 캐릭터와 마주한다. 아이돌의 실물을 보지 못하지만 대면이 주는 설렘과 현장감에 콘서트는 흥행한다. 스텔라이브 멤버 아야츠노 유니의 콘서트에 다녀온 김 씨는 “입장 전 팬들이 응원법을 연습하거나 굿즈 부스 앞에 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여느 K팝 콘서트와 똑같아 공연 시작 전부터 기대했다”며 “라이브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애드리브나 작은 실수, 관객과 호흡하는 모습에 진짜 가수처럼 느꼈다”고 말했다. 같은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과 공감하며 공연을 즐기는 경험도 콘서트에 가는 이유다. 버추얼 걸그룹 이세계아이돌의 팬인 20대 여성 A씨는 “인터넷 방송 채팅에서만 만나던 팬들과 함께 콘서트를 즐긴다는 게 신기하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아바타 뒤에 숨겨진 인간적 면모
팬들은 버추얼 아이돌을 버추얼 휴먼이라기보다 하나의 아이돌로 여긴다. 노래, 춤, 연주 실력 등 아이돌이 지닌 평범한 장점을 이유로 버추얼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이다. 버추얼 밴드 그룹 오프이퀄스 팬인 강모(여·22) 씨는 “아이돌은 실력이 가장 중요하기에 악기 연주 라이브를 잘하는 오프이퀄스를 좋아한다”고 했다. 본체의 외모가 공개되지 않는 만큼 탄탄한 실력이 팬 유입의 필수 요소라는 의견도 있다. 이세계아이돌 팬 김모(남·26) 씨는 “외모로 차별화하기 어려운 버추얼 아이돌은 노래 실력이 경쟁력”이라며 “현실 아이돌보다 가창력이 좋은 버추얼 아이돌이 많다”고 말했다.
버추얼 아이돌의 인간적인 면모도 호감을 느끼게 한다. 플레이브 팬 황모(여·23) 씨는 “멤버들이 운동하거나 산책하는 소리를 녹음해 들려줄 때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란 느낌이 들어 좋다”고 말했다. A씨도 “콘서트에서 ‘전 언제나 17세지만 오늘만큼은 제 빛나는 이십대를 기억해 줄 사람이 여러분이라 고맙다’는 멤버 주르르의 말에 실제 사람이라는 게 실감 나 더 감동했다”고 했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아바타를 구동하는 사람의 유머 감각 등 개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면 팬과 버추얼 아이돌의 감정적 유대가 형성된다”며 “버추얼 아이돌을 단지 캐릭터로 보면 안 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버추얼 아이돌만의 특색인 수준 높은 기술을 좋아하는 팬도 있다. 황 씨는 “플레이브 콘서트에는 순간이동, 공중 걷기, 2층 높이에서의 낙하 등 현실 아이돌 콘서트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연출이 있어 흥미롭고 다음에는 어떤 신기한 장면이 펼쳐질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석인(연성대 영상콘텐츠학과) 교수는 “플레이브의 성공 배경에는 게임 엔진을 다루는 기술기업에서 출발한 소속사가 있다”며 “캐릭터의 동작이 자연스러울수록 높은 인기를 얻을 수 있기에 엔터테인먼트 감각만큼 뛰어난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거부감 없거나 극복 가능한 ‘외모’
많은 팬이 버추얼 아이돌의 애니메이션형 외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는 대중이 캐릭터형 외관에 익숙해진 덕분이다. 김 씨는 “원래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고 2D 캐릭터를 좋아했기에 버추얼 아이돌의 외형에 큰 거부감이 없다”고 했다. 장민지(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애니메이션, 웹툰 등 콘텐츠가 오랜 기간 사랑받으며 2D 캐릭터도 대중에게 익숙한 형식이 됐다”며 “특히 청년층은 숏폼 콘텐츠에서 버추얼 캐릭터를 반복해 접하므로 버추얼 아이돌의 외모를 쉽게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처음에는 외관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버추얼 캐릭터 뒤 본체의 데뷔 과정과 성장 서사에 마음을 열고 팬이 되기도 한다. 이세계아이돌 팬 함모(남·21) 씨는 “원래 아이돌과 서브컬처에 관심이 없어 버추얼 아이돌에도 편견이 있었지만 생방송에서 멤버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접하고 실력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거부감이 사라졌다”고 했다. 황 씨도 “힘들었던 연습생 시절 이야기나 버추얼을 향한 편견에도 꾸준히 노력해 무대 기회를 얻어낸 서사를 접하고 나니 외관은 껍데기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글 | 서윤주 기자 sadweek@
이미지출처 | VLA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