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같은, 그간 주로 다소 탐미적(耽美的)인 영화를 만들어 온 토드 헤인즈 감독을 생각하면 이번 신작 는 뜻밖의 느낌을 준다. 사회적 주제의식이 앞선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만큼 이 영화의 기반이 됐던 리얼 스토리에 토드 헤인즈 스스로 엄청난 공분을 느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사실은 영화 도 그런 사회성이 담겨져 있는 작품이긴 했다. 동성애에 대한 오랜 사회적 편견에 대한 분노 같은 것. 영화 는 미국을 대표하는 화학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인 듀폰의 환경 비리를 다룬 내
‘바람’과 ‘행함’, 그 무한의 굴레에 갇힌 우리는 욕망에 찌든 삶을 꾸려나가다가도 어느 시점에 다다라 이 모든 것이 덧없음을 돌연히 깨닫는다. 무얼 위한 싸움이었는가? 그래서 지금, 무엇이 내게 남았는가? 은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라파엘의 인생을 놓고 함께 고민해볼 뿐이다. 7월 혁명의 격동 이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혼란한 날이었다. 젊은 청년 라파엘은 자살을 결심하지만, 골동품상 노인에게서 소원을 들어준다는 나귀 가죽을 건네받고는 다시 삶을 이어나간다. 무언가를 원할 때마다 가죽의 크기는 줄어들고 그
한동안 망설이던 세계보건기구(WHO)가 유럽과 미국으로의 확산세에 놀라 세계적 대유행, 즉 팬데믹을 선언했다. 1948년 WHO가 설립된 후, 팬데믹 선언은 홍콩독감(1968년), 신종플루(2009년)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는 전세계로 퍼졌고, 이제 이 사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지역, 국가는 없다. WHO는 감염병의 통제에 대한 희망을 말하지만 반대로 절망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세계는 위험한 곳으로 돌변했고, 거리엔 온통 국경 봉쇄와 인
문을 닫기 위해 박소란대교를 지나다 보았다막 강으로 뛰어드는 사람 강으로 뛰어들기 위해막 난간을 기어오르는 사람 막 운동화 끈을 조이고 막 발을 구르는사람 버스를 타고 달리면서 보았다빠르게 빠르게 출렁이는 물결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막 허우적대는 것처럼 빠르게 더 빠르게 물속에 잠기면서보았다어둠을 가르고 세차게 헤엄치는 사이렌 살려 주세요 벨을 누르자낯선 섬을 가리키는 정류장이 있고 집이 있고 막 벨을 누르자늦었네, 한참을 엎드려 울고 난 얼굴로 문을 여는 사람 문을 닫기 위해 식탁 위 향기로운 저녁을 차려 두고곁에 선 젖은 그림
연구실에서 온라인 강의와 사투를 벌이던 때, 오후의 나른함을 잊게 해줄 반가운 이메일이 도착했다. 고대신문 기자가 ‘교수님은 스무 살’이라는 코너에 글을 한 편 써달라고 청탁하는 내용이었다. 사실 어쩌면 그때 나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봄을 잊고 살아야 하는 억울함 때문에 은근히 마음속으로 온라인 강의 준비보다 더 신나는 일을 찾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메일을 열어본 순간부터 조금의 망설임 없이 내 마음속은 대학 시절의 기억으로 가득 들어차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30년 전 대부분의 고대생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
사실은 그랬다. 나는 나의 상위 평가자에게 언제나 관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간직하며 소소하게 노력하는 소심한 관종이다. 이것은 나의 초,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진 일종의 생활 습관이다. 일단 대외적으로 나에 대한 좋은 평판을 만들어 두면 그들의 편견 속에서 학교생활이 나름 편안하게 흘러갔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이 달콤함을 깨달은 나는 직장에서 근무하는 지금도 ‘어떻게 하면 회사 관리자의 마음에 들게 일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의 신임을 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이것은 소위 짝사랑 중인
이른 아침 출근길에 대학의 문 닫힌 건물 앞에서 학생 두 명을 만났다. 학부 20학번 신입생이란다. 대학 건물이 출입통제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것저것 궁금해서 그냥 한 번 와 봤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은 했는데 입학식도 취소되고 교실 강의도 계속 늦춰지니 오죽 답답했을까. 바라보는 내 마음도 애잔했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불러온 파장은 이미 엄청나다. 앞으로도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후대 역사가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시대를 구분할지도 모르겠다. 정치·경제·사회는 물론이고 일상의 사회적 관계와 개인 정체성에도 큰 변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인천 앞바다에 쓰러진 펭귄에게 누군가 손 내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늘날 구독자 211만 유튜버 펭수를 만든 힘은 EBS 면접날 펭현숙 씨가 차려준 순댓국과 편견 없는 이들의 응원이었다. 펭수는 남극의 소수자였다. 2m 넘는 키는 넘지 못 할 관계의 벽이 되었다. “특별하면 외로운 별이 된다”는 꼬마 펭귄의 혼잣말은 이제 ‘자이언트 펭TV’의 가사로 쓰인다. 이제 외로운 별의 얼굴은 잠옷과 다이어리, 스티커를 채우고 있다. 늦은 개강을 맞은 대학가 어딘가에도 스티커 자국 같은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불가
예고에서 본격적으로 작곡을 전공하기 시작했을 때였던 듯하다. 사회적으로 치열한 1980년대 후반 학번이던 언니와 오빠가 내게 충고를 했던 게. ‘현실을 모르는 온실 속의 화초이기만 하면 음·미대 깡통이란 소리를 면할 수 없다’라고 했던가? 당시엔 그 이야기가 꽤 고깝게 들렸지만, 그 충고가 마음에 담겼는지 대학교를 입학한 1991년 입학식을 마치자마자 곧장 철학동아리를 찾아갔다. 나름 야무지게 동아리 가입 의사를 밝혔던 나는 그날 ‘여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곶 됴코 여름하나니’의 구절처럼 결실을 보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
지난 겨우내 가수 Y 씨가 화제였다. 90년대 초반, 음악적 표현과 무대 매너가 당시 사회정서와 너무 다르다는 이유로 연예계를 떠나야 했던 그가 30여 년 만에 소환되면서 그 과정에서 겪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들도 재조명되었다. 이 상황의 한편에는 지난 세대의 획일성, 경직성에 대한 지금 세대의 야유가 들어있다. 이런 정서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주변의 의도도 조금은 엿보인다. 그래서 이 일을 바라보는 마음은 조금 복잡하다. Y를 소환하여 도닥이며 과거를 나무라는 지금의 우리는 과연 얼마나 유연하고 포용력있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조은결전문기자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코로나19의 폭발적인 확산세로 인해 의료진과 방역당국이 전국적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 전쟁 같은 현실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낯선 환경 속에서 새로운 제도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 아직까지도 바뀐 선거제도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기 보다는 막연한 짐작으로 투표에 임할 유권자들이 더 많아 보인다. 게임의 룰을 바꾸어 놓은 장본인들조차 예기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 이 시국에도 각종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있는 판이니 일반 유권자들은 더 답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