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가르침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뜻이다. 재산과 권세나 명예를 내려놓고 보면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이다. 이 사실을 의외의 장소에서 느낄 수 있었는데, 바로 사우나다.
사우나는 핀란드의 단어 ‘sauna’에서 비롯됐다. 핀란드에서 사우나는 집에서도 즐길 수 있는 문화 요소다. 이곳 사람들이 사우나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묻는다면, 인구가 560만 명인 나라에 사우나만 300만 개가 있을 정도라고 답하고 싶다.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학생 기숙사에도 사우나가 있어서, 한 달에 5번 원하는 시간대를 예약하면 혼자서 한 시간을 이용할 수 있다. 심지어는 헬스장이나 ‘스카이힐 헬싱키’라는 관람차에도 사우나가 있다.
<Finnish Nightmares>라는 책에서 알 수 있듯 핀란드 사람들은 내향적인 편이다. 그래서 스몰토크 문화가 없는데, 거의 유일하게 낯선 사람들과도 활발히 대화하는 장소가 사우나라는 말도 있다. 최근 방문했던 수영장에선 “사우나에서 핀란드인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면, 대부분은 친절하게 여행객에게 자신들이 사랑하는 핀란드 전통을 알려줄 것”이라는 조언을 얻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워싱턴 D.C.의 주미 핀란드 대사관이 ‘사우나 외교’를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외교 사우나 협회’ 모임에선 정치인, 외교관, 언론인, 공무원, 학자 등이 반라 또는 전라의 상태로 토론을 한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들은 러시아 해커, 스파이의 감시를 피하고자 비교적 도청의 우려가 적은 사우나 공간을 선호한다. 사우나가 서로 신뢰하고 솔직해질 수 있는 공간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사우나에서 국적이나 신념은 크게 중요치 않다. 그저 지금 내앞에 있는 사람과 함께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곳을 두고, 주미핀란드대사관 공보참사관 헬레나 리카넨-렌저(Helena Liikanen-Renger)가 했던 “사우나는 당신이 정말 당신 자신이 될 수 있고, 다른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김규원(사범대 국교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