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허위·조작 보도 피해자에게 언론사가 손해액의 3~5배를 배상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가짜 뉴스로 인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는 기대와 권력자의 언론 통제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고려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허위 보도 근절해 언론 신뢰 회복해야 - 강규민(보과대 바이오의과학21)

  언론을 자칭하며 공연히 거짓 정보를 유통하는 매체가 활개하고 있다. 그사이 진실을 전하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취재하는 언론인은 자극적인 콘텐츠에 독자를 뺏겼다. 거짓·왜곡 보도를 일삼는 일부 매체를 제한하고 건실한 언론사가 당면한 위기를 해소하려면 더 이상 언론 징벌적 손배제 도입을 미룰 수 없다.

  오늘날 정치 양극화가 극에 달하면서 정치 분열을 심화하는 허위 보도는 높은 수요를 발판으로 수익 창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예컨대 스카이데일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에서 중국인 간첩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중국인이 한국 선거에 개입했다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부추겼고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반년이 지난 지금도 일부 세력은 여전히 부정선거론을 내세워 건전한 공론 형성을 방해하고 있다. 

  언론 징벌적 손배제가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도 있지만 현행 제도하에서 언론사가 보도의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손해배상액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언론중재위원회의 2024년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손해배상청구가 인용된 판결 112건 중 65.2%가 배상액이 500만 원 이하인 사례였다. 언론 보도가 만든 피해보다 공식 입장이나 정정보도의 파급력은 미약한 만큼 언론의 책임은 강화할 필요가 있다.

  언론 징벌적 손배제가 언론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규제의 적용 대상은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고의로 허위 정보를 생산·유포한 보도로 한정된다. 따라서 성실히 취재하는 언론인이 처벌 대상이 될 소지는 적다. 정파를 떠나 건실한 언론사의 보도라면 규제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제도가 권력의 도구로 악용될 거라는 걱정도 시기상조다. 재판부가 언론사에 배상을 청구할 때 보도의 공익성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언론사 대상 손해배상청구에서 정치인의 승소율은 27.3%에 그쳐 일반인의 승소율 39.4%보다 훨씬 낮았다. 대다수 공익 보도는 징벌적 손배제의 영향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언론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책임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국민 요구가 크다. 징벌적 손배제는 건강한 담론 형성을 저해하는 무분별한 보도에 책임을 강화해 언론의 건강한 여론 형성 기능을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언론 징벌적 손배제와 함께 허위·조작 보도를 방지하는 자정 노력이 뒤따른다면 언론 생태계는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빈대 잡으려다 민주주의 태우는 언론 징벌 - 이세연(문과대 영문22)

  언론 보도에 3~5배의 손해배상금을 부과하는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정당성도, 실효성도, 현실성도 없는 이 제도는 민주주의의 토대를 흔든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징벌적 손배제에서 법리적 정당성은 찾아볼 수 없다. 거액 소송에 대한 두려움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부패를 견제해야 할 언론의 기능을 고사시키고 언론사가 보도의 공익적 가치보다 소송 위험비용을 먼저 계산하게 만든다. 설령 언론사가 승소하더라도 소송 과정에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소모해야 하기에 언론 활동의 위축은 불가피하다. 

  결국 탐사, 의혹 보도는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한국의 특수한 법제와 결합해 언론 위축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한국에는 세계적으로 드물게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라는 형사 규제가 있다. 여기에 징벌 배상까지 더하면 헌법상 과잉금지원칙 위반이자 명백한 이중 규제다. ‘고의·중과실’, ‘악의적’이라는 모호한 요건도 문제다. 추정 규정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재판부의 자의적 판단에 해석을 맡기는 것은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

  실효성도 의문이다. 언론 징벌적 손배제는 ‘시민 피해 구제’를 명분으로 삼지만 사실상 징벌이다. 권력 비판 보도가 나올 때마다 취재 동력을 고갈시키는 전략적 봉쇄 소송이 남발할 것이다. 그럼에도 법안에는 권력자 악용 방지 조항조차 없다. 권력자에게만 유리한 이 제도는 민주주의 공론을 왜곡해 시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권력 남용의 여지를 내재한 불완전한 정책에 대해 악용하는 사람이 문제일 뿐 제도는 잘못이 없다는 호소는 제도의 본질적 결함을 개인의 윤리 문제로 호도하는 변명에 불과하다.

  현실적 기반도 취약하다. 징벌적 손배제가 최소한의 정합성을 확보하려면 권력 남용 방지 장치, 이중 처벌 문제 해소를 위한 형법상 명예훼손죄 개정, 구체적 판단 기준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이러한 전제 조건을 전혀 충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도입을 강행하는 것은 탁상공론일 뿐이다. 나아가 법안 적용 대상을 유튜브, SNS 등으로 확대하겠다는 주장도 현실성이 부족하다. 매 순간 쏟아지는 콘텐츠를 정부가 일일이 감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의 눈에 띈 일부 매체에만 선택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자의적이고 형평성에 어긋나는 법 집행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언론 책임 강화를 가장한 ‘언론재갈법’이다. 언론 책임 강화가 필요하다면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지 않는 방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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