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다림, 수장고를 나서다’
매장유산 미정리 사업 성과 선보여
영남대 박물관은 영남 지역 10개 대학박물관이 수행한 매장유산 미정리 유물 보존 및 활용 사업의 성과를 한자리에 모은 연합특별전 ‘오랜 기다림, 수장고를 나서다’를 7월 11일부터 오는 10월 24일까지 개최한다. 전시에서는 20세기에 발굴돼 오랫동안 대학박물관의 수장고에 있던 미정리 유물이 공개됐다.
국가유산청이 지난 5년간 미정리 유물을 복원하고 정리한 사업의 성과와 학술적 의미를 한눈에 보여주는 1부 ‘오랜 기다림, 역사를 밝히다’에 이어 2부 ‘역사를 발굴하다’는 각 대학박물관이 발굴한 유적지를 소개하고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과 그 의미를 조명한다. 황오동 34·37호분은 경북대 박물관이 1960~70년대에 조사한 유적지다. 유적에서 발견된 금동관과 말안장 꾸미개는 신라 지배층의 권위와 장례 문화를 보여준다.
경상국립대 박물관은 합천 옥전 고분군 발굴 성과를 공개했다. 4~6세기 가야 지배층이 묻힌 옥전 고분군에서는 1985년 이후 10여 차례 조사에서 수백 기의 무덤과 수천 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특히 보물로 지정된 ‘용봉문고리자루큰칼’과 ‘금귀걸이’는 가야 왕권의 권위와 예술성을 상징한다. 풍부한 발굴 성과 덕에 가야사의 실체를 밝히는 근거가 확보돼 옥전 고분군은 20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영남대 박물관은 경산 임당동·조영동 고분군에서 나온 굽다리접시와 긴목항아리를 전시한다. 서기 500년 무렵 만들어진 굽다리접시의 네모난 창문 모양 장식이나 긴목항아리의 촘촘한 물결무늬에서 당시 장인의 솜씨와 경산 지역 특유의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여러 토기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일정한 무늬를 통해 표준화된 제작과 체계적 생산이 이뤄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 토기뿐 아니라 무기, 장신구, 제사용 도구 등에도 고대인의 기술력이 한껏 묻어난다.
3부 ‘이야기를 만들다’에서는 9개 대학의 대표 유물에 담긴 고대 사회의 생활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경주 인왕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영남대 박물관의 금동 신발은 앞판과 뒷판을 못으로 고정하고 외면을 매끈하게 처리한 독특한 양식을 띤다. 화려하고 정교한 금빛 장식은 장례 의식에서 권위와 사회적 위계를 드러낸 신라 귀족의 문화를 보여준다. 부산대 박물관은 돼지, 개, 말의 토우가 새겨진 원통모양 그릇받침을 전시한다. 이 유물은 부산 복천동 고분군 32호분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토기로 둥근 바닥의 그릇을 받치기 위해 제작됐다. 특히 원통형 몸체의 아랫부분에 배치된 돼지, 개, 말 모양의 토우는 풍요와 수호, 이동을 뜻하며 제사 의례와 놀이 문화가 공존한 당시 사회상을 드러낸다. 이외에도 ‘동검암각화’, ‘판갑옷’, ‘야요이계 항아리’ 등 다양한 유물로 삶과 죽음, 놀이와 제사가 얽힌 고대 사회의 독특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다.
마지막 섹션인 4부 ‘발굴을 기록하다’는 발굴 현장에서 작성된 기록물을 전시해 고고학 연구 과정을 보여준다. 발굴일지, 조사 도면, 현장 사진은 삽과 붓으로 시작된 발굴이 어떻게 연구 보고서와 학술 논문으로 이어지는지 드러낸다. 유물과 함께 남겨진 기록물이 또 하나의 문화유산임을 확인할 수 있다.
글 | 김규리 기자 evergreen@
사진 | 최주혜 기자 cho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