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밑에 죽은 참새가 있었다. 오른발로 참새의 머리통을 짓이기기 직전 황급히 무릎을 들었다. 균형을 잃어 세 발짝쯤 앞으로 휘청였고 걸음마다 흙모래가 풀썩거렸다. 책가방을 고쳐 메고 죽은 새에게 다가갔다. 새라기보다는 핏덩이에 가까웠다. 가슴께가 가로로 쭉 찢어져서 그 붉은 속이 훤했다. 깃털 군데군데 피떡이 뭉쳤는데 구슬 같은 검은 눈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살아 있었다. 숨이 붙은 짐승만이 눈을 빛낼 수 있지 않던가. 누군가 가슴을 찢고 달아난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곧 아침 식사를 마친 주인집이 늙은 개를 산책시킬 거였다. 그는 바퀴벌레든 손바닥만 한 나방이든 맨손으로 턱턱 짓이기는 위인이었다. 그런 노인이 죽어가는 참새 따위에 신경을 기울일 리 없을 터였다. 게다가 노인은 신발 끈을 묶을 때마다 어린애만 한 그 개를 문밖에 풀어놓기까지 했다. 달달거리는 손끝이 아주 느긋했으므로 짐작하건대 노인이 신발 끈을 꼬아 리본을 묶는 동안 늙은 개는 주먹만 한 참새를 삼키고 입가의 흔적을 모조리 핥아먹고도 남을 거였다. 나는 책가방을 열어 언젠가 앞주머니에 박아두었던 낱개 포장 물티슈를 꺼냈다. 찻잎이 그려진 포장지를 뜯어 흰 물티슈로 참새를 덮었다. 축축한 면포 위로 부리가 툭 솟아 도드라졌다. 참새를 화단 흙에 옮겨두고 물티슈를 치운 뒤 그 위로 흙을 서너 번 퍼 올렸다. 손톱 틈새에 흙이 박혀 들어갔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학생, 거기서 뭐 하나?”

  슬리퍼를 신은 주인집이 비틀거리며 문간을 넘었다. 그 뒤로 늙은 개가 컹컹 짖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날씨가 좋길래요.”

  노인이 허공을 향해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문고리에 걸린 우유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래, 쓰레기는 거기 버리지 말고. 며칠 전에 상추를 심었거든.”

  그가 화단 앞에 쪼그린 나와 흙 위로 나뒹구는 물티슈를 번갈아 가리켰다.

  “예, 그럼요.”

  물티슈를 손에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주머니에서 꺼낸 요구르트병을 흔들며 집으로 들어갔다. 도어록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무릎을 일으켜 세웠다. 불그죽죽한 담장에 너덜거리는 흰 종이가 붙어 있었다.

  ‘하숙방 있읍니다 / A 대 정문 도보 20분 / 버스 정류장 도보 8분 / 무료 와이파이밥 제공’

  제대 후 늦은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서 이곳에서만 벌써 3년이었다. 공장 폭발 사고로 아내를 잃은 주인집은 하나뿐인 아들이 호주로 이민을 떠난 4년 전부터 홀로 늙어가는 중이었다. 손끝 야무진 여자들의 하숙에 비해 여러모로 뒤처지는 탓에 하숙비는 눈에 띄게 적었다. 그럼에도 술만 마시면 학생들을 붙잡고 술주정을 늘어놓아서 지금까지 남은 하숙생은 나뿐이었다. 제 어미 목숨값으로 한몫 쥐고 호주로 튀었다니까, 옘병, 영악한 놈, 지 애미를 빼다 박았지, 주인집은 개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술주정에 시달린 밤에는 입안이 영 찝찝했다. 마치 내가 그 영악한 아들놈의 대용품쯤 되어 노인의 외로움을 달래는 느낌이었다.

 

  “노친네 어제도 그랬지?”

  명준은 강의실 책상에 엎드린 채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입꼬리가 시원하게 트인 명준의 입, 여자애들이 껌벅 죽는 그 입 때문에 나는 종종 속이 뜨끔했다. 특히 그가 노친네, 하고 특유의 공격적이고 되바라진 말투로 집주인을 부를 때면 더욱 그랬다. 그가 피식 웃더니 팔꿈치로 내 팔뚝을 찌르며 재차 물었다.

  “어? 야, 너 어제도 술 마셨지? 그니까 내가 뭐랬냐, 하숙집 옮기라니까?”

  “그래도 여기가 방값도 싸고. 심한 정도는 아니야. 그래도 나한테 잘해주셔.”

  “잘해주긴. 니가 유일한 돈줄이니까 그렇겠지. 간도 쌩쌩하고. 방세 아껴봤자 그거 나중에 병원비로 다 나간다.”

  명준과는 저번 학기부터 알게 된 사이였다. 짧은 머리칼 밑으로 자리 잡은 그의 이목구비는 누군가 빚어놓은 듯 화려했다. 나는 이제껏 명준만큼 아름다운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나와 동갑이었으나 세 학번이 높았다. 내 학번을 들은 그는 어딘가 의기양양해 보였고, 우리는 그럭저럭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다.

  “오늘 저녁에 애들이랑 술 마시기로 했는데 올 거지?”

  “애들? 누구?”

  “승규, 정훈이, 뭐 그쪽 애들이랑 여자애들.”

  강의실 문이 열렸다. 회색 양복 차림의 교수가 단상으로 걸어들어왔다. 교수는 툭 튀어나온 보랏빛 입술에 마이크를 가져다 대고 똑똑 혀를 찼다. 스피커를 타고 교수의 숨소리가 들렸다.

  “가야지.”

  “너 간다고 말해 놓는다.” 명준이 스마트폰을 끄더니 말했다. “아, 나 강의 녹음 좀. 배터리가 없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 화면에 강의 자료를 띄웠다. 녹음 버튼을 누르자마자 교수가 입을 열었다.

  “에-, 이번 수업은 4강이죠. 이번 강의에서는”

  명준의 하품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잔뜩 찡그린 그의 옆얼굴을 곁눈질했다. 저 옆으로 여자 둘이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나는 명준의 잘생긴 코를 노려보다 교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나도 덩달아 많은 사람의 눈에 걸려들긴 했으니 웅크린 등과 어깨를 펼쳤다.

  강의가 끝나고 복도로 나서자 낯선 얼굴들이 오고 가며 명준에게 인사를 건넸다. 더러는 내게도 인사말을 나누어 주었고 나는 어깨를 활짝 펼친 채로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유리문을 열어젖힌 명준이 내 어깨에 팔을 올리며 킥킥 웃었다.

  “좋냐?”

  나는 바늘에 찔린 듯 흠칫 놀라 명준을 돌아봤다. 그가 검고 큰 눈을 반짝이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건물 밖은 한산했다. 그의 손목에 달린 은색 시곗줄이 햇볕 아래서 번쩍였다. 저 앞으로 캠퍼스 정문까지 쭉 뻗은 내리막길이 보였다. 정문 너머의 녹색 논밭이 막막할 만큼 넓었다. 낡은 아스팔트 도로가 누더기를 엮은 실처럼 땅 위를 띄엄띄엄 가로질렀다. 파란 하늘과 논밭 사이로 자리한 퇴비 냄새가 묵직하게 코를 때렸다.

  “...뭐가?”

  “뭐긴, 아까 강의실에서 우리 쪽 보던 그 여자 말이야. 좋아 죽네, 아주?”

  사레가 들려 짧은 기침을 연달아 뱉었다. 그동안 이어폰을 낀 남자가 명준의 어깨를 건드리며 아는체했고 시답지 않은 농담을 던지더니 유유히 멀어졌다.

  “널 봤겠지.”

  명준이 어깨를 으쓱 털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이따 7시에 정문포차로 나와. 터미널 쪽에, 알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내리막길을 걸었다. 명준은 그의 또 다른 친구와 함께 옆 동으로 강의를 들으러 갈 것이었다. 나는 일부러 명준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것이 내 초라한 자존심이었다.

  D 대학교는 A 시의 외곽에 있었다. 그 어느 고등학생도 꿈꾸지 않을, 등록금을 넣을 즈음에는 현실감이랄 게 없는, 그런 의미에서 D 대는 그 캐치프레이즈처럼 꿈의 대학이라고 할 만했다. 기숙사가 없고 마을버스의 배차 간격이 최대 2시간에 달했으므로 자가용이 없는 대부분의 학생은 하숙촌에 모여 살았다.

  하숙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건물 벽마다 하숙 광고지가 나붙어 있었다. 편의점 앞을 지날 때 승규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형 오늘 온다며? / 명준 형 폰이 꺼졌대 / 우리 정문포차 말고 비어가든 가기로 함 /거기로 와’

  대충 답장을 보내고 화면을 껐다. 검은 화면 위로 내 평범한 얼굴이 비쳤다. 승규는 명준 덕에 알게 된 과 동기였다. 둘은 같은 하숙집에서 지낸다고 했다. 나는 충동적으로 가장 가까운 하숙 광고의 사진을 찍었다. 생각해 보면 명준의 말대로 하숙집을 옮겨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 사진 속 광고문을 거의 다 읽었을 즈음 하숙집에 다다랐다. 화단 구석에 봉긋 솟은 흙더미가 보였다. 이제 참새는 저 밑에서 아예 죽어 있으리라. 한기가 등 가운데를 내달렸다.

  집 안이 캄캄했다. 며칠 전부터 현관 센서 등이 먹통이었다. 신발장 위로 두꺼운 달력이 매달려 있었다. 작년 가을까지는 얇은 종이 달력이었으나 어느 틈엔가 숫자마다 자그마한 약 바구니가 달린 천 달력으로 바뀌어 버렸다. 서넛씩 꽂힌 약봉지가 바람이 불 때마다 바스락 소리를 냈다. 신발을 벗고 주방을 지나 2층 계단을 올랐다. 2층은 거실을 가운데로 두고 흰색 문짝이 좌우로 둘씩 마주 보는 구조였다. 거실 유리창을 타고 들어온 햇볕이 마루 위로 미끄러졌다. 계단에서 가장 가까운 문이 화장실이었고 내 방은 가장 먼 쪽이었다.

  거실을 가로질러 방에 들어선 나는 방문을 잠그고 책상에 가방을 내렸다. 입은 옷을 바닥에 벗어 두고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어젯밤 주인집의 술주정에 늦게까지 시달린 터라 아주 피곤했다. 약속 시간까지는 세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알람을 맞춰두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한낮의 소음이 작게 들리다가 곧 사그라졌다.

 

  나는 참새를 죽였다. 하굣길이었다. 꽃가루 섞인 바람이 콧속을 맴돌다 공중으로 흩어지고 이파리를 살랑이는 나뭇가지 사이로 녹색 햇볕이 부스러졌다. 그 모든 것이 찰나임을 미처 알지 못했던 나는 눈가를 찌푸리고 이 빠진 보도블록 위를 걷는 중이었다.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순간 나는 전율했다. 9살 무렵의 그 단편적인 체험이 나의 전 생애를 관통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연약한 신음처럼 희미한 소리였다. 보도블록과 나란히 뻗은 아스팔트 도로 한중간에 아주 작은 참새 한 마리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둥지에서 떨어진 아기 새가 허공에 대고 삑삑 울었다. 마로니에 나무들이 내뻗은 두꺼운 가지가 참새의 머리통 위로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는 인도와 차도를 가르는 울타리를 순식간에 뛰어넘고 새가 도망가지 않도록 천천히 다가가 참새를 조심스레 감싸 쥐었다. 그 순간 피부를 뚫고 전해지던 뜨거운 박동, 분명한 생명.

  그것의 뜨끈하고 단단한 몸통이 파들거렸다.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다. 나는 두려웠다. 참새의 검은 눈을 바라본 순간에, 나의 작은 손짓만으로도 그것이 금방 죽어버릴 거란 사실을, 나는 아무 거리낌도 없이 그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잔뜩 겁을 집어먹고 참새를 돌려놓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아스팔트를 향해 물을 떠올리듯 조심히 손을 펼쳤다. 그 순간 누군가 내 가방을 덥석 잡아챘다. 나는 기우뚱 뒷걸음질하며 참새를 가슴에 품었다. 얇은 나뭇가지 같은 것이 똑 부러졌다. 아기 새가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어떤 예감에 코끝이 시큰했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내 어깨에 달라붙어 온갖 아양을 떨어댔다. 그 아이가 시작이었다. 평소 나에게 시큰둥하던 아이들이 내 곁에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그 애들은 나를 둘러싸고 내 손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그 작은 날개를 찔러보기 위해 내게 애원했다. 그 순간의 고양감과 흥분을 나는 여전히 기억했다. 그것은 소름 끼치도록 요란하게 내 가슴께를 내달렸다. 나는 다리가 부러진 참새를 들고 내게 애원하는 무리 사이를 걸었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이거 나 주라, 어? 제발. 내가 내일 젤리 다섯 개 줄게.”

  낯선 기쁨에 한껏 달아오른 나는 그 기쁨이 영원할 줄로만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는 내가 마음을 바꾸진 않을까 조심스럽다는 듯 공손하게 양손을 내밀었다. 나는 뜨끈한 참새를 그 애의 손바닥에 떨어뜨렸고 눈 깜짝한 새에 혼자가 되었다. 비어버린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저 앞에선 아이들이 와글거리며 그 아이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나는 매섭게 추락했다. 포근한 둥지에서 거친 아스팔트 노면으로 뚝 떨어진 새끼 참새처럼. 나는 나의 기쁨을, 정신을, 살과 내장을, 그 아이에게 몽땅 넘겨버리고 만 것이었다. 나는 달렸다. 수많은 어깨를 밀쳐내고 그 애의 팔뚝을 잡았다.

  “돌려줘.”

  “뭐?”

  “돌려달라고.”

  집으로 향하는 골목에 접어들었을 때 내게 남은 것은 왼쪽 다리가 부러진 참새 한 마리였다. 사라진 아이들, 그들의 친근한 말투, 몸짓, 이전의 행복과 지금의 고독. 그날의 아이들을 나는 증오하였고, 그리워했다.

 

 

  잠에서 깬 것은 알람이 울리기 3분 전이었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눈꺼풀이 찐득거렸다.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주워 입고 방문을 열었다. 날이 저물어 실내가 어둑했다. 거실을 지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화단 옆의 주차 공간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주인집과 개가 모두 없는 저녁은 아마도 처음이었다. 큰 개와 노인이 시간을 보낼 만한 장소가 집 안의 소파가 아니면 어디란 말인가? 나는 굳게 닫힌 화장실 문을 열면서 잠시 궁금해했다가 금방 잊었다.

  그보다 나는 꿈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토마토가 담겨있던 스티로폼 상자를 비우고 참새 둥지를 만들었다. 거실 구석에 둥지를 놓고 다리 부러진 참새에게 쌀알을 씹어 주었다. 볼품없이 죽어가는 참새가 내 안에 초라하게 남은 무언가를 온몸으로 읊어댔다. 딱딱한 쌀을 앞니로 부수면서 질끈 눈을 감았다. 쌀을 씹고 곤죽이 된 알갱이를 뱉어 새끼 참새의 부리 안으로 밀어 넣는 행위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 참새는 죽어 있었다. 갈색 몸통이 뻣뻣하게 굳어 스티로폼 위를 나뒹굴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사체를 감싸 쥐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벌어진 부리 틈으로 미끈한 액체가 흘러나와 마루 위로 똑똑 떨어졌다. 침과 부서진 쌀과 새의 피를 왼손으로 받아내며 계단을 걸었다. 죽어버린 참새 따위는 존재한 적도 없다는 듯 아주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콘크리트가 부서진 주차장을 지나 가로수 밑에 참새를 묻었다.

  흙을 파내는 동안 들리던 풀뿌리 끊어지는 소리, 쌀알이 부서질 때 앞니가 맞부딪치던 통증, 참새의 다리가 부러지던 순간의 감각, 손바닥 위에서 참새의 동그란 눈알이 검게 반짝이던 순간을, 나는 어떻게 삽으로 퍼낸 듯 까맣게 잊을 수 있었는가, 아니, 정말 잊었던가, 찬물로 얼굴을 적시는 지금 그 모든 것들이 당장의 일처럼 생생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축축한 얼굴을 연신 쓸어내렸다.

 

  짧은 비명이 들리고 바지춤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여자가 다급하게 두루마리 휴지를 풀더니 책상 위로 번지는 맥주를 닦았다.

  “어떡해, 미안해! 핸드폰은 괜찮아?”

  “어, 괜찮아.” 나는 스마트폰을 켰다가 껐다. “저기, 나도 휴지 좀 주라.”

  맞은편에 앉은 승규가 휴지 더미를 건넸다. 승규를 비롯한 남자애들이 소란을 틈타 미심쩍은 눈빛을 주고받았다.

  “연수가 밥이라도 사야겠는데.”

  누군가 장난스레 말을 던졌다. 테이블 위로 요란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자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내가 술자리의 중심이 되리라는 것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알딸딸한 김에 옆자리의 벌주를 충동적으로 대신 들이켰을 뿐이었다.

  연수는 나보다 두 살이 어렸다. 눈 아래로 뾰족하게 솟은 광대,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긴 생머리, 입을 쩍 벌리고 음식을 베어 무는 습관까지,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연수에게 안주를 덜어주었고 떨어트린 젓가락을 챙겨주었으며 한 번씩 그녀와 어깨를 붙이고 웃었다. 그녀와 나 사이의 일반적이지 않은 기류에 모두가 호들갑을 떨어댔다. 술기운에 기대어 나는 과장스레 웃었다. 빈 술병들과 맥주에 젖은 휴지조각과 바닥을 보이는 전골냄비로 어지러운 테이블 밑에서 연수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고개를 돌려 표정을 숨긴 연수의 광대가 삐죽 솟아올랐다.

  “2차 갈까?”

  명준이 술병에 남은 마지막 소주를 병째로 들이켰다. 그에 호응하듯 사람들이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명준이 테이블을 짚고 앞으로 몸통을 기우뚱하며 일어섰다. 그 순간 나는 그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는 테이블 아래 슬그머니 얽힌 손가락들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무심한 얼굴로 지갑을 챙겼다. 막이 내렸다는 뜻이었다. 나는 연수의 피부에서 손을 떼고 미지근한 손바닥을 윗옷에다 문질렀다.

  “오빠도 갈 거야?”

  연수가 조용히 속삭였다.

  “어, 뭐, 봐서.”

  시큰둥한 대답에 연수가 키득거렸다.

  “오빠 지금 엄청 취한 것 같아.”

  나는 어깨를 으쓱 털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의자 등받이에 몸을 받쳤다. 맥주를 머금은 바지가 허벅지에 척 달라붙었다. 계산을 마친 명준이 출구 방향으로 손짓했다. 연수가 나를 향해 수줍게 웃어 보였다. 모든 것이 사라졌음을 눈치채지 못하는 그녀가 나는 너무도 지겨웠다. 소란한 사람들을 지나 밖으로 향했다. 걸음이 어렴풋하게 휘청였다.

  바지춤을 움켜쥐고 걸었다. 밤공기가 눅눅했다. 한 번씩 걸음을 늦추고 스마트폰의 빈 화면을 들여다봤다. 명준과 술에 취한 남자애들은 저 앞에서 무리 지어 고래고래 웃어대고 있었다. 여자애들 역시 명준의 주변에서 저들끼리 팔짱을 끼우고 발걸음을 맞췄다. 나의 무심한 태도에 완전히 질려버린 연수만이 나를 띄엄띄엄 돌아보고 인상을 구길 뿐이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홀로 걷고 있었다. 술집들의 요란스러운 조명이 그들을 비췄다 말았다 했다. 고백하자면 나의 느릿한 발걸음은 누구라도 튕겨 나와버린 나를 떠올리고 나의 이름을 불러주거나, 혹은 몸을 돌려 내 옆에 서 주기를, 그래서 나를 잡아끌고 무리 속으로 집어넣어 주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왁자한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자리에 멈춰 서서 절망했다.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여자의 손을 잡고 촌스러운 네온 조명 아래서 그녀와 입이라도 맞추고 싶었다.

  저 앞을 걷던 명준이 천천히 쪼그려 앉았다. 명준을 따라 몇몇이 살금살금 허리를 숙이는 게 보였다. 나는 태연한 척 그들에게로 향했다. 여자애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무언가 소곤거렸다.

  “야, 저거 살아있는데?”

  “날개를 막 움직여.”

  “나 고양이가 사냥하는 거 처음 봐.”

  “저렇게 뚱뚱한데 어떻게 잡았지?”

  잿빛 고양이가 먼지 쌓인 실외기 위에 엎드려 있었다. 지저분한 털 위로 탁한 가로등 빛이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고양이는 경계하듯 술 취한 사람들을 응시하면서 큼직한 새의 목덜미를 잘근잘근 씹었다. 새의 날개가 비명처럼 퍼덕였다. 명준이 무리를 향해 고개를 돌려 감탄 섞인 욕을 몇 마디 뱉었다. 부풀어 오른 듯 큼직한 그의 두 눈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일순간 두 다리가 팽팽하게 조여 들었다. 명준의 매끄러운 얼굴 뒤로 목 꺾인 새가 날갯짓을 뚝 멈췄다.

  나는 튀어 오르듯 달렸다. 괴성을 내지르고 실외기를 걷어찼다. 낡은 철판이 요란하게 울렸다. 고양이가 뚱뚱한 몸통을 허공으로 날렸다. 나는 고양이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그 뒤를 쫓았다.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세차게 펄떡이며 온몸을 뜨겁게 달궜다. 술에 전 두 다리가 휙 꺾였다.

  “굶어 죽을 것도 아니면서 왜 죽이냔 말이야! 이 씨발, 왜! 개 같은 거!”

  엉덩이를 땅에 대고 앉아 힘 빠진 두 다리를 주먹으로 힘껏 내리쳤다. 바닥을 나뒹구는 갈색 깃털이 보였다. 나는 씩씩거리며 깃털을 쥐었다.

  “완전 또라이잖아.”

  누군가 킥킥거렸다.

  속이 메스꺼웠다.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 미끈한 덩어리가 목구멍을 치고 올랐다. 필사적으로 하수구를 향해 기었다. 손에 쥔 깃털이 아스팔트 위로 우그러졌다.

  늦은 밤하늘은 달도 없이 검었다. 경멸 어린 시선에 떠밀린 나는 홀로 집을 향해 걸었다. 걸음마다 컴컴한 도로가 물결치듯 출렁였다. 볼품없이 찌그러진 깃대를 꽉 움켜쥐었다가 길가의 도랑으로 던졌다. 입안에 시큼한 맛이 감돌았다. 혀 위로 침을 모아 두어 번 뱉고 나니 목이 말랐다.

  화단 옆으로 주인집의 소나타가 서 있었다. 꽁무니에 진흙이 덕지덕지 말라붙어 있어서 가뜩이나 낡은 차가 한층 더 지저분해 보였다. 차체에 무거운 몸을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차가운 유리가 팔뚝에 닿았다. 푸드덕거리던 단말마의 날갯짓이 선했다.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고 검은 차창을 들여다봤다. 시커먼 사람의 형체가 비쳐 보였다.

  비틀대며 몸을 바로 세우고 현관으로 향했다. 무심코 돌아본 화단에서는 둥근 흙무덤 위로 가로등 빛이 축축하게 반짝였다. 무덤에서부터 그 뒤의 담장까지 거무죽죽하게 젖어 있었다. 개가 오줌을 싸갈긴 것이 분명했다. 나는 잠시 숨을 멈추고 광택이 나는 늙은 개의 오줌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 아래의 굳은 몸뚱이, 그리고 내 앞에서 죽어버린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현관문을 열어젖히는 동안 술 취한 머리통 위로 흙더미가 쏟아지길 바랐다.

  형광등의 흰 빛이 눈을 찔렀다. 나는 시린 눈을 감은 채로 신발을 벗었다.

  “석호냐?”

  번쩍 눈을 떴다. 주방 식탁에 앉은 노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 안 주무셨네요? 제가 술을 좀 마셔서.”

  나는 고개를 꾸벅이며 마루에 발을 들였다. 노인이 관절염을 잊은 듯한 몸짓으로 나를 향해 종종걸음쳤다.

  “석호 너, 지금이 몇 시냐. 늦으면 늦는다고 말해줘야 할 것 아니냐. 덕구랑 내가 회사 앞에서 얼마나 기다렸는데 말이야.”

  노인의 눈동자가 연한 먹빛으로 데룩거렸다. 물기가 바싹 마른 듯 윤기 없는 눈알이었다.

  “...예?”

  노인의 몸이 시동 꺼진 고물차처럼 우뚝 멈췄다. 갈색 개가 불안한 듯 낑낑거리다가 노인과 내 사이를 가르며 노인의 발치를 빙글빙글 돌았다. 식탁 아래에서 회전하는 선풍기가 삐걱 소리를 내며 공기를 밀쳤다. 미지근한 바람이 살랑거리며 얼굴에 닿았다. 좀약 냄새가 났다. 달력에 꽂힌 약봉지들이 사각거렸다.

  개가 주방 구석에 놓인 쿠션 위로 몸을 웅크리더니 세차게 짖었다. 집주인이 쓰러지듯 마른 몸을 웅크렸다.

  “...학생 왔는가?” 그가 태연하게 현관의 신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뭐하나, 안 들어가고?”

  섬뜩한 예감이 피부를 할퀴고 지나갔다. 더듬더듬 신음 같은 대답을 흘리고 2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냉장고 옆 선반에 흰색 종이봉투가 놓여 있었다. 그 위로 적힌 초록색 노인 병원 상호가 스치듯 보였다. 고꾸라지지 않기 위해 손잡이를 끌어안다시피 하며 계단을 올랐다. 2층 거실에는 시커먼 적막이 우글거렸다. 서늘한 기운에 팔뚝을 문질렀다. 노인의 거친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를 맴돌았다.

  화장실 옆 방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작년 겨울, 하숙생이 짐을 뺀 뒤로 줄곧 닫혀 있던 문이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황동색 문고리를 밀었다. 주인집이 청소할 때 사용하는 소독용 물티슈의 알코올 향이 났다. 나는 손을 뻗어 벽을 더듬거리다 형광등 스위치를 눌렀다.

  밝은 빛이 깜박이며 공간을 채웠다. 눈을 찡그리고 환한 주변을 살폈다. 벽을 바라보게 놓인 책상, 흰색 시트지가 군데군데 찢어진 옷장, 창가 아래에 놓인 파란 침대, 우주가 그려진 두꺼운 이불과 베개. 방 안에는 이상할 만큼 유아적인 로봇 스티커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옷장 옆 장식장에 단단히 구겼다가 펼친 것처럼 쭈글쭈글한 종이 더미가 누워 있었다. 나는 가장 위의 것을 찢어지지 않게 조심히 들었다. 누런 종이가 시들한 낙엽처럼 볼품없었다.

  ‘상장 / 최우수상 / 이석호 / 위 학생은 제13회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위와 같이 입상하였으므로’

  나는 노인의 기억 한가운데에 털썩 주저앉았다. 술에 취한 사람이 으레 그러하듯 나의 의식은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정신없이 널을 뛰었다. 참새, 명준, 깃털, 노인, 연수, 고양이, 쌀알과 꿈과 하수구,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되새기다가 묵직한 뒤통수를 바닥에 들이박았다. 졸음이 쏟아졌다.

  잠결에 누군가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내 얼굴을 따뜻하게 어루만졌고 개의 발톱이 경망스럽게 바닥을 스쳤다. 어딘가에서 옅은 좀약 냄새가 번져왔다. 목 아래로 포근한 이불이 느껴졌다. 일부러 눈을 뜨지 않았다. 정성 어린 애정의 향기가 폐 속을 채웠다. 미지근한 공기를 가르고 하늘을 날았다. 빠질 듯 저린 양팔을 구름 속으로 늘어트렸다. 작은 물방울들이 손가락 사이를 굴렀다. 파란 하늘을 활공했다. 저 아래에서 명준의 품에 안긴 더러운 고양이가 그르릉 울었다. 날아라, 갈색 개가 노란 오줌을 흘리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날갯짓 따위 비뚤어진 토악질 아니냐, 날아라, 날아! 주인집이 신발 끈을 풀어 헤치고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사랑을 담아, 나는 그들을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고춧가루 묻은 순두부에서 김이 푹푹 뻗쳤다. 명준이 식히지도 않은 순두부를 입안으로 밀어 넣고서 공기를 뱉었다 마셨다 하며 요란스레 찌개를 삼켰다.

  “나 거기 휴지 좀.”

  명준이 테이블 끄트머리를 손짓했다. 인중 위로 굵은 땀이 맺혀있었다. 휴지를 두어 장 뽑아 그에게 건넸다. 명준이 고개를 까닥하더니 휴지로 입가를 문지르고 다시 뜨거운 순두부찌개를 푹 떠먹었다.

  아침, 나는 노인이 꾸며놓은 이석호의 방에서 눈을 떴다. 팔다리에 엉킨 검푸른 이불을 헤치고 도망치듯 내 방으로 달렸다. 아래층에서 인기척이 들릴 때마다 노인의 시들한 눈빛이 떠올랐다. 새끼를 핥는 어미의 혀처럼 끈끈하게 들러붙던 시선 때문에 자꾸만 속이 울렁거렸다. 더러운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고 나니 불쾌한 갈증이 몰려왔으나 아래층에 내려가 노인을 마주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나는 노인이 안방에 들어가거나 현관 밖으로 나가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내 방 마룻바닥에 귀를 대고 한참을 납작 엎드려 있었다.

  명준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은 현관문이 열리고 늙은 개의 목줄 손잡이가 철제 문틀에 꽝 들이박는 소리가 들린 직후였다. 일어날 생각도 없는 승규는 버려두고 해장이나 하러 가자는 그의 말에 나는 단박에 몸을 일으켰다. 그다지 배가 고프지는 않았으나 그가 불러주는 식당을 검색하고 도착 예상 시간을 불렀다. 그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있으니, 그것으로 어제의 실수를 만회할 생각이었다.

  나는 순두부찌개를 뒤적이며 노인의 극심한 건망증과 알코올 중독의 징후들을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언젠가 나에게 사망한 아내의 행방을 물었던 일이나, 아침 산책을 다녀와 잔뜩 지친 늙은 개에게 목줄을 들이밀고 몇 번이고 실랑이를 벌였던 일, 그런 종류의 드문 기억을 쥐어짜고 과장하여 이상증세의 전조증상을 묘사했다. 순두부찌개 뚝배기를 양손에 든 종업원이 가까워질 때는 목소리를 줄였다가 빨간 앞치마를 허리에 두른 그의 등허리가 멀어지면 도로 목소리를 키웠다. 명준은 시큼한 냄새가 나는 중국산 김치를 뒤적거리다 한 번씩 눈을 감고 무언가 고민하듯 눈썹을 찌푸렸다. 물론 그가 얼굴을 찡그리는 건 결코 특별한 반응이 아니었다. 명준은 찌개에서 건진 바지락 껍데기를 젓가락 끝으로 벌릴 때도 눈을 감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미지근한 반응이 당황스러웠으나 이제 와서 이야기를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노인이 아침마다 틀어놓았던 교양 프로그램의 쇼닥터처럼 관자놀이를 문지르거나 손가락을 교차해 가위표를 만들면서 노인에게 두어 번 전해 들었을 뿐인 이석호의 매정함을 헐뜯었다. 이석호의 방에서 꾸었던 뜨끈하고 말랑한 꿈이 두어 번 떠올랐으나 그뿐이었다. 최종적으로 어젯밤 있었던 노인의 기묘한 착각을 설명할 때는 어느새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이른 듯 달뜬 기분이었다.

  “이따 너네 집으로 가보자.”

  “어?”

  명준이 뚝배기 벽을 숟가락으로 긁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직접 보고 싶어서.”

  머리통으로 찬물이 쏟아지는 감각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야 노인의 증세를 너무 과도하게 부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사건을 과장하여 진술하는 건 나의 오랜 습관이었다.

  “집에 안 계실 수도 있어.”

  “왜?”

  “낮 동안에는 아들 회사 앞에서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늦게 온다니까.”

  “오늘 주말이잖아.”

  명준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채근했다. 아들도 못 알아보는 통에 요일 따위야 아무 의미도 없을 터였다. 그의 뒤늦은 관심에 의아한 기분이 들었고 나는 곧 낭패감으로 얼굴이 뜨겁게 부풀었다. 생각해 보면 그는 타인의 의도를 눈치채고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기까지 시치미를 뚝 떼고 모르는 체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불필요할 정도로 안달하며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더 열정적으로 떠벌리거나 그를 위해 희생하기 마련이었다.

  하숙집으로 향하는 길, 그는 걸음마다 손목시계 버클을 풀었다가 도로 채우길 반복했다. 애인에게 선물로 받았다던 값비싼 시계는 끈질기게 찰캉 소리를 냈다. 나는 초조한 기분으로 부디 노인이 집에 없길 바라며 걸었다. 저 멀리 지저분한 소나타가 보였다. 명준이 시곗줄을 말아쥐고 바지 주머니에 꽂아 넣으며 한숨 섞인 웃음을 지었다. 풋내 섞인 바람이 재촉하듯 등을 떠밀었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는 동안 늙은 개의 둔탁한 발소리가 들렸다. 개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냉장고 옆에 엎드려 있었다.

  “덕구야!”

  노인의 외침이 멀게 들렸다. 2층 계단 울타리 틈으로 노인의 마른 발목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성큼성큼 내딛는 발걸음을 보고 있자니 소름이 돋았다. 덕구가 노인에게 대답하듯 한차례 짖더니 흰자가 유독 넓게 드러난 눈알을 데굴거리며 나와 명준을 살폈다. 명준은 달력에 꽂힌 약봉지를 손바닥 위로 올리고 알록달록한 알약들을 헤아리고 있었다.

  “왜 안 들어오고 거기 섰어? 자고 일어났으면 이불 정리는 좀 하고 나가야지. 이제 직장인이면, 어? 그런 습관 하나가 쌓여서 태도가 되고 상사는 니 태도를 보는 거라고 했다.”

  개의 머리통을 짓누르다시피 쓰다듬은 노인이 뒤늦게 명준을 발견하고 걸음을 뚝 멈췄다. 노인의 빳빳한 등허리, 어미의 혓바닥 같은 눈빛. 노인은 과거의 한순간에 아예 눌러앉아 버린 듯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노인이 움켜쥐고 재구성한 미래가 나를 물컹하게 옭아맨 것을 알았다. 명준이 타이밍 좋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머리칼이 팔뚝에 와 닿았다.

  “저 석호 친굽니다. 고등학교 친구요.”

  노인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현관을 향해 걸어왔다.

  “이야, 연예인 뺨치게 생겼네. 어서 들어와.”

  명준이 활짝 웃으며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툭 튀어나온 명준의 바지 주머니를 눈짓했다. 달력의 오늘치 약주머니가 텅 비어 있었다.

  “잘 놀다 가. 나는 이제 덕구랑 산책하러 가려니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명준의 등허리를 계단 쪽으로 지그시 밀었다. 늙은 개의 앞을 지나는 동안 개의 송곳니가 나의 양 발목을 씹고 뜯어내리라는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명준이 문득 뒤를 돌더니 나를 스치고 계단을 내려갔다.

  “저, 아버님.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정말 죄송한데요. 석호가 지난달에 10만 원을 빌려갔는데 아버님한테 받으라고정말 죄송합니다. 근데 제가 지금 사정이 급해서”

  “석호가?”

  나는 도망치듯 계단을 뛰어 올랐다. 이석호의 방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나는 화장실 앞에. 서서 가지런히 포갠 이석호의 이부자리와 꽉 닫힌 내 방문을 번갈아 보며 숨을 골랐다. 두껍게 뭉친 구름 뒤로 태양이 숨을 때마다 사방이 어둑해졌다. 귓가에서 낮은 소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오랜 옛날 내가 죽인 것은 참새 한 마리였다. 이제껏 나는 기어코 살아난 그. 짐승의 꽁무니만을 쫓아온 것이었다.

  누군가 내 어깨 위로 손바닥을 얹었다.

  “왜 서 있어? 아저씨는 이제 산책하러 간다는데.”

  창밖으로 목줄을 매고 홀로 소나타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덕구가 보였다. 주인집은 신발 끈을 묶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허공을 멍하니 응시했다. 잠시 후 노인의 흰 머리통이 덕구에게로 다가갔다. 덕구가 내 쪽을 향해 컹 짖었다. 잠시간 흰자가 드러난 개의 눈과 시선이 마주친 느낌이었다. 나는 손을 내질러 명준의 턱을 갈기고 그의 멱살을 잡아 바닥으로 내던졌다. 명준이 크게 휘청이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서툰 주먹질에 손등이 욱신거렸다.

  “너 지금 뭐하자는 거야! 그냥 오락가락하는 거라고. 멀쩡할 때도 있다고!”

  “누가 너보고 아들 연기라도 하래? 아, 아파라.”

  명준이 얼굴을 부여잡으며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그가 주머니에서 세 봉의 약봉지를 꺼내. 허공에다 흩뿌렸다.

  “이것 봐. 약만 숨겨. 오늘치 약을 먹었는지 아닌지도 모르더라.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당연히 머리 약 아니겠어? 이것만 숨겨. 그러면 가만히 있어도 너한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거니까.”

  바닥에 떨어진 약봉지를 주워들었다. 반투명한 비닐 너머로 자그마한 알약들이 뭉쳐 있었다. 명준이 한숨을 깊게 내쉬더니 무릎을 꿇었다.

  “나 진짜 돈 필요해. 다 털어먹겠다는 것도 아니야. 진짜 딱 육백만, 어? 아들한테 그 정도도 안 해주겠어? 그것도 아니면 통장 같은 게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닐 거잖아. 어? 진짜 부탁 한 번만 하자. 너랑 나랑 평생 가져가는 비밀인 거야. 어? 너랑 나랑만. 너도, 너도 돈 필요하잖아. 니가 얼마를 해먹던지 나는 그거 모르는 거 할게. 내가 너한테만 이런 부탁하는 거 알잖냐.”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른 명준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처럼 울상이었다. 나는 명준의 입을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매달 말 시외버스를 타고 피부과에 다니는 돈은 어디서 나는 것이며, 주말마다 마시는 술값은 어디서 나는 것이고, 매번 바뀌는 시계는 또 매번 선물 받는 것이냐, 그의 말을 조목조목 따져 묻고 싶었다. 그중 진실은 단 하나였다. 내 선택이 그와 내가 평생 가져갈 비밀이 되리라는 것. 먼 훗날, 누군가 내게 노인의 안부를 묻는다면 나는 딴청을 피우고, 노인이 정신 말짱히 이삿짐 포장까지 도와줬다며 태연한 척하리라는 것. 참새의 안부를 묻는 반 애들에게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주간 쌀을 먹여 키우고 마로니에 숲으로 돌려보냈다며 떠벌리던 순간의 비참함이 생생했다. 명준이 내 눈치를 살피더니 스멀스멀 몸을 일으켰다.

  “나가자. 내가 저녁까지 책임질게.”

  명준의 손에는 곱게 접힌 오만 원권 두 장이 들려 있었다.

 

  명준을 뿌리치고 거리로 나서는 기분은 퍽 괜찮았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내게 눈짓하며 모종의 확신을 갈구했다. 마지막에 가서는 그러한 시도가 더욱 유난스러워져서 종업원들이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우리를 힐끔대기까지 했다. 하숙집에 다다른 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음마다 부스럭대던 약봉지를 세게 쥐었다. 강박적으로 만지작거린 탓에 동그란 약들이 미지근할 지경이었다. 화단 주변으로 늦저녁 바람이 버석한 흙먼지를 굴렸다. 참새의 무덤이 어제보다 훨씬 납작해 보였다. 허리를 비스듬히 숙이고 화단 모서리의 흙을 긁어모아 무덤 위로 쌓아 올린 뒤 단단하게 다졌다. 언젠가 노인의 상추는 나의 참새를 고르게 부수고 남김없이 빨아먹어 무성하게 자랄 것이다.

  현관에 들어섰을 때 노인은 막 저녁 식사를 끝낸 참이었다. 그는 빈 식기에 수돗물을 뿌리며 그의 아들을 맞이했다. 나는 신발을 벗는 동안 오늘치 약주머니가 빈 달력을 보았다.

  “오늘 약은 드셨어요?”

  노인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온순한 두 눈을 껌벅였다. 나는 달력을 가리키며 재차 물었다. 늙은이 특유의 몸짓으로 연약하게 흔들리던 그의 목이 스프링 인형처럼 크게 두어 번 끄덕거렸다.

  “그럼, 먹었다. 거기 달력 비어 있잖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집 안에서 여전히 좀약 냄새가 났다. 나는 천천히 주머니에서 약봉지를 꺼냈다. 

  “오늘 안 드셨네요. 여기 바닥에 떨어져 있어요.”

  나는 노인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주인집의 등허리가 서서히 굽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가 자줏빛 물컵을 홀짝이며 내게 손바닥을 펼쳤다.

  “찢어드릴까요?”

  봉지 모서리를 찢어 쭈글한 손바닥 위로 쌀알 같은 자그마한 약들을 떨어뜨렸다. 흰색 알약 셋이 그의 손가락 틈을 구르다 하나둘 멈췄다. 물을 머금은 주인집이 입술을 부리처럼 오므린 채 그 벌어진 틈으로 약을 한 알씩 밀어 넣었다. 그의 입꼬리에서부터 턱을 타고 침과 물이 섞인 액체가 미끈하게 흘렀다. 약봉지는 아직 둘이나 남아 있었다. 그 속에는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담겨있을 터였다. 참새의 마지막 숨과 함께 영영 흩어져버린 9살, 그때의 기쁨과 생명이, 다 늙어 굳어버린 그의 머릿속을 다시금 흔들어 깨울 것이었다. 추락한 새끼 참새도, 좀처럼 호감이 가지 않는 여자도, 명준도 더는 필요하지 않으리라. 등을 타고 차가운 땀이 흘렀다. 나는 끈적한 손을 허리춤에 문질러 닦고 노인의 입이 힘겹게 물과 약을 삼키는 순간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글 | 한태경(생명대 생명과학22)

일러스트 | 송민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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