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소설을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글로 엮었다고 소설이 되는 것이 아니며 잘된 소설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떤 일이든 잘하려면 배우고 익히는, 이른바 공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좋은 본보기는 그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전제된다. 소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본보기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찾아서 읽고 따라 해보는 과정을 통해 그에 못지않거나 그보다 진전된 성취를 하게 된다. 학생들이 어떤 소설을 본보기 삼아 소설 쓰기를 공부하는가, 라는 의문이 응모작들을 읽는 동안 사라지지 않아서 본보기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물론 이 글은 좋은 본보기의 소설을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고 그럴 만한 여유도 없으니 더 부연하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언해 둔다. 나쁜 본보기는 학습자를 잘못된 길로 이끈다. 

  18편의 응모작 중 상당수가 잘못 든 길에서 헤매는 양상을 나타내 본보기의 중요성을 떠올렸다. 소설답기는 하나 잘된 소설이 되기에는 미흡한 응모작들도 제외되었다. 부정확한 문장과 부적절한 진술, 구성상의 결함과 개연성 결여 등이 탈락의 이유였다. 그리고 남은 작품이 <매미들>, <지워진 필름>,  <기숙사 317호>, <영정사진 대소동>, <참새>였다. <매미들>은 매미 튀김을 먹고서 사람이 매미로 변한다는 설정이 이채로웠다. 그런 설정 자체가 문제 될 수 없다. 그러나 서사의 전개 과정에서 그 설정이 타당하게 유지되지 못했고 모순과 자가당착이 빈발하여 설득력을 획득하지 못했다. <지워진 필름>은 앨범에서 찾은 사진 몇 장을 단서로 할아버지의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이 흥미로울 수 있었다. 다만 추적이 너무 쉽게 성공하여 우연의 남발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고 가족애와 관련한 주제 의식은 상투적인 수준에 그쳤다. <기숙사 317호>는 어떤 부분들에서 문학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런 효과를 내는 것도 쉽지 않으므로 글쓴이의 남다른 솜씨로 인정할 만하다. 공연한 도입부와 느슨한 서사가 이 작품을 미완성의 상태로 머물게 했다. 장편 소설의 한 부분처럼 보였다. <영정사진 대소동>은 반려묘를 두고 벌어지는 두 친구 사이의 갈등을 흥미롭게 그렸다. 짧은 대화문과 간결한 서술을 통해 인물의 성격이 생생하게 살아났고 서사가 거침없이 질주했다. 친구 간의 갈등 옆에 부녀 간의 갈등을 배치한 구성 방식도 적절했다. 이 작품은 그런 미덕들을 지녔음에도 상대적으로 우수한 한 편이 선택되는 공모의 비정한 현실 앞에서 물러서야 했다. <참새>가 이 작품을 밀어내고 마지막까지 남았다. <참새>는 많이 써본 사람의 솜씨였다. 소설이 무엇이고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는 사람의 숙련된 기량이 작품 도처에서 묻어났다. 배경이 알차게 꾸며졌고 여러 인물들이 어울려 자아낸 서사는 풍성했다. 과거 회상을 꿈으로 처리한 부분이 문제가 되었으나 글쓴이의 저력을 믿기로 했다.

강헌국 고려대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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