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또는 공공의 영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정에서 형제간 또는 자매간 그리고 우리 집의 엄마 아빠 간 심지어는 사랑하는 연인 간에 공공의 영역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한 가정에 있어 부부의 경우는 우선 그(남자)와 그녀(아내)의 사적 영역이 각각 존재한다. 그러나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둘만의 합의 형성, 일정 부분 서로 지켜주고 침범하기 어려운 공동의 영역, 즉 공공의 영역이 일정 존재한다. 우리 사회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정을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해 부부간에 지켜야 할 상호 공적인 영역이 만약 무너진다면, 아마 원만한 가정은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부부관계를 넘어 가정 내 부모와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상호 일정 부분 합의 형성으로 지켜야 할 규범과 같은 공공의 영역이 존재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 가장 작은 공동체로서 합리적이고 행복한 가정이 지속 영위될 수 있을 것이다. 간혹 이러한 가정 내에서 공공의 영역이 무시되거나 침해되는 경우, 경찰이나 공권력이 개입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가정 내에도 공공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우리 인간은 개인으로서도 존재하지만, 가깝게는 동료,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일정한 방법에 의해 서로 합의를 형성하고, 개인의 영역과 그 이외의 영역 즉, 공적인 영역을 형성하고, 상호 조정하고, 규칙과 준거 기준을 마련해 가며 이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회적 존재이다. 이를 우리는 공공(公共)이라 정의한다. 공공은 원래 합의 형성, 즉 개인 또는 자신의 의사만으로 처리할 수 없는 영역으로, 자기와 타인과의 공동 의사로 형성한 규범과 기준을 함께 지키고, 공동의 의사로 상호 간의 행위를 다스리는 영역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공적 또는 공공의 원리를 어느 순간부터 관(官) 또는 정부의 역할 기능에 의해 독점해 버린 경향이 있다. 그래서 공공의 영역이라 할 때, 행정이나 정부가 관할하고 통치하는 영역으로 생각하기 일쑤다. 모든 사회문제를 정부에 의존하고 정부나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행정서비스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결과, 시민의식으로서의 공공성은 미성숙하고, 지역사회에 능동적 시민성은 위축되어 온 게 사실이다.
가정의 단위를 넘어 근린 지역사회를 보자. 요즘 산책하기 좋은 날씨이고 건강에도 모두 관심이 높아져 주택가 주변 근린공원이나 산책로를 걷는 시민들이 많다. 사람도 많은 반면, 반려동물을 동반한 시민들도 무척 많다. 그런데 한 번쯤 불편한 상황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여기서 공공의 영역은 무엇일까? 도심 사회를 보자,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 내리고 타기를 기다려주는 공적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 이러한 공적 영역이 허물어지고 “개체의 합리적 선택이 사회 전체의 합리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라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가 만연하게 되면, 우리 사회 공동체는 더욱 혼잡과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붐비는 도심 속에서 지하철 안이나, 거리에서 살짝 어깨나 팔이 다른 사람에게 스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사회, 이는 타인과의 공적 영역을 상호 존중하는 행위다. 다수의 동료, 선후배가 같이하는 대학 강의실도 마찬가지다.
최근 길에서 어깨가 부딪혔다고 흉기를 휘두른 것이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개인 수준이든 가정 수준이든 사회 일원으로서 서로 지켜야 할 공공의 영역은 항상 존재한다. 정부에 의존한 공공성 확보가 아닌 우리 사회 개개 구성원에 의한 공공성 확보가 바람직한 선진사회이다. 앞으로 AI 로봇과 함께해야 할 미래 사회에 우리 인간은 다시 한번 새로운 규범과 준거기준과 같은 공공의 영역을 다시 생각하고 합의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김상봉 공정대 교수·정부행정학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