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에 입학한 2004년도는 불과 16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요즘과 비교하면 꽤 큰 차이가 느껴진다. 2004년도는 Facebook이 막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고 (그 당시는 대학생만 계정을 만들 수 있어서 친구들과 모여서 새로운 계정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iPhone보다는 iPod(요즘 학생들은 iPod이 뭔지 알까 모르겠다)을 더 많이 들고 다녔고, 최신 핸드폰의 기준은 컬러화면과 벨 소리(32화음인지 64화음인지)였으며, 싸이월드와 도토리가 더 중요하던 시절이었다. 요즘 학생들이 들으면 나를
우리나라 민법상 만 19세가 지나면 성인이 된다. 만 19세를 전후로 하여 투표권을 포함한 여러 법적 권리를 얻게 되고, 반대급부로 민·형사적 책임이 가중된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법적인 권리와 의무가 생기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작년에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아직 ‘법적 성인’으로서 살아온 날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작년 한 해 동안 대학에서 경험한 것들을 대학 입학 이전의 삶과 비교를 하는 방식으로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나열해보려 한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가장 달라진 것은 여러 활동
2013년 12월 31일 23시 59분. 3...2...1 “해피 뉴 이어!” 그렇게 나는 성인이 됐다. 나이의 앞자리가 2로 바뀌었지만 내 생활이나 마음가짐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술을 마시거나 금융거래를 하는 등 어른들의 일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하면서 어른이 된 기분을 만끽하기도 했지만, 20대 초반의 나는 그저 알코올에 중독된 꼬맹이였을 뿐이다. 날씨가 따뜻해진다. 따뜻한 하늘이 얼고, 얼었던 하늘이 다시 녹기를 반복하더니 어느새 스물여섯이 됐다. 고려대학교 최후의 신입생일 줄 알았던 나는 어느새 화석이 됐다. 하늘이 얼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초기 우리나라는 상당수 국가로부터 입국금지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K-방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모범 방역 국가가 되고 있다. 따가운 눈총이 뜨거운 찬사로 바뀌는 데 불과 두어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 어지러울 정도다. 찬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유력 변호사는 우리나라가 방역에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를 소홀히 하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비판했다. 확진자의 이동경로 등 위치정보를 공개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워낙 빠른 전염성으로
고려대 학생사회가 14년 만에 서울총학 없이 1년을 보내게 됐다. 작년 11월 선거는 투표율이 22%에 그쳐 무산됐다. 올 4월 재선거에 단독 출마한 ‘시선’ 선본은 68%의 지지(투표율 34%)를 얻으며 당선 문턱까지 갔으나, 선거세칙 위반으로 막판에 후보자격을 박탈당했다. 게다가 선관위는 규정에 얽매여 사회상식에 비껴가는 결정을 내렸으니, 선거 내내 안타까움이 남았다. 이번 선거는 이른바 ‘학생회 하는 사람들’의 역량과 리더십이 얼마나 부족한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학생들은 지금까지의 서울총학과 후보자들의 공약을 보면서
새 직장에 입사한 지 한 달이 됐다. 일명 ‘허니문’ 시기가 끝나니 이내 후회와 괴로움이 밀려왔다. ‘이런 게 싫어 퇴사했는데’ 싶어 입술이 저절로 깨물어졌다. 그러다 우연히 단체 카톡방에서 공모사업을 발견했다. 마감일은 이틀 후. 구미가 당겼지만, 시간이 촉박해 지원할지 말지 고민이 됐다. 평소 같이 이것저것 해보자고 얘기했던 S에게 연락했다. S가 같이하겠다고 하면 지원하고, 아니면 말 심산이었다. 의외로 S는 흔쾌히 승낙했고, 당장 그날 만나기로 했다. 사실 S를 비롯한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구상해둔 아이템이 있었다. 네 사
최근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지구촌이 들끓고 있습니다. 혹시 자기의 환경을 파괴하는 생명체가 바이러스와 인간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2002~2003년에 중국을 덮친 사스와 2012~2015년에 중동과 한 국을 휩쓴 메르스도 COVID19(Corona Virus Disease19)와 같이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것입니다. 코로나(corona, 왕관)는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스파이크 형태의 단백질이 왕관의 모양과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COVID19는 막강한 전염력을 바탕으로 지구를 초토화하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
오인교 전 고대신문 만화기자 (국어교육과 90학번)
고대가족 여러분, 반갑습니다. 35만 교우들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 고려대학교 개교 115주년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이지만, 세계 어느 곳에 있든, 우리 고대인들은 모교를 향한 사랑과 긍지를 간직하며 이날을 기념하고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고려대학교 115년 역사는 곧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역사이며, 고려대학교가 배출한 35만 교우들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모교는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현실을 이겨내고, 분단의 비극 속에서도 꿋꿋이 겨레의 미래를 이끌 지성인을 양성하였습니다. 마침
생동하는 봄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한 오늘, 우리 고려대학교는 개교 115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날을 맞았습니다. 고대신문 독자 여러분과 함께, 그리고 국내외 각 분야에서 고대의 이름을 빛내고 있는 모든 고대 가족들과 함께 오늘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해마다 봄 신학기가 되면 캠퍼스는 계절의 아름다움과 함께 우리 학생들의 젊음과 활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정상적인 개강이 연기되어 한산한 캠퍼스를 보면서, 봄이 왔지만 마치 봄이 오지 않은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활기를 잃은 캠퍼스가 주는 마음 한 켠
지축을 박차며 포효하는 호랑이의 기상을 가진 35만 교우 여러분, 고려대학교 개교 115주년을 기뻐하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민족의 선각자들이 교육구국 정신으로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인 보성전문학교를 설립한 이래 고려대학교는 민족의 대학으로 겨레와 함께 해왔습니다. 민족의 등불로 구한말·일제강점기의 어둠을 밝혔으며, 시대의 양심으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4·19혁명에 앞장서며 지성인의 소임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하여 더이상 절대 빈곤이나 독재권력으로부터 고통받지
고대신문의 오랜 독자로서 매번 고대신문을 pdf 판으로 읽어왔다. 글과 사진이 게재된 순서대로 위에서부터 한 방향으로만 읽게 되는 온라인 기사와 달리 판이 주는 그만의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pdf로 접한 1897호는 일차적으로 ‘글자로 빼곡하다’라는 인상을 줬다. 보도면부터 이어지는 사회·연재·인터뷰면 까지 모두 글로 가득 차 있어 기사를 읽기도 전에 글자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특히 2면의 경우 한 면에 기사가 5개나 실려있음에도 구획선이 불분명해 기사 하나하나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코로나19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