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우리가 사는 시대의 미디어를 가리켜 시청각매체라고들 한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둘러싼 대부분의 매체는 시각과 청각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흔히 오감이라고 부르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다섯 가지 감각 중 본격적으로 매체 활용에 쓰이는 감각은 현재까지는 주로 시각과 청각 두 개에 머무른다. 시청각 미디어의 시대는 비단 요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초의 문자나 입을 통한 음성 언어들로부터 시작된 미디어의 역사는 대부분 시청각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이른바 근대 미디어라 부르는 사진이나 동영상 기술의 발전도 시
최호근(문과대 사학과) 교수는 최루탄이 어지러이 떨어지던 1987년 서울의 하늘을 기억한다. 30년도 더 지났지만, 어제 일 같다. 매캐한 최루가스에 쏟은 눈물, 콧물, 정신없는 와중에 뒤엉키는 동기들, 매섭게 휘둘리는 경찰의 진압봉. 잊고 싶지만,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다. “오늘 강연을 준비하다 (이한열 열사) 영결식 장면을 다시 봤는데, 또 눈물이 나더군요.” 한때 사실로 인정되지도 못했던 그 시절 기억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이 됐다. 매년 6월이 되면 그 시절을 장소로, 행사로, 노래로 추억한다. 이른바 ‘기념하는 사
정말박철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천 년 후 열어볼 타임캡슐을 제작했다. 다양한 목소리가 미래를 향해 던져졌다.그중에서도 노숙자 맥 그레인이 던진 한마디는 이거였다. 얘들아, 너희도 사랑을 하니너희도 누군가가 그립고 마음이 아프니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가진 한 가지 감정을 꼽으라면, 나는 감히 그리움이라 말하고 싶다. 그리움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자 사람의 또 다른 얼굴이다. 인간의 기준은 언제나 과거에 있기에 우리의 그리움 또한 거스를 수 없는 인세의 법칙이어서, 오늘의 나 또한 이렇게 그리움을 써 내려간다. 덧없는 시간의 세례
나: A야. 기왕 양 팔에 용으로 문신했으니 어쩔 수 없네. 우리 졸업하기 전까지 색칠은 하지 말자. 나중에 너 분명 후회할거야. 학생 A: 글쎄요. 전 후회 안 해요. 이제 가볼게요. 나: 그래. 담배피지 말고 곧장 교실로 올라가. 내가 교사가 되기 전까진 학교에서 이런 대화를 하게 될 줄 몰랐다. 교육학 책에는 이런 상황을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깐. 나는 모르는 것이 많았다. 특성화고 교사로서 매년 고등학교 입시철이 되면 중학교를 돌며 학교 홍보를 다녀야 됨을 몰랐다. 우리 학교에 학생 좀 보내주세요. 출산율 저하로 학생 수 자체
“그냥 잠들었다가 못 일어났으면 좋겠어.” 말끝이 조금 떨렸다. 죽고 싶단 소리가 버릇인 녀석이지만, 여느 때랑은 다른 억양이었다. 술이 단번에 깨는 듯했다. “….” 적당한 대꾸는 떠오르지 않았다. 허투루 받아치기엔 던져진 공이 무거웠다. 긴 정적이었다. “미안. 그냥 해본 소리야.” 녀석이 웃으며 말했다. 웃음이 퍽 싱거웠다. 껍데기만 남은 일상의 공허함.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주는 무력감. 눈을 뜨고 마주한 천장이, 삼켜야 하는 밥알이 넌더리나는 순간들. 삶은 때로 지독하다. 겨우 살아낸 하루 끝에서 내일이 줄 고통과 행복을
젊은 사람들은 신문을 읽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당연하게 여겨져 왔다. 온라인 중심으로 콘텐트 이용 환경이 변화하면서 가장 먼저 관찰된 현상 중 하나는 종이신문을 읽는 사람들이 감소하고 특히 밀레니얼 이후 젊은 세대들은 뉴스를 읽거나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를 증명하는 조사 자료도 많지만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실제로 뉴스에 관심이 별로 없고 정기적으로 읽거나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당혹스러웠다. 미디어를 공부하는 학생들도 미디어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이며 세상을 알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뉴스를 가까이하지 않는다고
“70조 은행이 1조 7000억에 날라갔다”, “대한민국을 뒤흔들 금융범죄 실화극”,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의 예고편에 나오는 문구이다. 이에 여론은 들끓고,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참여연대’ 등은 11월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론스타 먹튀 사건 진실-책임 규명해야”한다고 주창했다. 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픽션이라는 면책성 부인을 하는 화면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그러나 ‘은행의 자산’이란 대출로 나가 있는 고객의 예금이 대부분이라는 설명은 부족하여, 다수 일반인들은 68조
○…하늘 맑은 겨울밤엔 오리온자리를 볼 수 있다. 캠퍼스에서도 보인다. 커다란 별 네 개가 윗변이 더 긴 사다리꼴을 이룬다. 왼쪽 위 꼭짓점은 1등성 베텔게우스다. 위에 있는 다른 별들과 이어진다. 오리온의 팔 하나를 완성한다. 몽둥이를 든 형상이다. 오른쪽 위 꼭짓점도 오리온의 어깨다. 방패를 든 반대 팔로 뻗어 나간다. 이제 다리를 그릴 차례다. 별 몇 개만 더 찾으면 된다. 사다리꼴 짧은 변 아래 1등성 리겔이 방향을 잡아줄 것이다. 오리온자리 완성이다. 별자리를 그리려면 하늘을 봐야 한다. 오래, 올려봐야 한다. ○…고려대역
2019년 고려대를 강타한 학교본부의 회계비리 사건과 조국 사태는 학생사회를 아우를 수 있는 학생대표자의 필요성을 웅변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학생 대표자 선출을 위한 선거시즌이 돌아왔다. 지난주 세종캠에서는 ‘한뜻’ 선본이 제33대 세종총학생회장단으로 당선됐고, 투표를 앞둔 서울캠에서는 두 선본의 합동공청회가 열렸다. 공약을 살펴보면 두 선본 모두 ‘만능해결사’를 지향하는 듯하다. 등록금과 주거문제 등 과거 여러 총학에서 끝내 해결하지 못한 고질적인 문제부터, 올해 학내에서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자유정의진리 수업의 개선과 대동
고대신문 1889호의 1면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어라, 사진이 없다. 으레 사진이 들어가는 자리에는 고려대 다양성위원회가 내놓은 다양성 분석 지표가 그래픽으로 정리돼 있었다. 꽤 참신한 시도였다. 분석 결과를 크게 세 부문(젠더·장애·경제력)으로 나눠 핵심적인 내용만 간추린 것도 인상적이었다. 지표가 드러내는 문제의식을 어떻게 시각화할지 고민한 흔적이 묻어나는 구성이었다. 하지만 헤드라인이 다소 밋밋했다. 독자가 신문을 집어 드는 유인 중 하나인 1면 사진을 포기한 상황에서 헤드라인은 더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했어야 한다고 본다.
“대머리가 걸어 다닐 수 있나요? ‘두발’이 없는데.”“죄송한데 대머리도 의견을 낼 수 있나요? 자기 머리카락도 못 내밀면서 의견을 낸다는 게 좀 말이 안 되지 않나요?”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대머리 조롱이 유행이다. 탈모인들이 고민을 나누는 커뮤니티에 그들을 놀리는 글이 올라오면서 이 유행이 시작됐다. 사실 해당 커뮤니티에서 ‘대머리 조롱’은 그저 ‘대머리 드립’ 정도로 여겨진다. 조롱의 대상인 탈모인들도 이 조롱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탈모인이 기분 나쁜 척 농담 투의 댓글을 달면 “머리는 안 나면서 화는 나나 보네요.” 같은 반응
고등학생 무렵, 가족과 백화점 나들이를 갈 때면 완구 코너 앞에서 걸음이 느려지곤 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형형색색의 블럭, 실제 대상을 그대로 압축해 놓은 듯한 프라모델, 레일 위를 빠르게 달리는 RC카까지. 그중에서도 가장 동경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던 것은 인기 캐릭터의 거대한 모형이었다. 10살은 어린 꼬마들과 함께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장난감 구경에 빠지다 보면, “다 큰 놈이 애들하고 뭐하고 있냐”는 부모님의 핀잔을 듣고는 했다. 시간이 흘러 군복무 시절, 부대에서 단체로 지역 축제를 관람하던 때였다. 걸그룹의 화려한 무대
지식의 상아탑. 대학교의 상징이었던 문구. 하지만 좀 더 많은 지식을 탐구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이 별칭은 이제 쓰이지 않는다. 대학교는 이제 좀 더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한 비싼 포장지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학교의 본래 목적 중 지식의 탐구는 현재 구글과 유튜브가 대신하고 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구글에 검색을 하거나 유튜브에 검색을 해서 나오는 동영상을 본다. 이게 가장 빠르게 정보를 얻는 방법일 것이다. 실제로 국회도서관이나 외국의 대학에 가야만 볼 수 있던 논문들이 구글에 검색하면 나오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
고려대는 온라인을 통해서 누구나, 어디서나, 원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온라인 공개강좌’를 열어 전통적 방식의 교수 방법에 대한 전환과 인기강좌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려 하고 있다. 또한, 고려대는 2015년 ‘열린 고등교육 체제를 통한 대학교육 혁신’을 위한 한국형 온라인 교육강좌(K-MOOC)사업에 시범대학으로 선정되어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명순구 교수님의 ‘민법’은 약 700여 명이 듣는 대표적인 MOOC(Massive Online Open Course) 중 하나다. 강의를 수강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수강 전쟁’ 없이 누
크론병은 주로 젊은 층에서 나타나는 위장관의 만성 염증성 질환으로 식도부터 항문까지 소화기관 어느 부분에도 생길 수 있다. 한국의 식습관이 서구화되며 크론병 발병률도 증가하는 추세다. 2015년 국내 연구에 따르면 크론병 환자 추정치는 1만 6300명이며, 10~20대에서 발생률이 가장 높다. - 장염 같은 소화기 질환과의 차이는 “장염은 일과성 염증 질환으로 대부분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 촉발되며 시간이 지나거나 적절한 치료를 하면 완전히 회복되죠. 크론병은 여러 유전적 취약성, 식습관 등 외부적 요인 없이도 면
근대미학의 역사는 미메시스(mimesis)의 원리를 극대화하는 리얼리즘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실제 세계를 모방하고 반영하려는 기획을 추구한 리얼리즘 미학은, 역사의 흐름 자체를 무화시키면서 펼쳐진 상상, 공상, 환상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타자화하고 주변화하였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리얼리티를 새롭게 해석하고 접근하려는 태도가 대두하면서 독서 시장에는 이른바 판타지 열풍이 불어 닥쳤다. 그동안 ‘공상’ 정도로 치부되었던 미학적 경향이 새로운 리얼리티를 담아내는 표현 방법으로 들어온 것이다. 톨킨(1892~1973)의 사례
우리는 어릴 적부터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구분하고, 오직 순수문학만이 가치 있는 문학으로서 취급받는 사회 속에서 자라왔다. 사회는 우리에게 흥미 위주의 소설은 무가치한 소비 문학에 지나지 않으며, 당대의 시대상이나 인간 본연의 조건과 같은 가치 있는 것들을 그려낸 ‘순수’문학만이 향유할 만한 문학이라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정말로 흥미 위주의 소설은 무가치한가? 혹은, 정말로 장르 문학에는 가치 있는 것들이 담겨있지 않은가? SF&F 문학의 거장 어슐러 K 르 귄은, 자신의 에세이를 통해 소설의 목적은 사회 속의 개인에 초점을 맞춰
고대인의 든든한 발, 6호선 전철이 어느 날 다양한 작품을 싣고 달려왔다. 2001년 당시 6호선 전철 내부의 디지털 아트 전시 모습이다. 작품이 주렁주렁 열린 넝쿨 사이의 저 통로 문 너머 신비한 푸른 빛. 다음 칸은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두경빈 기자 hayab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