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나 제재는 원하지 않는다. 졸업을 앞둬 실질적인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국어국문학과 내 인권침해사건에 대한 대응의 건설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 사건이 잊히지 않았으면 한다.” (국어국문학과 성평등대책위원회 입장문에서) 지난 26일, 2017년 국어국문학과 내 인권침해 사건이 본교 커뮤니티를 통해 다시 공론화됐다. 익명의 국어국문학과 소속 학생에 의해서다. 2016년에 발생한 사건이 다시 거론되자, 피해자 A씨는 학생회 차원의 징계가 진행된 이후에도 가해자들에 의해 2차 피해를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2017년 당시, 피해
○…세상이 내려준 신체 기관. 눈 있고, 귀 있고, 코 있고, 입 있고. 그리고 마스크. 마스크 쓴지 넉 달도 넘었으니 이쯤 되면 신체의 일부라 생각해도 되지 않겠소. 원래 달려있던 것들은 뚫려있었소. 눈에는 눈물이 흘렀고, 귀는 뻥 뚫려서 시시콜콜 이야기 다 들었소. 신문(新聞) 만드는 작자들도 그렇소. 콧물 찡하다가도 입에선 스트레이트 형식의 뻣뻣한 소리만 튀어나오는 사람들.○…마스크는 틀어막는 재질. 일단 바이러스를 막는 건 의심 않겠소. 근데, 그동안 뚫려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기관을 틀어막았소. 입을 틀어막으니, 미소 띤 얼
○…세포분열, 세포분열. 우리가 숨 쉬고, 키 크고, 살찌는 건 다 세포들이 힘쓴 탓이오. 앉으나 누우나 열심히 포동포동 일하는 거 보니 분명 내 핏줄은 아닐 게외다. 친자(親子)가 아니길 바라는 엉성한 과제들도 중간과 기말을 사이에 둔 요맘때 출생이 잦소. 과제분열, 시험분열. 결국엔 멘탈분열. ○…분열의 끝은 역설적이게도 성장이오. 갈라지면 끝일 줄 알았던 인생도, 곱절로 늘어나는 경험 덕에 많은 걸 배웠소. 팀플분열로 인정(人情)의 무의미를, 학점분열로 인생(人生)의 무자비를 새삼 깨닫소. 성장을 했다면, 다음 수강신청은 반드
○…화려한 조명이 감싸도, 안 되는 건 안 되오. 온라인 중간고사 중 부정행위를 목도했다는 이들 여럿 보았소. 화면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 교수님을 속였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꼬리가 잡힐 게 자명하오. 기말고사는 출석 시험.○…허나, 부정행위만 안 했다지 컴퓨터 모니터에 비친 자신을 보며 부끄럽지 않은 자 누가 있겠소. 교수님 눈앞이 아닌 세상 그 어떤 곳에서도 딴짓은 만연하오. 지금도 하드디스크 깊숙이 녹화본 쌓아두고 놀러 간 거 아니오? 과제를 한들 공부 머리를 반쯤 내려놓고 삐죽빼죽 완성한 결과가 신통할 리 없소. 모
○…지난 주 내내 궂은 비가 연일 내렸소.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이번엔 얄궂은 흥(興)이 술래요. 고막을 찢는 음악 소리와 어두운 조명, 일면식도 없는 이와 애끓는 열정만 나눴지, 역병까지 주고받았을 줄 누가 아리오. “어디서 오셨어요? 혼자 왔어요?”…“선별진료소에서 만납시다.”○…그렇게 다시 만난 그들. 근데 이걸 어쩌나. 부모, 친구, 직장동료까지 데려와 버렸네. 일단 국민적 꿀밤 한 대 맞으시오. 맞았는데, 어째 꿀밤 맞은 얼굴이 생각보다 크게 부었소. 풍선처럼 팅팅 부어 동네방네 흔들리는데, 부기가
2004년, 최우진 교수는 국방부검찰단 소속 군 검사였다. 당시 군무원의 비리 사건을 맡아 재판에 회부시켰다. 1심에서 유죄로 판결났지만, 뇌물 추징 과정에 재판부의 오판이 있었다. “양형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추징 금액에서 오판이 있어서 항소해야 했습니다.” 피고인을 앉혀두고 상황을 설명했다. 일부 뇌물의 추징이 재판 과정에서 빠져서 항소해야 한다고. 피고인은 최 교수에게 항소를 포기하고 대신 ‘그 돈을 가져라’라고 답했다. “오해가 커질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화를 내며 내보냈지만 당황했죠.” 문제를 해결한 건 피고인 측 변호인
○…5월 4일자 개교기념호가 지나고 나면 본지의 지령이 1900호가 되오, 나름 상징적인 호요. 중간고사 지나 5월 18일에 발행되오. 신문 만드는 호랑이들에게 신문의 얼굴인 1면 준비는 꽤나 고약해서, 미리 고민을 좀 해야 하오. 근데, 도통 방도가 없소. 솔직히 밝히겠소. 한 치 앞도 모르오. ○…가설을 세우면 달라질까. [가설 1] 대면 강의가 시작됐다. 그럼 필시 1면 기사와 사진은 학교에 돌아온 교수와 학생들로 도배가 될 테요. 중간고사 과제 하느라 애먹었단 호랑이 울음소리는 2면 정도에 넣읍시다. 아, 떴다 분수가 언제
○…경애하는 견우(牽牛)님께. 아무개 과목을 수강하는 직녀(織女)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금일 업로드된 녹화강의를 듣던 도중 잠깐 강의 연결이 끊어지는 불상사(不祥事)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다시 들어갔는데, 혹여나 출석에 문제가 생겼나 궁금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네트워크 오류가 확실합니다….○…이번에 보내면 열 번째. 교수를 향한 외로운 세레나데. 나는 그대를 보지만, 그대는 나를 보지 못하니. 불안과 염려로 아로새긴 편지를 고이 접어 보내오. 오작교(烏鵲橋) 없인 얼굴 마주할 길 없는 견우와 직녀. 깍. 까막까치도 부실하오. 칠월
○…4월 1일 만우절. 우려하던 단체 ‘중짜’는 못 봤소. 파릇하게 대기하던 잔디들에겐 머쓱한 일. 좌측 한 잔디는 이렇게 말했소. “짜장면 먹고 싶었는데.” 그러자 맞은 편 잔디가 가로되, “교복 입은 자들의 횡포를 잊었는가. 꼿꼿이 서 있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농(弄)이오. 아니지. 그치지 않는 바람에 같이 나부끼다 들었는지도.○…젊음, 기력이 이리도 하찮을 때가 없소. 발발거리고, 동동대고, 벚꽃을 만끽하고. 요즘 세상은 이를 민폐(民弊)라 부르오. 한때는 꿈꿔라, 미래를 그리라 말하지 않았소. 호시절(好時節)의 허풍
○…숨 막히는 정정 경쟁을 뚫고 얻어낸 수업. 꼿꼿이 모니터를 세우고 척추에 기합도 넣었소. 참석자 리스트에 오른 낯선 이름을 본 교수, 운을 떼는데. 녹화해 놓은 강의 다 듣고 과제 제출에 정진하라는 전언. 온라인시대 정정(訂正)의 단상이오. ○…몰랐다고 웃으며 넘어간다. 이젠 어림도 없는 일. 정정으로 부렸던 며칠간의 요행, 썩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소. 흐붓한 봄 마실에 추억 없는 건 아니나, 모니터 앞까지 달려온 온라인 호랑이 선생님에겐 예의를 갖춰야 하지 않겠소. ○…정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는 모든 것. 인류(人類)가 온라인
○…교수를 마주했던가 기억도 채 안 나는 시절. 묵묵한 호랑이는 표정으로 말했소. 그 중에서도 눈빛을 꽤 많이 의지하오. 졸린 눈빛에 수업시간이 줄고, 손이라도 번쩍 들면 시험 날짜가 정해졌소. 얼굴조차 못 보고 수업 듣는 작금의 상황으론 전설 같은 이야기요.○…이젠 표현해야 하오. 마이크 잡음에 음성은 접어두더라도, 어째 손을 써야 하지 않겠소. 제일 쉬운 방법은 수업이 끝나기 전 채팅창에 감사하다 한 줄 읊는 거요. 그리도 쉬운 말에 교수는 혼자 있지 않음을 느끼오.○…일부 얼리어답터 호랑이들은 교수와의 채팅을 즐기기도 하오.
○…사회적 거리 두기란 말을 내 처음 들어봤소. 이 한 마디에 새 학기면 날마다 들어찼던 행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오. 화정(化汀)의 높이에도 무너지지 않던 어깨동무도 단번에 풀어지고, 목덜미도 보송보송하오. 영혼만 남아있는 새내기 호랑이여, 그대들은 원래 지축을 박차고 포효했소. 족보 끊긴 전통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기억으로 남을까 저어되오.○…발톱이 가렵지 않소? 수업도 집에 콕 박혀 들어야 하는 마당에. 발톱이 많이 가려웠던 호형(虎兄)은 애꿎은 커피와 설탕을 몇백 번이고 저어 달고나 커피를 만들어 먹소.기행이오. 역
○…계절학기도 끝나고, 학교를 어스름히 맴돌던 호랑이들이 고향 찾아 떠났소. 발 디딜 틈 없던 정경대 후문도 잠시나마 한산하오. 금번 학기에 뜻 없는 이는 아주 방을 빼서 나가는데, 계약기간에 발목 잡힌 호랑이들은 울상이오. 약속이니 지켜야 하면서도 하릴없이 나가는 방세에 울고. 거의 호구(虎口, 매우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소. 더 가면 불면호구(不免虎口, 위험을 면치 못함)요. ○…그럴 땐 호구지책(糊口之策)이라도 펴야 하오. 우리의 나침반을 자처한 학내 커뮤니티에 ‘복덕방(福德房)’이라는 게시판이 있소. 이미 수백 수천 호랑이들
최호근(문과대 사학과) 교수는 최루탄이 어지러이 떨어지던 1987년 서울의 하늘을 기억한다. 30년도 더 지났지만, 어제 일 같다. 매캐한 최루가스에 쏟은 눈물, 콧물, 정신없는 와중에 뒤엉키는 동기들, 매섭게 휘둘리는 경찰의 진압봉. 잊고 싶지만,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다. “오늘 강연을 준비하다 (이한열 열사) 영결식 장면을 다시 봤는데, 또 눈물이 나더군요.” 한때 사실로 인정되지도 못했던 그 시절 기억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이 됐다. 매년 6월이 되면 그 시절을 장소로, 행사로, 노래로 추억한다. 이른바 ‘기념하는 사
가야사 복원사업으로 가야사를 체계적으로 규명할 기회는 열렸지만, 그동안 가야사 연구에 어려움을 겪었던 연구자들의 고민은 여전하다. 삼국에 비해 역사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사료도 현저히 부족한 탓에 일정한 한계에 부딪혀왔다. 학계 간 교류의 부족과 연구인력 양성의 문제는 가야사 규명의 존속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삼국’에 소외되고 사료도 부족해 가야사 연구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에 비해 뒤처진 것은 문헌, 유물 등의 사료(史料)가 부족해서다. 가야는 삼국과 달리 중앙집권화된 정치체를 이루지 못하고 멸
한반도에 잊혀진 역사가 있다. 6세기 중반까지 철을 이용한 해상교역으로 위용을 떨쳤지만, 삼국에 가려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가야의 역사다.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한 가야사 연구가 최근 대통령의 국정과제 지시, 지자체의 합심으로 어느 때보다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영호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사업’이라는 대통령의 제안과 함께, 가야문화권으로 여겨지는 영남지역부터 호남 일부까지 지자체 중심으로 가야사 연구와 복원사업이 급물살을 탔다. 최대 규모의 복원사업이지만, 학계 연구자들은 성급하게 추진되면 ‘복원’이 아닌 역사를 ‘왜곡’하는 결과
민간 아카이브가 확장되는 상황에서 퀴어, 장애인 등 공동체별로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노력 중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도 그 가해 여부를 두고 일본 정부의 왜곡이 이어지면서, 기록의 필요성이 높아지자 최근 여러 아카이브가 등장하고 있다. 공공기관인 서울기록원(원장=조영삼)도 그 흐름에 동참했다.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정진성 연구팀(정진성 연구팀)이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일본군 ‘위안부’ 디지털 아카이브(‘위안부’ 아카이브)를 구축한 것이다. 지난달 25일에는 아카이브 구축 현황을 소개하고 개선안을 고민하는 '일본군‘위
우리가 과거로 가지 않고도 인류의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건 그것들이 기록으로 남아있어서다. 사람들은 기록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간접 경험하며, 현재의 삶을 후대에 남길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기록이 국가, 권력 중심으로 쓰여져 왔다면, 시대적 변화에 따라 시민들이 직접 기록활동에 뛰어들고 있다. 민간에서 직접 기록을 수집하고 이를 공유하며 그들의 기억과 일상을 역사에 새기려 하는 상황이다. 권력에서 시민의 편이 된 기록 기록은 한 사회가 남긴 경험이나 지식에 대한 유형(有形)의 증거다. 개인이 일상적으로 쓰는 일기
정릉 주민들은 정릉을 한번 살면 빠져나가기 어려운 정 많은 동네라 소개한다. 세월의 풍파에도 주민들과 함께 나이 든 정릉엔 옛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정릉의 마을 기록가들이 열심히 마을을 돌아다니며 기록한 우리 삶의 단면들을 소개한다. #1. 대성이발관 점점 이발관을 찾기 어려워지는 시대지만, 정릉엔 긴 세월 동안 꿋꿋하게 동네를 지키고 있는 이발소가 여럿 남아있다. 대성이발관은 개업한 지 30년 된 고참 이발소다. 경력 54년 차 이발사가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게 관리하며 손님을 맞고 있다. 마을의 이발소들을 찾아다니
한 손엔 카메라, 다른 손엔 노트 한 권. 마을 곳곳을 뛰어다니며 마을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이들이 있다. 서울시 곳곳에서는 민간 아카이브의 한 흐름으로 마을의 장소에 담긴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는 ‘마을기록’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토박이들이 많은 동네 정릉(貞陵)에서도 많은 주민이 ‘마을기록가’가 돼 기록 활동에 나서고 있다. 주민이 만들어낸 마을기록 민간 아카이브로서 마을기록은 공공기록에서 지금까지 다루지 않았던 마을의 역사, 장소, 일상을 기록하는 활동이다.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쉬운 마을의 구석구석에 대해 마을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