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고대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 고려대학교는 제117회 학위수여식을 거행합니다. 한국 근현대사를 환하게 밝혀온 지성의 광장이자 학문의 전당인 우리 고려대학교가 정성을 다해 길러낸 6천여명의 졸업생이 새롭게 사회로 진출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고 감격스럽게 생각합니다. 먼저, 오늘 영광스러운 학위증서를 받고 이제 새로운 삶의 출발선에 선 6천여 졸업생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아울러 우리 졸업생 한 명 한 명을 세계 최고의 지성과 훌륭한 품성을 갖춘 인재로 길러주신 고려대학교의 교수님들, 그리고 자녀가 고려대에 재
“작은 학과가 살아남기 위해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판단했죠.” 한두봉 교수는 G-class(글로벌수업) 도입, EKA-FREE 기획 등 ‘작은 학과’의 세계화와 학생들의 시야 확대를 위해 힘썼다. 1994년 고려대 교수로 부임해 식품자원경제학과와 30년을 함께한 한 교수는 지난해부터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으로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격변기 속 대학 시절 농업이 한국 사회의 큰 축이었던 1970년대의 끝자락, 한 교수는 인간에게 필수적 요소인 농산물을 공부하고자 고려대 농업경제학과(현 식품자원경제학과)에 입학했다. “197
송민제 전문기자
제117회 학위수여식이 23일 오전 10시 서울캠퍼스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이번 학위수여식에서는 학부 3737명과 대학원 2275명을 합쳐 총 6012명이 학위를 받는다. 대학원에선 1888명이 석사학위를, 387명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번 행사에는 곽노정(재료공학과 84학번) SK하이닉스 사장이 참여해 졸업생에게 축사를 전한다. 모든 행사는 본교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다. 졸업증서는 서울캠퍼스 학부생은 23일부터 단과대학 행정실에서, 일반대학원 학생은 23일부터 3월 29일까지 소속학과 행정실에서 받
성균관대 로스쿨에 진학하는 김윤지 씨는 알찬 대학 생활을 보냈다고 자평했다. 논리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했던 그는 본교 입학 후 토론 동아리 ‘고란도란’에 가입했다. 전국 토론대회 1등을 노렸지만 10번의 대회 출전에도 성과를 거두기 쉽지 않았다. 토론의 매력을 깨달은 2021년, ‘제2회 한반도 평화공감 온라인 토론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논의의 전제를 상대와 합의한 후, 의견을 교환하고 발전시키는 토론에 애정이 커요. 승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 우승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외교관이 오랜 꿈이었던 김 씨는 2학년 때 국
대학에서 리더십이 무엇인지 배우고 싶었던 이원준 씨는 고려대 입학 후 봉사활동과 학생군사교육단(ROTC) 훈련에 열중했다. 그는 자신의 대학 4년을 ‘청춘영화’라 표현한다. “저에게 고려대는 청춘영화입니다. 많은 경험을 한 곳이라, 지난날을 떠올리면 아련해요.” 이원준 씨는 중학생 때 필리핀 학생에게 한글을 가르친 경험을 살려 봉사활동에 뛰어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2021년 세종사회봉사단에 가입해 1년간 20회 이상 봉사했다. 독거노인 봉사 프로그램을 기획해 어르신의 말동무를 하기도 했다. “할머니께서 ‘가족 없이 홀로
“외교나 교수생활이나 다 똑같더라고요. 인간관계는 결국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에게 남다른 애정을 가진 허승철 교수가 28년의 교수 생활을 마치고 고려대를 떠난다. 노문과 학생, 우크라이나 대사가 되다 허승철 교수는 1977년 고려대 문과대학에 입학했다. 당시는 계열별로 학생을 모집했다. “문과대 신입생 190명 중 저를 포함한 5명만 노문과를 선택했어요. 신설된 지 3년밖에 안 됐고 냉전 시대였으니 인기가 없었죠.” 작은 학과였기에 더 끈끈했다. “선후배 모두가 서로를 알고 지냈어요. 지금은 정원
이은지 씨는 고려대 간호학부 재학 중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면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처음 사명감을 느낀 때는 간호사로 고대안산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일하면서였다. 안산병원에는 외국인 환자가 많다. “난민이나 외국인 노동자 부부의 아기들은 임신 중 관리를 잘 받지 못해 조산아와 기형아로 많이 태어나요. 600g밖에 안 되는 아기가 3kg로 자라서 퇴원할 때 보람이 컸죠.” 그렇지만 회의감도 컸다. “아기가 고통스러운 치료로 고생만 하다 죽을 때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어요. 학교에서 배운 사람 중심의 간호학은 허상에 불과했죠
‘고려대 농구부 주장, 고연전 농구 승리의 주역, 23-24시즌 KBL 신인왕 유력 후보.’ 모두 박무빈 선수를 나타내는 단어다. KBL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에서 활약 중인 그는 올해 고려대를 졸업한다. “고려대에 입학하자마자 졸업까지 있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대학 리그에서 두각을 보이는 선수들은 3학년 시즌 중 얼리 드래프트로 프로에 진출하곤 한다. 박무빈 선수는 졸업을 위해 얼리 드래프트를 신청하지 않았다. 박무빈 선수는 지난해 주장으로서 농구부를 이끌었다. “주장은 감독님과 선수를 연결하는 역할이에요. 전술을 선수단에 전달해
“2019년에 한국에 왔는데, 벌써 5년 차라는 게 실감나지 않네요. 고려대에서 친구, 교수님들과 함께한 하루하루가 제겐 추억이에요.” 인도네시아에서 온 가가스 람방 파뭉카스(Gagas Lambang Pamungkas)는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8000여명인 ‘인플루언서’다. 코로나 학번으로 유학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그였지만, 이제는 캠퍼스 곳곳에 추억이 서렸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한국에서의 생활을 기록하고 있다. 축제, 활동, 여행 등 분야는 다양하다. “한국에 와서 무슨 일을 했는지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어 시작했어요. 사
김미경 씨는 학자를 꿈꾼다. 비평에 관심을 둔 그는 고려대 입학 전 문학과 철학을 놓고 고민하다 철학을 택했다. 철학과 입학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나만의 연구를 하려면 철학 공부가 필수적이라 잘한 선택이다 싶어요.” 현대문학을 좋아했기에 국어국문학을 이중 전공했지만 점차 고전문학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2학년 2학기 때 고전문학 수업을 듣다가 고전의 매력을 알았어요.” 조선 후기 소설을 원문으로 읽기 위해 순자, 맹자 강독에 참여했다. 높은 학구열로 매 학기 20학점 가량을 수강한 김미경 씨는 3년 만에 학교를 졸업한다. 남은 1
“실제로 캠퍼스 생활을 즐긴 건 2년뿐이라 졸업이 더 빠르게 느껴져요.” 코로나19와 함께 대학 생활을 시작한 남희욱 씨에게 첫 2년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비대면 강의만 열리던 시기, 선배들을 충분히 만나지 못했다.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자 남 씨는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새내기새로배움터에 조장으로 참여해 후배들과 친해졌다. 3년 동안 과 후배 85명과 밥약을 한 것은 남 씨의 자랑이다. 후배를 향한 사랑만큼 전공에 대한 열정도 넘쳤다. 중학교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던 그는 이중전공으로 한국사학과를 택했다. 그는 전공 수업을 듣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