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라는 개념은 우리의 일상에 완전히 스며들어 있다. 우리에게 버스, 택시, 지하철, 신호등은 하루에도 수백 번씩 마주하는 너무나 당연한 요소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에서 이 요소들이 사라진다면 어떨까? 베네치아 본섬은 온통 울퉁불퉁한 돌로 바닥이 구성되어 있고, 5분에 하나씩 돌다리가 놓여있다. 따라서 물길을 제외하고 땅 위에서 사용되는 교통수단은 오직 도보뿐이다. 즉 본섬에서는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자전거를 조심할 일도, 코너를 돌 때 자동차가 있는지 확인해야 할 일도, 당연히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일도 없다. 그렇
지난 22일 모두가 잠든 새 내린 2월의 마지막 함박눈. 때 타지 않은 소복한 길을 걷던 누군가의 작은 발자국이 눈에 띈다. 늦겨울의 시린 바람을 가로지르는 비행 전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는 잠깐의 휴식이었을까. 방배동 구석진 골목에 세 개의 발자국만 남긴 채 훨훨 날아가 도착한 그곳엔 푸른 잎이 만발하고 있을지 모른다. 다시 돌아올 땐 우리에게도 봄을 데려다 다오. 한희안 기자 onefreaky@
좋았던 것 같진 않다. 고향을 떠나 도착한 3월의 학교는 아직 추웠다. 처음 만난 선배, 동기들에게선 반가움보단 눈치를 먼저 읽었다. 지금은 없어진 과방 건물에서 우두커니 앉아 뭘 해야 할지 전전긍긍했다. 신입생의 첫사랑을 다룬 영화가 그해 극장가를 흔들었다. 당시 가장 잘나가던 아이돌 배우가 첫사랑 역할로 나왔다. 영화 속 예쁜 아이돌까진 아니더라도 나 역시 뭔가가 있겠지. 현실은 냉정했다. 좋아하던 친구에게 마음을 거절당했을 때 눈물이 났던 일은 아직도 혼자만의 술안주로 남아있다. 2024년 신입생을 독자로 상정하고 글을 썼다.
삶의 불가해와 그 번민은 수많은 철학자의 주제가 돼왔다. 그러나 그들에게만 작용하지는 않았다. 노동자들, 기어코 학생까지 내려와 고통에 빠지게 했다. 이 책을 읽었을 때가 그러한 삶의 불가해 속에 빠져 있었을 때였다. 나는 번민으로부터 도망쳐 자주 오르던 산에서 책을 읽고 번민에서 벗어나 산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후지무라 마사오는 번민에 게곤 폭포에 몸을 던지는 극약을 뒀다. 후지무라는 소세키의 제자였다. 예습을 해 오지 않을 것이라면 수업에도 들어오지 말라며 그를 힐난하였던 소세키는 제자가 “불가해. 내 이 한을 품고 번민 끝에
최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 손흥민 선수와 이강인 선수의 갈등과 화해 이야기가 뉴스를 장식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아시안컵 요르단과의 준결승 경기 전날 대표팀 내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선수들 몇몇이 저녁 식사를 일찍 마치고 탁구 치던 것을 주장 손흥민 선수가 제지하는 과정에서 이강인 선수와 충돌하였다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해 언론에서는 ‘어린 선수의 하극상’과 ‘인성 논란에 광고 모델 손절’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이강인 선수를 비난하는 성격의 기사가 주를 이루었다. 시간을 22년 전으로 되돌려 보면 축구 국가대표팀
신문사 생활을 시작한 후 유독 이런저런 물건을 깜빡하는 실수가 늘었다. 지난 학기 동안 두 손을 다 꼽아야 셀 수 있는 개수의 우산들에 이어 필통과 핸드폰까지 잃어버리고 나선 내가 ADHD인가 의심하기도 했다. 이런 고민을 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최근 스스로를 ADHD라고 의심해 병원을 찾는 성인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ADHD 증상으로 진료받은 성인 환자가 지난 5년간 5배로 급증했다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 결과도 있다. 그러나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 중 실제 ADHD가 아닌 경우도 많다. 여러 정신과전문의가 이들 중
송민제 전문기자
판다는 자연 번식이 어려운 종이다. 그런데 무려 국내 최초 자연 임신으로 태어난 아기 판다 ‘푸바오’는 임신 소식부터 출산, 육아 모습이 모두 공개되며 우리 국민의 격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푸바오가 만 네 살이 되는 올해 중국으로 떠난다. ‘용인 푸씨’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한국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왔지만, 3월 3일을 끝으로 한국에서 다시 볼 수 없게 된다. 새벽부터 수천 명이 줄을 서고, 판다 월드 앞에서 곧 떠나는 푸바오를 보기 위해 오픈런을 한다. 단 5분이라도 보기 위해서. 중국의 일부 네티즌들은 푸바오가 한국에서
한 쌍의 연인이 손을 맞잡고 분홍 벚꽃과 하얀 눈송이가 날리는 거리를 걷고 있다. 카메라는 15초간 이들을 따르며 생생한 모습을 기록한다. 마치 꿈처럼 사랑스러운 장면이다. 그렇다. 현실 같은 꿈을 담은 이 영상 자체가 꿈같은 현실이다. 이것은 완벽한 가상의 콘텐츠이며, 인간이 촬영하지도 않은 텍스트 투 비디오(text to video) 생성 AI 모델 소라(Sora)의 데모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미 AI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넘어 영상까지, 인간의 삶과 예술로 스며들었다. 놀라움을 주던 신기술은 단순한 생산 보조 도구에서, 미적 창
○···흉흉한 소식이오. 의과대 호형 중 구할오푼이 휴학계를 냈소. 전공의 호형들은 가운을 벗어 던지고 있소. 꿋꿋이 진료 보는 호형이 있다고는 하지만, 고대병원에 의사가 부족한 건 좌우간 사실인 듯 보이오. 그 덕에 응급실은 분주해졌소. 한 고대병원에선 심폐소생술을 요하는 ‘코드 블루’가 발생해도 의사가 오지 않는다고 들었소. 다른 고대병원은 4주 안에 수술해야 하는 유방암 환자에게 진료 지연을 통보했다는구려. 물론 연락은 모두 간호사가 돌렸다고 하오. ○···그대 의사 호형들의 행동에 점수가 매겨진다면 분명 10점 만점에 10점
지난달 16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위수여식에서 신민기 녹색정의당 대전시당 대변인이 R&D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 대통령경호처에 의해 퇴장당했다. 항의 대상인 윤석열 대통령은 4대 과학기술원의 올해 예산 총액 약 10%를 삭감하려 했다. 피켓을 든 신 대변인은 KAIST 전산학부 석사과정 졸업생이다. 머지않아 삭감의 여파를 맞을 졸업생을 향해 “여러분의 손을 굳게 잡겠다”고 발언한 윤 대통령은 졸업생의 외침에 입막음으로 답했다. 연구하는 목적이 고연봉이든 학문의 발전이든, 과학기술 인재에게 연구 동기를 불어넣는
나는 그저 학생일 뿐, 신문과 언론에 빠삭한 베테랑 기자는 아니다. 그러나 고대신문 기자들과 데스크의 노고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1989호를 읽고 다른 언론에서 종종 발견되는 부족한 점이 고대신문에는 없다고 느꼈다. 취재원을 익명으로 섭외하지 않았고, 상반되는 의견을 골고루 담았으며, 알찬 취재 과정이 돋보이는 등 이번 호는 신문에 필요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고대신문 1989호는 우리가 고려대학교 학생이기에, 그리고 대한민국의 청년이기에 더더욱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 봐야 하는 주제들로 구석구석 채운 신문이었다. 먼저 제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