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요리를 하기는 귀찮고 배달비는 부담스러운 자취생에게는 정착할 수 있는 식당 한 곳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정경대 후문 주변 지하에 자리 잡은 한식당, ‘동네’가 그런 장소다. 좁은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학생은 물론 교수님과 직장인까지 모여 북적북적한 풍경이 펼쳐진다. 단골과 식당 아주머니 사이 가벼운 인사와 담소에서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데 그 정감이 매일 이곳으로 사람들을 부른다. 음식의 가격대가 7500원에서 8500원 사이로 압도적인 가성비를 자랑하는 이곳에서는 자취생도 부담 없이 식사할 수 있다. 저렴한 가격과 달리
학교 정문 밑으로 쭉 내려가다 보면 손님으로 북적북적한 식당이 보인다. 고소한 된장과 보리밥 냄새가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매장에 들어서면 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이 갖가지 반찬과 찌개가 차려진 식탁에 삼삼오오 마주 앉아 보리밥을 비비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표 메뉴인 보리밥 정식은 열여덟 가지 반찬과 보리밥, 된장찌개 또는 청국장으로 구성된다. 주 반찬으로 먹음직스러운 잡채와 노릇노릇하게 튀긴 전, 쫄깃한 편육이 먼저 나온다. 뒤이어 나오는 콩나물, 고사리무침, 무생채, 멸치볶음, 열무김치 등 다양한 반찬은 우
힘겨운 1, 2교시를 마친 월요일 점심시간,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점심 메뉴를 고민할 때 빠지지 않는 후보 중 하나는 ‘맛식당 연어랑’이다. 가게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에는 연어를 주재료로 한 메뉴가 많다. 점심을 먹기 위해 맛식당 연어랑에 가면 항상 자리가 꽉 차 있다. 운초우선교육관에서 조금 내려와 왼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이 식당이 나온다. 법학관, 교육관과 멀지 않기 때문에 사범대 학생과 법학전문대학원 학생이 많이 온다. 메뉴가 간단해 회전이 빠른 편이라 손님으로 가득 차 있어도 굳이 사람이 빠지기를 기
조천변을 따라 걷다 보면 고기 냄새가 솔솔 풍겨와 발걸음이 절로 멈춘다. 향기에 이끌려 ‘연탄길’ 입구 앞에 서자 고기 냄새는 더욱 짙어진다. 가게에 들어서자 테이블마다 놓인 연탄이 나를 뜨겁게 반기는 듯했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도 가게 안은 따뜻했다. 고깃집이니 당연히 메뉴판에서 삼겹살을 찾았다. 그런데 메뉴에 삼겹살은 없고 생목살만이 당당히 자리하고 있었다. 반신반의하며 생목살을 주문했다. 목살은 기름기가 적어 퍽퍽하다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련하신 주인아주머니의 손끝에서 고기가 춤을 추듯 현
신안리는 귀신이 보이는 마을이라는 지명 탓에 스산한 동네라고 오해받지만 실제로는 홍익대 후문 상권과 연결돼 맛집과 카페가 즐비한 번화가다. 그 중 ‘신안저수지’는 신안리에 방문한 연인들의 필수 코스다. 그들은 저수지의 벤치에 앉아 반딧불 같은 조명 아래 밀회를 즐긴다. 그 덕에 나는 홀로 산책할 때마다 사랑을 속닥이는 연인들을 보며 쓸쓸함을 느끼고는 한다. 세종e편한세상 아파트단지 외곽을 둘러 가다 보면 왼쪽에 도무지 입구라고는 믿기지 않는 어두컴컴한 길이 나 있다. 풀숲을 헤치고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으스스한 바깥과는 완전히
2023년 여름, 뜨거운 공기를 가르며 걷다가 성북동의 한 골목 끝에서 한옥 카페 ‘케이드’를 만났다. 케이드는 에리다누스자리 끝자락 별에 붙은 이름으로 깨진 달걀 껍질을 뜻한다. 사장님은 이 이름이 비건과 논 비건을 동시에 상징한다고 하셨다. 케이드는 안암역에서 1111번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다. 문을 열면 고즈넉한 한옥의 분위기와 중세풍의 이국적인 느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공간이 드러난다. 서까래가 드러난 천장과 나뭇결이 새겨진 바닥, 햇살을 머금은 화이트 톤 인테리어는 차분한 인상을 준다. 여기에 감각적인 소품과 오묘한
나는 카페인을 원동력 삼아 반복되는 피곤한 나날을 버티곤 한다. 평소에는 학교 근처 카페나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지만 마음이 유독 힘든 날에는 조치원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카페 ‘호머’를 찾아간다. 기차 소리가 들리는 조치원역을 지나 삼일아파트 단지 입구에 다다르면 작은 상가가 보인다. 화려한 간판을 자랑하는 가게 사이에서 유일하게 간판 없이 조용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곳이 바로 호머다. 카페에 들어서면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이 나를 반겨준다. 음악과 어울리는 각양각색 책이 꽂힌 책장,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LP판
학교에 가는 길이면 나는 설레는 동시에 지친다. 우리 학교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오는 곳인데 마주치는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잘나고 멋있기까지 한 건지. 선배는 시험 합격과 취업 소식을 전하고 후배는 내가 저학년일 때보다 훨씬 더 재밌게 대학 생활을 즐긴다. 사람들이 이어폰을 꽂고 다니는 이유는 음악으로 감각을 마비시키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 아닐까. 서울에서, 고려대에서 나를 사랑하기란 정말 어렵다. 무언가에 짓눌린 듯 마음이 무거워 참을 수 없을 때면 나는 개운산 공원에 간다. 개운사길을 따라 기숙사와 녹지운동장을 지나 오
9월은 가을의 시작이라 부르기에는 어딘가 어색하다. 입추가 지났지만 더위는 좀처럼 물러나지 않는다. 달력의 날짜는 가을을 향해 가고 있지만 나는 늘 그렇듯 계절의 변화를 한발 늦게 체감한다. 완벽히 준비하지 못한 채 맞이하는 2학기도 모든 시작은 설렘이 불안을 이기는 순간 비로소 가능하기에 미완성의 미학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개강을 하면 동기, 선후배와 오랜만에 만나 술자리를 가질 일이 많다. 나는 술자리에서 오가는 인생이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소주 한 잔에 털어 넘기는 게 아직 어렵다. 헐떡고개를 넘어 내려가 왼편으로 가면 칵테
여름을 즐기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나는 여름을 한입에 베어먹는 쪽이다. 조치원역 바로 앞에 있는 카페 ‘모디스트 임팩트’는 내게 여름의 맛을 선사했다. 여름을 고스란히 담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맛보면 그 누구든 여름에 그곳을 떠올릴 것이다. 햇빛을 받아 뜨거워진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타설기의 소음이 가득한 공사장은 여름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 카페의 외관은 그런 공사장을 닮았다. 폐업한 듯한 회색 벽면, 투박하게 걸린 간판. 처음 마주하면 이곳이 정말 카페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낯설고 조금은 당황스러운 인상이었다. 하지만 2층으
유독 길었던 겨울 끝에 올해는 5월이 돼서야 완연한 봄을 맞이할 수 있었다. 봄이 되자마자 나무들은 너도나도 앞다퉈 연둣빛 잎을 내놓는다. 산책하기 적합한 날씨가 됐다는 신호다. 5월의 어느 봄날, 따스한 꽃내음을 맡으며 성북천을 산책하던 중 봄을 그대로 옮겨 담은 듯한 인테리어와 초록빛 식물들이 있는 아기자기한 카페가 내 눈길을 끌었다. 홀린 듯 들어간 공간은 카페 버라이어티였다. 어딘가 침울해 보이는 학교 열람실로부터 도망쳐 나온 산책이었기에 ‘좋은 카페를 찾게 된다면 그곳에서 공부해야지’ 하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카페에 들어서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는 온통 자극적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낯선 환경 속에서 펼쳐지는 설렘 가득한 만남, 어딘가 영화 같기도 한 사랑의 시작, 신나는 밥약과 술자리. 정신없이 웃고 떠들다 보면 마음속에 묘한 감정이 찾아온다. 바로 공허함이다. 쉼 없이 이어지는 사건들과 감정의 파도 속에서 우리는 어느 순간 지쳐간다. 어쩌면 그럴 때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자극이 아니라 담백하고 편안한 시간이다. 치킨과 피자, 소주와 막걸리로 가득한 조치원에서 담백한 맛으로 편안함을 가져다줄 곳이 있다. 학군단 건물을 지나 오른쪽으로 10분 남
잠시 세상과 단절되고 싶지만 멀리 떠날 만큼의 에너지는 남아 있지 않을 때, 나는 안암역 2번 출구 앞에서 여름빛을 머금은 초록색 마을버스에 몸을 싣는다. 시시각각 바뀌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다섯 정거장을 지나 성북구청 앞에 다다른다. 감사 인사를 건네며 버스에서 내린 후 햇살을 머금은 채 반짝이는 성북천을 지나 걸어가면 조용한 주택가를 볼 수 있다. 그곳의 안쪽에, 사람들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곳에, 언뜻 보면 지하 주차장 같기도 한 곳에 다락방 같은 작은 공간이 숨어 있다. 스페이스 아텔이다. 이곳엔 서점과 전
4학년이 되니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압박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진로와 취업 준비의 고민 속에서 매 순간을 알차게 써야 하고 무언가를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렇게 채찍질을 거듭하다 보면 가끔은 잠시 인생에서 로그아웃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이런 슬럼프를 극복할 때 필요한 것은 감성의 수혈이다. 나는 평소 숨겨진 공간을 찾아다니는 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학교 오는 날엔 가끔 성북구 곳곳을 놀러 다니곤 한다. 안암역에서 버스를 타고 15분쯤 가면 한성대입구역 인근의 고즈넉한 동네가 있다. 좁은 골목을 따
낭만의 농도가 옅어지면 숨 또한 옅어지는 이들이 있다. 뜻밖일 수도 있겠으나 조치원은 그런 이들에게 구석구석 상냥함을 품은 마을이다. 맑은 밤이면 단란한 별의 무리가 마음에 총총히 박히고 토실토실 살 오른 길고양이들이 순하게 다가와 몸을 비빈다. 조치원 골목 사이에는 숨죽인 음악과 짙은 커피 향이 안개처럼 흐른다. 낭만의 안개를 뚫고 삐져나오는 영사기 불빛을 따라 걷다 보면 조그마한 독립 영화관에 발길이 닿는다. 조치원역에서 5분, 조치원 터미널에서 2분 거리에 자리한 시네마 다방은 국내 개봉한 독립 예술 영화들을 시간대별로 상영하
편지를 쓰는 시간만큼 낭만적인 시간이 있을까. 자리에 앉아 오롯이 한 사람을 떠올리며 몰입하는 순간. 평가받을 것에 대한 걱정도, 급하게 마무리할 이유도 없이 오직 한 명의 수신인에게 가닿을 마음을 차분히 담아내는 고요하고 소중한 시간. 그리고 그 순간 뒤에는 더욱 사랑스러운 시간이 존재한다. 그 마음을 담을 엽서나 편지지를 고르는 시간이다. 이에 동감하는 이라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곳이 있다. 한성대입구역 앞의 한 골목, 눈에 띄는 하얀 가판대를 따라 걷다 보면 보이는 성북동 엽서가게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고풍스러운 가구들로
자연계 캠퍼스 후문을 나서 안암오거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어디선가 고소하고 짭조름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퍼져온다. 자연스럽게 발길이 향하는 곳, 바로 우승식당이다. 허름하지만 정겨운 간판이 반겨주는 이곳은 이공계 학생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다. 바쁜 수업 사이에 허기를 채우러 오는 학생들, 실험을 마치고 지친 몸을 끌고 와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고 가는 연구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자리한 동네 주민들까지. 이 작은 식당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이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상과 활
새로운 계절의 문턱인 3월엔 사뭇 달라진 바람과 함께 설렘과 흔들림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럴 때일수록 내 마음의 중심을 잡아줄 잔잔한 안식처를 찾게 되는데, 그런 쉼터가 필요할 때 종암동의 ‘정이정’을 추천한다. 정이정은 50년 된 구옥을 개조해 만든 카페로 종암동 골목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큰 대로변에서 정이정이 있는 골목으로 접어드는 순간, 여느 주택과 다름없는 현관이 나타나고 마당이 나를 반긴다. 여름내 진한 초록을 가득 안고 생명력을 전해주던 향나무들은 가지치기로 잠시 그 무게를 내려놓고 한결 고요한 모습으로 여전히 마당
학년이 바뀌어도 꾸준히 찾게 되는 곳이 있다. 해 질 무렵, 역에서 멀지 않은 참살이길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어디론가 향하는 계단을 발견하게 된다. 아기자기한 포스터들로 가득한 벽과 은은한 조명이 반기는 이곳, ‘체리온 루프탑’은 일상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조용하고도 아늑한 안식처다. 푸른빛 벽면은 이곳만의 독특한 감성을 자아내고, 벽면 곳곳에 걸린 다채로운 소품과 포스터는 마치 작은 전시 공간을 연상케 한다. 잔잔하지만 왠지 마음을 들뜨게 하는 제이팝이 공간을 가득 채우며 체리온의 분위기
카페 헤이다는 시간의 결을 훔쳐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1927년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산일제사공장’은 광복 이후 삼충편물공장으로, 한국전쟁 당시엔 조치원여고의 임시 교사로, 1970년대엔 한림제지 공장으로 운영되다, 세종특별자치시가 들어서며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카페 헤이다는 ‘1927 아트센터’라는 이름으로 공간과 사람을 잇고 있습니다.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플랜테리어와 고풍스러운 자개 가구입니다. 실내는 녹음이 가득하고, 그 사이로 흘러나오는 작은 폭포는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