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검토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했다.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에 남아 있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한계가 꾸준히 지적됐다. 2021년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재판관 네 명이 일부 위헌 의견을 밝힌 것에서 같은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이 재판관들은 헌법이 명예훼손의 구제 수단으로 형사처벌을 당연히 전제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피해 구제는 정정보도와 손해배상만으로도 가능하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UN 인권 기구가 폐지를 반복
AI 다음은 양자 기술이 대세라길래 물리학 복수전공을 고민하는 중이다. 일단 알아보는 차원에서 물리학과의 전공과목 중 양자역학 도입부 격인 과목 하나를 이번 학기에 수강신청했다. 학점 짜기로 소문난 학과의 어려운 과목답게 매주 나오는 과제 하나 해결하기 쉽지 않다. 결국 지난달 중간고사에서 평균에 못 미친 점수를 받았다. 범위가 워낙 다양하고 방대한 탓인지 성적 분포를 보면 정원 3할이 30점대 아래에 몰렸다. 고전하는 나와 수강생들은 한 국회의원의 말대로 공부 방법을 바꿔보면 어떨까.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장은 14일 소
지난 3일은 고대신문 창간 78주년이었다. 현직 학생기자로서 창간기념식에 참석했다. 기념식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단연 ‘비전 80’이었다. 고대신문 창간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준비도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대학 언론의 쇠퇴 속에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현실도 담겨 있었다. 2010년대 모바일의 발달로 종이신문이 급격히 쇠퇴했고, 그 여파는 대학 언론에도 미쳤다. 직접 그 안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1980~1990년대 대학 언론은 제도권 언론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대학 언론의 활동은
모두가 쿠키런과 바운스볼에 열 올리던 시절 나는 홀로 심시티에 심취해 있던 초등학생이었다. 심시티는 시장이 돼 자원을 모으고 도시를 개발하는 게임이다. 땅은 좁은데 주거단지와 혐오시설을 분리하고 인프라는 촘촘히 배치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세금 내는 심들의 행복도가 떨어져 도시가 망했다. 서울은 개발이 멈추지 않는 심시티고 그 안에 사는 나는 심 같다. 한국의 폼 나는 시설과 문화는 모조리 끌어안고 있는 서울이 이번엔 한강 위에 버스를 띄운다고 한다. ‘한강 르네상스’를 열어 심들의 행복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물 위
지난 학기 취재 기자 시절, 신임교원 인터뷰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님을 인터뷰했다.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시다가 교수직을 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봤다. 교수님은 학문에 대한 탐구를 누구보다 사랑했기에,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찾아 교수직을 선택했다고 하셨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랑하는 일에 몰두하는 삶이 이렇게 단단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오래 남았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좇을 때, 비로소 성취와 만족도 따라온다는 사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우리는 빈번하게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
내게 꿈을 물어본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울어보는 것’이라고 답하겠다. 어렸을 때부터 난 우는 법을 몰랐다. 유년기 시절 사진을 봐도 우는 사진은 없다. 연인과의 이별에도, 입대 전 부모님과의 마지막 인사에도, 만취 상태에서 나눈 친구들과의 진솔한 대화에도 내 눈물샘은 파업이다. 눈물샘이 있긴 한 걸까? 어제도 눈물을 흘려보기 위해 맥주와 매운 새우깡에 슬픈 영화를 곁들여봤다. 그리곤 실패했다, 언제나처럼. 우는 것이 예쁜 사람을 절대 놓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눈물이 없기에 우는 모습이 추해 보일 일은 없어서 다행이란 장점
수시 원서 접수 기간이 돌아왔다. 대학에 입학하고도 3년이 지나니 이젠 입시보다 취업에 더 가까운 나이가 됐다. 입시와는 점점 멀어져 가던 찰나에 원서접수 소식을 우연히 전해 들었고, 잊고 있던 4년 전 입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젠 기억도 흐릿해진 오래전이지만, 처음 생활기록부를 떼 봤을 때 기억만은 뚜렷하다. 변호사나 교사처럼 선명한 미래를 그리며 수시를 준비하던 친구들과 달리 난 당장의 입시가 중요했던 낭만 없는 학생이었다. 당장 상황에 걸맞은 입시 전략을 찾아 진로를 바꿔댔고 그 방황은 생활기록부에 여실히 담겨 있었다. 마치
학생 기자 신분인 나는 요새 뉴스를 보는 게 힘들다. 우리 사회가 점점 갈라지고 있는 걸 보는 게 불편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매체와 공간에서 각자의 주장과 감정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지만 그 말들은 공중으로 흩어지고 상대의 마음에는 닿지 못한다. 이런 현상은 정치와 사회 문제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남녀 갈등, 세대 갈등, 이념 갈등 등 사회 곳곳에 대립이 일상화됐다. 토론은 논증의 장이 아니라 승패의 무대로 변한 지 오래고 언론 또한 이젠 사실을 다루기보다 자극적인 주장을 확대하고 재생산하고 있는 듯하다. 듣기보다는 말하기, 이해보
미술 영재가 나타나면 가장 많이 들리는 말이 있다. “외국으로 유학 보내라”와 “입시 미술 시키지 마라” 획일화된 입시에 뛰어난 학생들이 개성을 잃을 것을 우려하며 던지는 한국 미술 입시 체계에 대한 회의 섞인 말들이다. 미디어에서는 남다른 재능을 보였지만 입시를 거치며 영재성을 잃게 된 학생들의 사례가 종종 언급된다. 그런데 과연 한국식 입시 미술이 영재성을 앗아가는 주범일까? 예술의 본질은 자유로운 표현이다. 그런데 자유를 누리려면 먼저 능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재료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크레파스를 집어 드는 것과, 크레파스밖
지난 7월 25일 정부가 ‘2025년 국민 영화 관람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영화관 입장권 6천 원 할인권을 배포했다. 지급 시간이 되자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의 일부 홈페이지나 앱에서 접속자가 폭주하며 사이트가 마비됐다. SNS에선 접속이 안 된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티켓값을 6천 원만 내려도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실제로 배포가 시작된 직후 약 10만 명의 대기인원이 몰렸다. 나 역시 영화를 좋아한다. 별다른 일정이 없는 날이면 극장으로 가 최근 개봉작이나 재개봉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소소한
사립초, 국제중, 외고를 나와 고려대에 진학했다는 사실은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교에 진학했으니 고려대에 진학한 것은 큰 반전이 아니라는 맥락에서다. 그러나 평생을 큰 연못에 던져진 작은 물고기로 발버둥 친 흔적을 알아주는 이는 없었다. 해외 유학, 영어 유치원, 강남 8학군, 대치키즈. 그 어떤 수식어도 나에게 붙일 수 있는 건 없었다. 중학교를 진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저런 수식어들을 여러 개 달고 있는 친구들을 만났다. 중학교에서는 특목고, 자사고, 외고에 진학하지 못하면 낙오자였다. 그렇게 진학한
2006년, 당시 유벤투스 FC 단장 루치아노 모지는 특정 경기에 대해 압력을 가하는가 하면, 불리한 판정을 한 심판을 공격하기 위한 언론플레이, 세무조사 회피를 위한 수사기관 로비, 이적 협상 불법 개입까지 서슴지 않았다. 일명 칼초폴리라 불리는 스포츠계 최대의 스캔들이었다. 루치아노 모지는 범죄 공모죄 및 스포츠 사기죄를 선고받았다. 구단도 징벌을 피해 갈 순 없었다. 명문 유벤투스는 2부리그 강등이라는 치욕을 맞았다. 스타 선수들은 연달아 팀을 떠났고, 명망 높던 흑백 줄무늬 유니폼은 이내 부패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그 와중
고려대의 어느 강의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눈물이 핑 돌 줄은 몰랐다. 교양 수업 ‘프랑스문화탐색’, 1차 산업혁명기를 다룬 그날의 강의는 유독 생생했다. 교수님의 말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당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척박했는지를 가늠하던 찰나 교수님께서 영화의 일부분을 보여주셨다. 속 ‘민중의 노래’였다. 화질도 떨어지고 음향도 좋지 않았지만 그들의 목소리엔 분명히 ‘진심’이 있었다. 영화 속 민중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기의 인물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억눌린 사람들, 들끓는 외침, 절박한 얼굴들. 나는
최근 ‘지브리 스타일로 바꿔줘’라는 명령어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사진을 생성형 AI에 업로드하고 이를 애니메이션 속 그림처럼 바꾸는 것이 유행했다. 카카오톡 새로 업로드된 프로필에는 지브리 스타일 사진으로 프로필을 장식한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이는 창작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명령어 한마디로 창작물의 ‘스타일’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된 결과다. 실제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는 본인의 SNS에 “AI로 만든 지브리 스타일로 기업이 광고하면서 본인에게 돌아온 것은 없다”며 전문 인력을 쓸 예산이 있으면서 아티스트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지만, 어떤 사람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참극이다. 2019년 10월 다섯 살 동희는 편도선 제거 수술을 받았다. 간단한 수술이라던 의사의 말과 달리 동희는 수술 후 회복하지 못했다. 각혈까지 하며 상태가 악화됐고 급기야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다.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뇌 대부분이 손상된 아이는 5개월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소중한 자식을 떠나보내고도 부모는 병원으로부터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 동희 부모가 병원을 상대로 민사와 형사 소송을 제기한 지 벌
내 기억 속 첫 오래된 존재는 자동차다. 부모님의 웨딩카는 ‘투스카니’라는 모델명의 빨간색 쿠페 자동차였다. 우리 가족은 모두 그 차를 귀여운 별명으로 부르며 나는 세상 물정 모를 때부터 투스카니를 타고 유치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갔다. 수없이 간 가족여행도 언제나 투스카니와 함께했다. 뒷자리에 앉아 올려다보면 파란 하늘이 보이던 유리가 머리에 닿기 시작했을 때 내가 많이 자랐다는 걸 실감하기도 했고 어린 시선에는 도로 위에 굴러다니는 어떤 차를 봐도 투스카니보다 멋진 차는 없었다. 나는 대학에 가면 이 차를 몰 수 있을거란 기대 속
명절이면 할머니를 뵈러 간다. 어릴 적에는 내가 넘어질까봐 할머니께서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반대가 됐다. 이제는 내가 할머니께서 넘어지지 않으시도록 손을 꼭 붙잡는다. 그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다 보면 문득 생각에 잠긴다. 이 손을 계속 잡아드릴 수는 없다. 그리고 손을 잡아드리지 않아도 문제가 없어야 한다. 익숙한 집과 동네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안식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가득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할머니께서는 얼마 전 집안 화장실에서 넘어지셨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3월답지 않게 눈이 내렸다. 바야흐로 신학기가 시작되는 때,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캠퍼스엔 적적함만이 있었다. 강의를 많이 듣고 졸업이 다가올수록 개강하는 첫 주는 외려 근심과 걱정이 앞서는 듯하다. 가장 친한 친구가 얼마 전 CPA 1차 시험을 봤다. 직접 묻진 않았지만, 원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는 않은 것 같다. 부족한 점을 찾고 개선하면 될 것이라는 다소 형식적인 위로의 말을 남겼다. 얼마 전 또 다른 친구와 오랜만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주위 친구들의 근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야, 걔는 뭐 하고 지내냐?”는 물음에
지난달 8일, ‘2025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연대’에 참석했다.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대학알리,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가 주최해 대학언론이 마주한 문제 해결에 대한 논의부터 연대의 약속까지 진행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지난해 고려대에서 진행된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불씨’에 이어 두 번째 결실을 맺은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온 학생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학언론의 위기’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초면이었지만 학보사 경험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대화가 무르익었다. 우리가 겪는 고민이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
인터넷이 없던 낭만의 시대 1845년. 미국 수필가 헨리 데이비스 소로는 그의 저서에 “영국은 썩은 감자(potato rot)는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 왜 훨씬 더 광범위하고 치명적인 뇌 썩음(Brain rot)은 해결하지 않을까”라고 언급했다. 헨리는 정신적, 지적 노력 전반이 쇠퇴하는 경향을 ‘뇌 썩음’이라 명명하며, 영국 국민의 반지성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아직도 뇌 썩음을 치료하지 못한 탓일까? 그로부터 180년이 지난 현재, 영국 옥스퍼드대는 2024년의 단어로 뇌 썩음을 선정했다. 지금은 품질이 낮은 온라인 콘텐츠를 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