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본에 오기 전 살았던 서울 구의동 집에서는 역까지 가는 길에 두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첫 번째 보도를 건너 공원 앞 자전거 대여소를 지나 두 번째 보도에 서는 순간 신호등에 초록불이 탁 들어온다. 절묘한 타이밍에 감탄한 나는 시민의 편의를 중시하는 공공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독일에서도 재미있는 사례를 모아 보겠다고 다짐했다. 처음 독일 땅을 밟은 내 눈에 띈 것은 횡단보도 버튼이었다. 기숙사로 가는 길 신호등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다 지쳐 길을 건너려는데 누군가 신호등 기둥의 버튼을 눌러줬다. 독일의 횡단보도 신호
이탈리아는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별로 뚜렷한 지리적, 문화적, 산업적 특징을 지닌다. 현재는 하나의 국가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서로 다른 왕국과 공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방문한 도시들은 마치 서로 다른 나라처럼 느껴졌다. 지역별 방언이나 자주 쓰는 표현도 다르다. 예를 들어, 북부에서 ‘브리오슈(brioche)’라 부르는 빵을 남부에서는 ‘꼬르네또(cornetto)’라 하고, 로마에서는 비닐봉지를 ‘부스타(busta)’, 밀라노에서는 ‘사케또(sacchetto)’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북부는 질서,
고려대에서 2년 동안 밴드 동아리를 했던 나는 교환학생도 환대하는 분위기 덕에 싱가포르에서도 기숙사 밴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일 밴드 친구들과 싱가포르의 중심지인 마리나 베이에서 열린 록 페스티벌에 갔다. 말레이계, 중국계 싱가포르 친구와 한국 밴드 공연을 본 후 무슬림이 운영하는 이탈리안 피자 가게에서 저녁을 먹었다. 모두 일본어를 배우고 있는 우리는 영어와 짧은 일본어를 섞어가면서 대화했다. 한 명이 이 사실을 짚자 다들 이 광경이 참 싱가포르 같다며 웃었다. 문화적 다양성이 싱가포르의 가장 큰 특징이기에 다른 나
존경하는 교수님의 모교란 이유만으로 파견교를 골라, 독일에 대해 아는 것은 철학, 소시지, 테크노뿐이었다. 독일에 온 후 교수님이 수학하셨다는 캠퍼스를 걸어보고, 다양한 소시지도 사 먹은 나는 테크노 클럽 두 곳에 다녀왔다. 처음 방문한 ‘보트하우스’는 영국 음악 잡지 ‘DJ MAG’이 2025년 독일 최고의 테크노 클럽으로 선정한 장소다. 보트하우스에는 복장 규정이 따로 없었기에 다양한 옷차림을 볼 수 있었다. 클럽이라고 하면 떠올릴 법한 화려한 옷부터 가벼운 일상복, 퇴근길에 온 듯 단정한 차림도 눈에 띄었다. 또래로 보이는 사
2025년은 가톨릭교에서 25년 만에 돌아오는 정기 희년(Jubilee)이다. 전 세계 가톨릭 순례자는 회복과 해방의 해인 희년을 기념하기 위해 로마의 주요 성당을 찾고 구원의 통로로 여겨지는 성문을 통과한다. 지난달 퇴근길 지하철에서는 희년을 맞아 교황을 만나러 온 청년 순례단을 보기도 했다. 커다란 국기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청년들을 보며 도시 한복판에서 세계적인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로마 길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성당이다. 웅장한 대성당은 화려한 천장화를 보기 위해 모인 관광객들로 붐빈다. 작은 성
싱가포르 중심지에는 서울만큼 고층 건물이 많지만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도시 곳곳에서 사계절 내내 푸르른 식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심 한복판의 공원, 높은 빌딩 위 나무들 덕분에 도시 전체가 거대한 정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탄생한 배경에는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한 도시 개발이 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의 자치주였으나 1965년 영국 식민 통치의 여파로 연방에서 추방돼 갑작스러운 독립을 맞았다. 초대 총리인 리콴유(李光耀)는 슬럼화된 도시를 재정비하며 ‘가든 시티(Garden City)’ 프로
한 사람이 1년에 405잔의 커피를 마신다는 한국은 독특한 카페 문화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카페에 앉아 공부나 업무를 하며 오랫동안 머물고 친구와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눈다. 반면 로마의 카페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탈리아에서 카페(caffè)는 커피 그 자체를 의미하고 보통 에스프레소를 일컫는다. 커피를 주문하고 마시는 공간은 바(bar)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인에게 바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을 넘어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공간이다. 직장인, 학생부터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아이, 노인까지 모두 바에서 하
싱가포르에 교환학생으로 가게 됐다는 소식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했을 때 다들 비싼 물가를 걱정했다. 싱가포르 달러의 원 환율은 1000~1100원 사이로 원화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이지만 식비 부담 때문에 많은 사람이 물가가 비싸다고 느낀다. 싱가포르에 도착한 날 제법 그럴싸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영수증을 보니 계산된 금액이 메뉴판에 적힌 것보다 훨씬 비싸 놀랐다. 싱가포르 음식점 대부분 판매가에 9%의 부가가치세(GST)와 10%의 봉사료를 추가해 요금을 청구한다. 소비자는 20%를 더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세금 안내는 보통
네덜란드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페이스북 커뮤니티 이름은 ‘낮은 땅, 높은 꿈: Aiming high in the low lands’이다. 여기서 ‘낮은 땅’은 이름 그대로 낮은(Neder) 땅(Lands)으로 이뤄진 네덜란드를 상징한다. 네덜란드는 우리나라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국토 면적(4만1543㎢)을 가진 작은 나라다. 이 중에서도 사람이 살 수 없는 호수와 강을 제외하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땅은 3만3481㎢밖에 되지 않는다. 애초에 가진 땅도 좁은 편인데 대부분 해수면보다 낮은 저지대 지역이기까지 하다. 수도인 암
일본 유학을 선택하며 가장 가고 싶었던 장소 중 하나는 오키나와였다. 정말 운이 좋게도 일본의 연휴인 골든위크에 기숙사 주관 오키나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내가 생각했던 오키나와는 맑고 푸른 바다, 이국적인 분위기, 따뜻한 기후가 인상적인 아름다운 휴양지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직접 그 땅을 밟아보고 오키나와의 역사를 기록한 장소를 돌아보며 그 아름다움 뒤에 잔혹한 역사와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일본 본토를 침공하기 위해 오키나와를 거점으로
미국의 대학 졸업식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학생 개인이 주인공이 되는 성대한 의식이며 학업 여정을 마무리 짓는 무대다. 교환학생으로 미국 대학에 머무르며 가장 인상 깊게 체험한 문화 중 하나가 바로 이 졸업식이었다. 미국에서는 학부 전체가 동시에 졸업식을 하지 않는다. 단과대학별로 각기 다른 날짜, 시간, 장소에서 졸업식이 열린다. 예를 들어 공과대학, 문과대학, 자연과학대학, 경영대학 등이 모두 따로 진행된다. 전공이 같더라도 복수전공이나 학위 요건에 따라 졸업식이 나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전공과 소속에 따라 맞춤형으
네덜란드는 평소 평화롭고 여유로운 도시 분위기를 자랑한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점잖고 따뜻한 네덜란드 사람들은 잔잔히 흐르는 운하 옆 테라스에 앉아 햇살을 즐기는 것이 일상이다. 하지만 일 년에 단 하루, 전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술과 음악에 열광하는 날이 있다. 바로 매년 4월 27일, 킹스데이(King’s Day, Koningsdag)다. 킹스데이는 현 국왕 빌럼 알렉산더르(Willem-Alexander)의 생일을 기념하는 국가 공휴일로, 네덜란드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여행객들도 함께 즐기는 국민적 축
일본의 청춘 영화를 보고 환상을 가진 채 도착한 일본은 대개 낭만적이었다. 도시 위를 달리는 열차는 내가 도쿄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 나게 했고, 노을 아래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노면 전차를 볼 땐 일본의 한적한 동네에 사는 시골 고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쭉 걷다 보면, 잊고 지나칠 뻔한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낭만이라는 건 당연함과 편의를 포기하는 순간 슬며시 찾아오는 것이라고. 하지만 편의의 실종이 곧 낭만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며 경험한 문화 중 인상 깊었던 행사는 St. Patrick’ s Day Block Party였다. 올해 나는 현지의 블록 파티에 직접 참여하며 이 행사가 단순한 파티를 넘어 문화적 정체성과 공존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St. Patrick’s Day는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을 기리는 날로 매년 3월 17일에 기념된다. 본래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날이었지만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에 의해 미국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지금은 모든 이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가 됐다. 이날 미국 전역에서는 초록색 옷과 장신구,
강아지 애호가인 필자가 암스테르담에 파견 와서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반려견이 주인과 함께 어디에나 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품종인지 알 수 없는 믹스견과 소형견부터 한국에서 쉽게 보기 힘든 그레이트 데인 같은 대형견까지 다양한 품종의 반려견을 카페, 식당, 트램, 쇼핑몰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카페 옆 좌석에 시베리안 허스키가 엎드려 자고 있는 일이 흔한 일이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지낸 한 달 반 동안, 적어도 실내에서 이 반려견들이 짖는 것을 들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공원에서 산책하며
일본의 거리를 걷다 보면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사다. 일본의 민족 종교는 신도(神道)로, 일본문화청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까지도 일본 종교 인구 비율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신도를 믿지 않는 일본의 비종교인들도 신사를 자주 방문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언젠가 일본인 친구에게 “일본 사람들은 정말 신을 믿는 사람이 많니?”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친구는 그렇지 않다는 답을 줬던 기억이 난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거나 애초에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기원할 때의 상징이 된
지난 2월 초, LA 도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이틀 동안 수천 명이 거리로 나와 도로를 점거하고 구호를 외치며 정부의 반이민 정책에 대한 강한 반발을 표출했다. 멕시코계 이주민의 60%가 캘리포니아주 또는 텍사스주에 거주하고 있기에 LA에서의 시위는 특히 격렬했다. 시위를 직접 목격하며, 미국 사회에서 이주민 문제가 얼마나 뜨거운 논쟁의 대상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시위 당일,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 도로 위에서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를 마주했다. 미국과 멕시코 국기를 흔들
내가 파견 중인 암스테르담은 ‘운하와 자전거의 도시’라는 별칭에 충실하다. 인도보다 자전거 도로가 더 넓고,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더 많다. 유아차로 개조된 자전거, 하이힐을 신고 자전거 페달을 굴리는 여성, 자전거 전용 주차장 등은 이곳에서 매일같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처음 이곳에 와서 가장 놀랐던 점은 어떤 네덜란드인들은 두 손을 놓고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로 방향 전환까지 해내며 자전거를 타는 기행을 선보였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자전거가 우선권을 갖는다. 3순위가 자동차, 2순위가 보행
워홀(워킹홀리데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워홀에 반대하는 유튜브 영상을 시청한 적 있을 것이다. 필자도 캐나다에 오기 전 ‘캐나다 워홀 오지 마세요’ 영상을 보고 두려움이 생겼었다. 하지만 1년째 워홀 생활 중인 지금, 워홀 비자를 한 번 더 신청했다. 중간에 워홀을 포기하고 귀국하는 사람도 많이 봤지만, 워홀을 지속하는 사람도 많았다. 워홀을 잘 즐기는 사람과 포기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해답은 바로 워홀의 목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워홀을 가는 보편적인 이유로는 영어 실력 향상과 해외 거주에 대한 로망 등이
핀란드는 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일까? 내가 핀란드로 교환학생을 온 가장 큰 이유는 이 물음에서 시작된다.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2024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핀란드는 7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선정됐다. ‘웃음이 많은 나라는 중남미 국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곳에 오니 생각이 바뀌었다. 즐거울 때도 크게 내색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핀란드에서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소속 공동체를 신뢰하고 타인을 존중하되, 적당한 무관심의 자세를 견지하는 게 핀란드인의 행복 비결이라고 느꼈다. 핀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