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예측이 일리 있다고 말하려면 관찰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김난도 교수가 매년 제시하는 ‘트렌드 코리아’도 예외는 아니다. 벌써 2026 버전이 나왔지만, 과거에 제시된 트렌드가 현실과 얼마나 맞아떨어졌는지는 또 하나의 시사점이다. 시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해 분초를 다투며 사는 경향. ‘분초 사회’는 2024년 대표 트렌드다. 트렌드와 현실의 부합 정도를 엄밀히 논할 능력은 안 되기에 체감으로 얘기하자면, 적어도 지난 2년간은 김 교수가 예상한 사회가 어느 정도 실현됐다고 생각한다. 일상이 된 숏폼 콘텐츠가 그렇다. 우리는 10분
졸업한 지 어언 8년. 30대 중반에 들어선 요즘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빠지지 않는 대화 주제는 바로 ‘부동산’이다. 올해 초부터 실물 경기와는 다르게 서울 주요 지역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작년 6월 97.7에서 올해 9월 101.5로 상승했다. 특히 서울 아파트값은 강남·마포·성동 등을 중심으로 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대출 제한을 골자로 한 부동산 대책이 나온 이후 거래량은 주춤한 모습이나 앞으로 집값이 더 상승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잔존한 모
7년 전 일이다.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두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오갔다. 북한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두려움 반 환호 반이었다. 그전까지 무력으로 서로를 위협했던 두 정상이 갑자기 환한 미소를 띠며 악수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무섭게 느껴졌지만, 이내 다시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전공과 관련된 시민사회단체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에서 일을 시작했다. 11년 만에 만났다. 2018년 ‘9월 평양 공동선언’을 계기로 민간에서도 남북의 만남이 시작됐다. 우리 단체도 10년 만에 북
올해 여름, 고대신문 동기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첫 결혼이라니, 우리는 “드디어 한 명 나왔다”라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제 곧 서른 중반을 앞둔 시점에, 주위를 둘러보면 확실히 결혼이 늦어지고 있다는 체감이 든다. 예전이라면 결혼을 서둘렀을 나이지만, 어느새 서른을 훌쩍 넘겼음에도 미혼인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이러다 너무 늦어버리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2024년 남자의 초혼 연령이 33.8세이고, 여자는 31.6세라는 통계청 자료를 찾아보고는 속으로 ‘휴’
출산 후, 한 달이 지났다. 나는 몰랐다. 인간의 아이가 이렇게 생존능력 제로인 상태로 태어나는지. 신생아는 대체로 2~3시간마다 밥을 먹고 하루 14~18시간을 잔다. 부모의 하루는 스물네 시간 비상대기조로 돌아간다. 아기가 깨서 울 때마다 수유해야 하고 잠든 이후 4시간이 넘으면 깨워서 먹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탈수 혹은 저혈당에 빠져 위험해질 수 있다. 수유 후에는 수직으로 안아서 트림도 시켜야 한다. 신생아는 위와 식도가 짧고 음식물이 위에서 식도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위장과 식도 사이를 조이는 괄약근 힘이 약하기 때문에
대학생이 된 해였다. 그 당시에도 오사카는 우리나라 관광객이 가장 많이 가는 관광지 중 한 곳이었다. 도톤보리, 오사카성, 가이유칸 아쿠아리움, 유니버셜 스튜디오까지. 오사카의 핵심을 모두 보겠다는 의지로 가기 전에 오사카 전반을 열심히 공부했다. 목표는 달성했다. 공부한 곳을 모두 보겠다는 의지로 걸음을 이리저리 옮겼다. 그런데 귀국길에 몰려오는 감정은 말 그대로 ‘현자 타임’이었다. 기시감(?)이랄까. 랜드마크를 갈 때마다 어디서 한번 본 거 같은, 잊고 있던 데자뷔가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휘몰아쳤다. 인터넷에서 봤듯이 도톤보리
10여 년 전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신조어가 있었다. ‘문과여서 죄송합니다’(‘문송합니다’)이다. 이과에 비해 상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덜 주목받고, 취업난에서 뒤처진 문과 전공자 스스로에 대한 자조적인 표현이다. 요새도 언론매체나 일상생활에서 종종 쓰이곤 한다. 필자는 세종캠퍼스 출신이다. ‘학벌 뻥튀기하려고 고려대 세종캠퍼스 간 것 아니냐?’라는 송곳 같은 질문에 ‘절대 아니다’라고 말할 순 없겠다. 특이하면서도 특별한 전공에 대한 자부심 한쪽에, ‘나도 고연전을 즐길 수 있겠구나, 표면상으론 나도 고려대’라는 마음을 품었었다.
공공기관에서 근무한 지 어느덧 6년 차다. 취업시장이 얼어붙었다고 하지만 공공기관은 시장의 동향과는 무관한 움직임을 보일 때가 많다. 법령 개정으로 사업이 확대되거나, 정부에서 신사업을 일임하는 등 공공기관은 결국 정부에서 정해주는 정원에 따라 움직인다. 자율성은 ‘ZERO’에 가깝다. 최근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포함된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발표됐다. 2015년 시행된 대규모 공공기관 지방 이전 이후 10년 만이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기관은 이미 1차에 포함되어 지방 이전을 완료했다. 이번엔 타 공공기관
세월은 빠르고 세상은 변해간다. 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표현을 체감하곤 한다. “로봇청소기는 어떤 브랜드로 살까?” 혼수를 준비 중인 동인에게서 세월의 속도감을 느꼈다. 편집국에서 함께 밤을 새우던 사람이 결혼하다니, 시간이 가속하며 흐르는 듯싶었다. 세상도 대학생이 신랑이 되는 사이에 변했다. 이는 국산 대신 중국산 로봇청소기를 자연스레 추천한 내 답에서 알 수 있었다. IT 전문지 기자로 일하며 가장 크게 실감한 것은 중국산 가전제품의 올라온 위상이었다. 아직 일부 품목에 한하지만, 중국산 가전은 더는 가성비 제품으로만 취급받
우리 국장이 달라졌다. 지난 7월 24일, 코스피가 3,230을 넘어서며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가 활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가시지 않고 있다. 경제 뉴스에서는 자영업자들이 무너지고, 경기와 소비가 침체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걱정이 가득하다. 올해1분기 GDP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역성장하였으며, 2분기에 개선되기는 하였으나 건설·설비투자는 여전히 마이너스 성장 기조를 지속하고 있다. 경제·금융 분야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보기에, 지금까지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주요
얼마 전 엄마가 안산에 있는 어느 대학병원에 다녀왔다. 2시간을 기다렸는데 진료는 5분 만에 끝났다며 화를 냈다. 병원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도 빠지지 않는다. 소아천식으로 인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대형 병원에서 호흡기를 달고 살아야 했다. 천식이 사라지고 나서도 병원은 카페 드나들 듯 꾸준히 다녔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의사 선생님과의 진료는 10분을 채 넘긴 적이 없었다. 오히려 죄인이 된 것처럼 진료실을 빨리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결혼하고 미국 갔던 누나가 몇 달간 한국에 돌아와 있었다. 누나를 통해
2025년 3월, 글로벌 전자상거래 기업 Shopify의 CEO 내부 메일이 외부에 유출됐다. 내용은 “앞으로 직원 평가에 AI 활용 역량을 반영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 AI는 선택적 보조 도구를 넘어, 직무 역량의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런데 같은 도구를 쓰는데도 어떤 사람은 탁월한 결과를 내고, 어떤 사람은 비슷한 수준에 머무를까? 생성형 AI는 평균적인 답변을 잘 만든다. ChatGPT는 입력된 문장을 기준으로 가장 확률 높은 단어를 예측해 문장을 생성한다.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결과를 잘 만들어내는 만큼, 전형적인 답변에 머
트랄랄레로 트랄랄라 VS 봄바르디로 크로코딜로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다리 세 개 상어와 미군 폭격기가 몸뚱아리인 악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로 만든 가상의 존재끼리 싸움을 붙이는 게 전 세계 청소년들의 유행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는 어엿한 30대 직장인. ‘섹시푸드’ 대신 ‘개맛도리’를 당당히 써냈다가 신조어 테스트에서 30점을 받은 아재지만 배움의 자세로 나무위키를 기웃거렸다. 그래서 누가 이기냐. 청소년계 최대 토론 주제다. 누군가 날카로운 이빨과 한 번에
검사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할 때 선과 악으로 구분을 짓는다. 자신들은 절대적 선이고,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이들은 절대적 악으로 규정한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어떻게든 상대방을 절대적 악으로 만든다. 국민적 관심이 쏠린 이슈인 탓에 실시간 보도를 하는 언론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지만, 근원적 배경에는 검사들의 이런 생각이 깔려있다. 한 판사는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 사건 당시 판사들이 조사를 받는 도중에 휴대폰을 교체했다는 사실이 실시간 보도된 적이 있다”며 “검사들은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수사 과정
야구 경기가 끝났다. 연장전까지 갔지만 결국 졌다. 마지막 이닝이 끝나자, 관중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빨리,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조금만 늦으면 버스 정류장엔 인파가 차고 넘칠 것이다. 결단을 내렸다. 조금 걷더라도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겠노라!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눈치 싸움에 성공한 이들은 이내 좌석을 차지했다. 빈 좌석 없이 도착한 버스가 경기장 근처 정류장에 멈췄다. 사람들이 좀비 떼처럼 달려들었다. 짜증 났다. 버스가 마치 내 방주라도 되는 것 마냥, 사람들을 태우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저녁. 서울로 올라가는
“그거, 네가 들고 있는 그거 지금 내 눈앞에서 당장 치우라고” 지난 17일 늦은 밤, 일상의 피로에 지친 몸들로 포개져 있던 5호선 열차 내. 객실을 가득 채우던 커다란 고요 속에서 별안간 작은 균열이 생겼다. 잘 보이지 않는 객실 저 끝 쪽의 노약자석에서 시작된 소란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더니 어느새 모든 사람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기웃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만히 논쟁의 이유를 들어보니 이런 것이었다. 한 80대 노인이 당신의 옆에 앉은 중장년 남성이 들고 있는 피켓이 마음에 안 들었단다. 정확히는, 그 피켓에 써진
우리는 어쩌면 진작 ‘그’의 본래 모습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정치에 입문하기 훨씬 이전인 2019년 7월의 일이다. 그의 당시 신분은 신임 검찰총장이었다. 그가 인사권을 어떻게 행사하는지 우리는 그때 이미 알았다. 그는 취임 직후 대규모 검찰 인사를 단행했다. 인사 직후 70여 명의 검사가 사표를 냈다. 그가 전임 총장보다 사법연수원 5기 후배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검찰 내부 반발이 예상보다 컸다. 한 기획통 간부는 당시 인사에 대해 “해도 너무한다”라고 했고, 공안통 간부는 “검찰을 특수통, 아니 그의 라인끼리 해 먹겠다는 것
“할머니 돌아가시면 전화해. 꼭 전화해.” 드라마 에서 동훈(이선균 분)은 수화기 너머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지안(이지은 분)에게 말한다. 조사가 생기면 꼭 연락하라고. 학생 때는 동훈의 대사가 귀에 걸리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인사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같은 대사가 다른 무게로 와닿은 건 지난해 결혼식을 치르고 난 이후부터다. 결혼식은 무사히 끝났지만, 돌이켜보면 그 준비 과정이 참 낯설고 어려웠다. 아직도 생생하다. 텅 빈 엑셀 창 하나를 켜두고 두서없이 이름을 썼다. 가족, 친구, 학교, 동아리, 회사 동료
2024년 12월, 모르는 사람에게 커피챗을 요청했다. IT 업계 커뮤니티의 CEO에게 다짜고짜 메일을 보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계속할지 말지 고민돼요.” 2023년부터 펫로스 증후군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일 방문자 수도 꽤 되고, 충성 고객이 제법 생겨서 유저들과 내적 친밀감도 쌓인 상태이다. 하지만 회사 일이 바빠지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서비스가 부담되었다. 그렇다고 서비스를 종료하자니 도의적인 책임감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자 팀원들의 이탈도 이어졌
하나의 유령이 한국 사회를 떠돌고 있다. MZ세대라는 유령이. 이 유령은 도대체 지칠 줄을 모른다. 소위 김난도식 신조어 중 하나인 줄로만 알았는데, 벌써 몇 년째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어느새 본래 의미와는 멀어져 사고방식이 다른 요즘 것들을 의미하는 만능 단어로 쓰인다. ‘MZ 핫플’이니 ‘MZ 필수템’이니 변주도 다양하다. 스스로를 MZ로 부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MZ 없이는 나라가 돌아가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한국식 MZ 구별 짓기에서 기성세대의 두려움을 느낀다. 미디어에서 표현하는 MZ세대는 눈치를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