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밑에 죽은 참새가 있었다. 오른발로 참새의 머리통을 짓이기기 직전 황급히 무릎을 들었다. 균형을 잃어 세 발짝쯤 앞으로 휘청였고 걸음마다 흙모래가 풀썩거렸다. 책가방을 고쳐 메고 죽은 새에게 다가갔다. 새라기보다는 핏덩이에 가까웠다. 가슴께가 가로로 쭉 찢어져서 그 붉은 속이 훤했다. 깃털 군데군데 피떡이 뭉쳤는데 구슬 같은 검은 눈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살아 있었다. 숨이 붙은 짐승만이 눈을 빛낼 수 있지 않던가. 누군가 가슴을 찢고 달아난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곧 아침 식사를 마친 주인집이 늙은 개를 산책시킬 거였다
문예공모 포스터를 발견한 것은 학업도 제쳐두고 글을 읽고 연신 키보드를 두드리던 지난 시간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즈음이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열람실에서 시간을 죽이던 나는 문득 노트북 바탕화면 한구석에 박아놓은 ‘글’ 폴더를 열었다. 적당한 분량의 소설을 찾아 습작 파일 목록을 스크롤하면서, 내가 글을 쓰지 않고 보낸 시간이 고작 석 달에 불과했음을 알게 됐다. 구십일의 무심함으로 켜켜이 쌓아온 시간을 모조리 날려버릴 수 있다니. 먹고 살길을 마련하고서 느지막이 글을 써보려던 나의 오만함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요즘 나는 다시 글
처음부터 소설을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글로 엮었다고 소설이 되는 것이 아니며 잘된 소설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떤 일이든 잘하려면 배우고 익히는, 이른바 공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좋은 본보기는 그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전제된다. 소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본보기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찾아서 읽고 따라 해보는 과정을 통해 그에 못지않거나 그보다 진전된 성취를 하게 된다. 학생들이 어떤 소설을 본보기 삼아 소설 쓰기를 공부하는가, 라는 의문이 응모작들을 읽는 동안 사라지지 않아서 본보기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새벽이면 오래 몸을 뒤척인다. 바로 누웠다가, 옆으로 누웠다가, 엎드리기를 반복한다. 나를 어떤 모양으로 둬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디에 놓아도 어울리지 않는 가구처럼 나는 침대와 어울리지 않는다. 새벽과 동떨어진 기분이 들 때면 시간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세상은 좀처럼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덕분에 내 세계가 있다. 세상이 언제나 내 편이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쥐지 않았을 것이다. 벽을 타거나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종종, 내 세계에도 잡을 수 없는 게 생긴다. 오늘 들은 외할아버지의
올해 고대신문의 문예공모 시 부문에는 78명의 응모자가 225편을 투고했다. 두 명의 심사위원이 각자 3편의 시를 추천하고, 이후 회의를 거쳐 우수작과 가작을 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추천된 작품들을 꼼꼼히 읽으며 여러 의견을 나눈 결과 우수작으로는 를, 가작으로는 을 선정했다. 이번 심사는 문예공모전의 특성을 반영하여, 젊은 문학인으로서의 감성과 실험적인 시도에 주목하고자 했다. 지나치게 설명적이거나 감정이 직설적으로 표출되는 작품보다는 언어와 이미지의 긴장을 유지하며 내면과 사회를 함께 성찰하려는 시적 태도
78명의 응모작을 읽는 일은 기대만큼 즐거웠다. 응모한 작품들은 이 시대의 징후와 위기를 치열하게 겪어내면서도, 나 자신과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젊음의 감각을 담아내고 있었다. 때로는 선명한 감각보다는, 시라는 장르와 시의 형식에 대한 고정관념이 앞선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시를 통해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고, 더 명징하게 재현할 수 있는 삶의 부면이 있음을 아는 젊은 목소리를 여전히 이렇게 많이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행운이다. 심사를 통해 본격적인 토의의 대상이 된 작품들은, 외 1편,
착수 금지최제헌(명지대 문예창작24) 구둣발이 골목을 디딜 때마다 바둑알 소리가 났다 아버지 허리처럼 기운 담벼락과 달동네로 몰린 계단, 아버지는 덤 몇 점 받고 만족하라는 말에도 기권하지 않았다 백 돌 옆에 흑 돌이 하나 놓이자 천장에서는 우두둑 소리가 났는데 왜 집을 무너뜨려야만 이긴다는 걸까 견고한 벽을 쌓고 싶어도 우리에게는 늘 돌 한 점이 부족했다 재개발 반대 현수막은 이웃들의 유일한 수처럼 펄럭였고 손에 쥔 바둑알 하나, 결의는 너무 둥글어 놓치기 쉬웠다 포클레인의 착수에 백 돌 같은 시멘트가 우수수 쏟아지던 밤, 우리는
복습강영빈(계명대 문예창작20) 매일 한 뼘씩 식물이 자란다 빛이 드는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점점 엉성해진다 집을 장악하려는 듯이 정오의 햇빛은 한 번에 들이닥쳤다가 나가버린다 거실엔 나와 식물만 남는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빨래를 널면 진동하는 물비린내 덜 마른 티셔츠를 입고 학교에 가면 벌점을 받았다 차라리 손을 들고 복도에 서 있고 싶었다 쉬는 시간에 엎드려 눈을 감으면 웃음이 의자처럼 날아다녔다 가끔 유리창을 깨뜨렸다 누군가 나를 창가로 밀었을 때 나 대신 떨어진 화분처럼선생님은 나를 용서하셨다 청소 시간 걸레에서 뚝 뚝 떨
현실적 이유로 법학 전공피난지 부산에서 대학 생활편집국에서 배운‘불편부당’“시대정신 포착해 한발 앞서길” “1970년에 아사히 신문 특파원 출신 기자 한 명을 만난 적 있어요. ‘일본의 여론을 향도한다’는 자부심이 참 대단했죠. 70년 전 고대신보 기자들도 그에 못지 않게 전후 학내외 여론을 이끈다는 긍지를 품고 활동했습니다.” 1954년, 당시 고대신보에 입사한 신근재(법학과 51학번) 동국대 일어일문학과 명예교수는 들어온 지 한 달 만에 편집부장을, 이후 두 달 만에 편집국장 업무를 시작해 1년 넘게 본지를 이끌며 대판 4면 증
고대신문의 창간 78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캠퍼스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지만, 기록의 시간은 묵직합니다. 1947년 창간 이후 고대신문은 변하는 시대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사실과 책임의 무게로 대학사회의 공론장을 지켜 왔습니다. 현장에서 발로 뛰고, 불편한 질문을 피하지 않은 기자와 구성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대학원생들은 연구비 구조의 경직성, 고용과 경력 전환의 불확실성, 생활돌봄의 부담 등 복합적인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고대신문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꾸준히 싣고,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며, 변
대학 언론 기자라고 소개하면 ‘동아리 활동’이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스스로 그렇게 설명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학생 기자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대학 언론은 각자의 체계와 구성이 다를지언정 대학의 공식 기관으로 막중한 공적 책임과 사명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대학교라는 작은 사회의 소식을 온전히 보도하며 기성 언론이 비추지 않는 사회의 이면을 담아내는 곳은 오직 학보사뿐입니다. 고대신문은 이러한 정신을 누구보다 오래, 그리고 굳건히 이어온 언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78년 동안 ‘4.18 의거
안녕하십니까, 고려대학교 제55대 총학생회장 이정원입니다. 고대신문의 창간 78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947년 창간 이래 고대신문은 고려대학교의 역사와 궤를 함께하며 시대의 변화를 기록하고 공동체의 정신을 지켜온 언론이었습니다. 고대신문은 단순히 소식을 전달하는 매체를 넘어 우리 대학이 스스로의 문제를 성찰하고 구성원들이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지식의 공론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고대신문은 언제나 시대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학생사회의 목소리를 지면에 담아왔습니다. 때로는 학교의 문제를 날카롭게 짚어내며 자치
고대신문 창간 78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먼저, 고대신문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하여 헌신하는 재학생 기자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또한 늘 고대신문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고대신문 발행인이신 김동원 총장님, 헌신적으로 편집국을 보살펴주시는 신호정 주간교수님께도 졸업생 동인을 대표하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고대신문의 한결같은 독자이자 후원자인 재학생과 교직원, 그리고 교우 여러분께도 고대신문 동인의 이름으로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올해는 고대신문의 숙원이었던 문제 하나를 해결하여 더욱 기쁘게 창간
고대신문 창간 78주년을 36만 고려대학교 교우들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해방 직후의 격동기 속에서 창간된 고대신문은 ‘진리와 인격의 일원적 탐구’를 취지로 고려대학교의 정신과 시대의 흐름을 기록해 왔습니다. 학생들의 힘으로 시작된 이 신문은 수많은 역사적 순간을 함께하며, 대학 언론의 본질과 가치를 지켜낸 살아 있는 기록이자 지성의 상징입니다. 고대신문은 단순한 보도 매체를 넘어, 공동체의 기억을 담고 세대 간의 대화를 이어주는 소중한 매개체입니다. 재학생들의 고민과 열정, 교우들의 추억과 응원이 지면 곳곳에 녹아 있으며,
고대신문 창간 78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947년 11월 3일 대한민국 최초의 대학신문으로 그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창간 이후 78년의 유구한 세월 동안 대학언론을 대표하는 정론직필(正論直筆)의 표상으로 굳건히 자리해 왔습니다. 고대신문은 언제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공론의 장(場)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때로는 소통이 단절되기 쉬운 어려운 시기에도, 학교와 사회, 재학생과 교우, 세대와 세대를 잇는 든든한 연결고리였습니다. 오늘날 고대신문이 최고의 대학언론이라는 명예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분의 헌신과 노력이
같은 시대에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서, 매주 학보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어려움에 대해서는 여러 곳에서 이미 수없이 얘기된 바 있으니, 이제 주변 동료들은 이런 말에 별다른 감흥도, 위로도 얻지 못한다고 말할 지경입니다. 상황은 이런 가운데 한 장 넘기기까지 1분도 걸리지 않는 신문 한 면의 뒤편에 쌓인 수십, 수백 시간을 우리는 무엇으로 가치 매길 수 있을까요. 시대의 국면을 목격하고, 간신히 군중을 헤치고 들어가며, 힘과 시선이 덜 닿은 곳을 찾아가고, 또 몇 번이고 다시 갑니다. 익숙해질 만하면 다
올해로 고대신문이 창간 78주년을 맞이했습니다. 1947년 11월 3일 창간 이후 고대신문은 언제나 고대인의 곁에서 학교 소식을 전하고 시대 문제를 다루는 공론장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고대인의 매체로서 자랑스러운 역사를 쌓아온 고대신문 창간 78주년을 모든 고대가족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맞이합니다. 오늘도 교내외 곳곳을 취재하며 신문 제작에 헌신하고 있는 학생기자들과 주간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역대 총장과 주간 교수, 지도위원, 고대신문 동인 여러분의 노고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려대학교가 한국 고등교육의 새 길을
교내 유일 영자신문사 The Granite Tower(편집국장=김준혁)는 매달 1일 한국인 학생뿐 아니라 유학생과 해외 구독자에게 학교와 국제 사회 소식을 알리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이리나 체레빅(Irina Cherevik) The Granite Tower 웹진부장은 “유학생과 해외 대학 교수님 등 다국적 취재원을 만나고 기사를 작성해 더 많은 독자에게 양질의 정보를 전달하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 The Granite Tower에 입사한 계기는 “BTS와 K-POP 아이돌을 좋아해 관련 영상과 SNS 게시물을 자주 찾아봤
관점과 현장성 녹인 기사“기성 시선에 없는 내용 담을 것” 모두가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이라는 의미에서 서로를 ‘성원’이라 부르는 고대문화 편집위원회(편집장=엄정후)는 글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교지를 발행한다. 엄 편집장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글은 단순 정보 모음이 아니라 각 성원의 지향점과 정보를 결합한 것”이라며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여러 사람이 모여 자기 생각의 폭을 넓힐 때 세상이 조금씩 개선된다고 믿는다”고 했다. 고대문화는 일반 스트레이트 기사의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성원들은 자신의 주관으로 사건을 재해석
유머와 정성 담아 기사 수작업차별·편견 없도록 반복 수정 ‘같은 듯 다른 삼성통닭과 삼통치킨’, ‘안암동 천하제일 간판대회’를 주제로 기사를 쓰는 잡지 동아리가 있다. 기발한 관점으로 고려대와 안암 소식을 전하는 거의격월간몰라도되는데(회장=최유경, 이하 ‘몰되’)는 기사를 수작업해 한 학기에 두 번가량 발행한다. 몰되는 다른 교지가 다루지 않는 소재를 유머러스하게 전한다. 독특한 소재 덕에 신간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학생부터 몇 년간 모든 호를 빠짐없이 수집하는 애독자까지 탄탄한 팬층을 자랑한다. 몰되 애독자인 전우성(정경대 정외2